2009년 대학생 딸과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간 런던의 하이드파크 아름드리나무 아래 누워서 내가 말했다. 지상에 천국이 있다면 런던의 공원이 아닐까? 기회만 된다면 런던에서 한 달쯤 살고 싶어. 딸은 한 달 아니고 2년쯤 살고 싶다고 했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6년 후인 2015년 딸이 런던 근교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엄마의 소원이라는 말에 딸은 할 수없이 런던 구석에 한 달 기한으로 방 한 칸을 얻어주었다.
그때 배낭여행 가는 어린 딸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서 따라갔는데 처음 만난 런던의 모습은 충격 자체였다. 버킹엄궁으로 가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들어서면서 처음에는 도심 안에 있는 울창한 숲에 놀랐고 다음에는 게이 커플들의 모습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남자끼리 껴안고 걷다가 뽀뽀도 하고 뒤로 돌린 팔로 엉덩이도 더듬고.... 코딱지만 한 튜브(지하철) 안에서 쉴 새 없이 쪽쪽대는 젊은 커플들, 이들은 "예스"라는 말을 쪽쪽으로 대신하는 건가. 풍기 문란이 일상화된 풍경임에도 런던에 있는 어마어마한 공원들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딸은 런던시내에 있을 때 자신이 머물렀던,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로 꽉 찬 손바닥만 한 방이 마침 비었다는 게스트하우스 주인 언니의 말을 듣고 내게 그 방을 얻어주었다. 런던은 시내 중심가, 시티 오브 런던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1존부터 4존까지 구역이 나뉘어 있는데 시내에서 멀수록 집세가 쌌고 시내에 차를 갖고 들어갈 경우에는 혼잡세라는 것을 내야 했다. 3존에 있던 게스트하우스는 근처에 <골더스 그린>이라는 지하철역이 있고, 길 건너에는 푸른 구릉지대인 <햄스테드 히스>가 있었다! 저녁이면 하우스 뒷마당에 운동화를 말리느라 내놓았는데 아침이면 가시덩굴 울타리 끝에 운동화 한 짝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여우가 와서 한 짓이라고 했는데 여우가 뒷마당에 왔다는 사실마저도 나는 유쾌했다. 딸은 지하철과 버스를 마음대로 탈 수 있는 오이스터 카드와, 맛있는 거 사 먹고 다니라고 파운드화를 건네면서 회사 근처에 있는 그 애의 숙소로 돌아갔다. 주중에는 엄마 혼자 다니고 주말에 만나서 같이 다니자면서. 그리고 미술관도 전부 무료인데 딸이 세금 내고 있으니까 미안할 것 없이 마음 놓고 보라고 했다.
타고난 올빼미형인 나는 늘 아침잠에서 깨어나기가 힘들어 같이 사는 사람으로부터 어지간히도 욕을 먹었는데 이상하게도 해외여행만 가면 새벽부터 잠이 깼다. 끝없이 펼쳐질 자유로운 오늘이 행복 자체여서 저절로 몸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길 건너에 있는 햄스테드 히스부터 걷기 시작했다. 눈부신 햇살이 녹색 잔디 위를 어루만졌고 어여쁜 사슴 무리가 뛰노는 언덕을 한나절 걸어 켄우드 하우스에 도착했다.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 영화 <노팅힐>이 촬영된 곳, 배경처럼 펼쳐진 나무들 가운데 그림 같은 호수와 고풍스러운 저택, 그 위를 편안하게 걷거나 누워있는 사람들, 그림책에서나 봤던, 진짜 환장할 풍경이 거기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점심때가 되었고 나는 근처 카페에 들어가 샐러드와 샌드위치, 그리고 음료를 샀다. 대부분이 서서 먹는 곳이라 비싸려니 생각도 안 했고 그때까지도 파운드화 계산이 서툴렀다. 썩 잘 먹었다는 생각도 안 들어 영수증을 다시 보았다. 15파운드가 넘었다. 그럼 이게 얼마지? 한국 돈으로 계산해 보니 2만 5천 원이 넘는 돈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미쳤나. 쌀밥에 생선구이도 아닌, 풀떼기와 빵 쪼가리를, 그것보다 내가 지금 점심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주제인가에 생각이 미쳤다. 약관대출받아서 해외여행 가고 안되면 마이너스통장 털어 가고..... 다시 갚고 또 가고.... 팍팍한 살림에 숨통 트느라 용을 쓰며 살았다. 그래도 그렇지, 나도 자존심이 있었다. 욕을 먹건 말건 남편 명의의 마이너스통장을 썼으면 썼지 딸 돈으로 놀러 다니면서 2만 원 넘는 점심을 먹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서 세인즈버리 슈퍼마켓에 들러 2리터짜리 생수 한 병과 작은 물병을 샀다. 다음날부터는 물병을 챙기고 튜브 타기 전에 세인즈버리에 들려 값싼 빵 두세 개를 사고 한주먹 거리 과일 한 팩을 샀다. 유통기한 직전 세일 상품이 있으면 당연히 그것으로 골랐다.
유럽 배낭여행 갔을 때 도미토리인지 민박인지 아침에 빵과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 있었다. 토스트 굽는 냄새와 모닝커피향이 구수할 것 같은데 막상 가보면 사포만큼이나 질긴 거칠거칠한 식빵과 탕약보다 더 쓴 커피가 기다리고 있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딤채에 쟁여놓은 오이지가 어찌나 그리운지 어느 날 밤에는 보리차에 찬밥 말아서 양파와 쪽파 썰어놓고 조물조물 무친 오이지 먹는 꿈을 다 꾸었다. 내 사랑 오이지! 보다 못한 딸이 독일인지 스위스인지 어느 식당에 들어가 비프스튜를 시켰는데 척 보기에도 걸쭉한 국물과 감자, 당근, 쇠고기가 들어있어 기름져 보이는 그 음식을 먹으면서 내가 말했다. 얘! 유럽에도 먹을 만한 국물 있는 음식이 있구나! 엄마! 돈이 없지 음식이 없나? 그 웃픈 기억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던지 딸이 맘껏 사 먹으라고 충분한 파운드화를 주었지만 그건 안될 말이었다. 배낭도 안 매고 달랑 가이드북 하나 들고 복에 겨워 다니는데 점심 따위 굶어도 아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튜브 타는 것도, 책에 나온 대로 구역별로 하루 일정을 잡아 런던 시내를 싸돌아다니는 것도, 장 보는 것도 익숙해질 무렵 슈퍼에 진열된 스페인에서 들어온 복숭아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지? 한국 거와 다른 맛인가? 그날은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초상화 미술관을 가는 날이었다. 문 열자마자 들어간 갤러리에서 영국의 수많은 대문호들과 조우하면서, 특히 나의 최애 소설 <폭풍의 언덕>작가인 에밀리 브론테의 빗금이 잔뜩 쳐진 낡은 초상화를 만나는 시간은 감동 그 자체였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 보라색 접시꽃으로 담이 쳐진 미술관 마당 벤치에 앉아 빵을 먹기 전에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오오오!! 스페인의 따가운 햇볕으로 농축된 달디단 과즙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렇게 달콤하고 진하고 과육이 터질 것처럼 탱탱할 수가? 혀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감? 다음날부터는 다른 과일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세일을 해도. 런던에 있는 내내 스페인산 복숭아는 내 행복의 근원이 되었다.
주말에 세인트폴 대성당 앞에서 딸을 만나자마자 나는 복숭아를 꺼냈다.
너 이거 먹어봤냐? 아니! 흥. 여태 런던에 헛살았네. 한번 먹어봐아!
딸의 반응도 똑같았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 맛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저녁에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언니에게도 건넸다. 이거 먹어봤어요? 아니요. 진짜 다들 뭐하고 사는 거랴? 나는 그 젊은 언니에게 여기서 더 살고 싶다고 말했다. 넋을 빼갈 만큼 달콤한 스페인 복숭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님과 함께 살고 싶은 저 푸른 초원 <햄스테드 히스>가 코앞에 있는 이곳에서. 그 언니가 한 말이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유태인의 집을 빌려서 남자친구와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가며 사는 그녀는 그 집에서 5년 넘게 살았는데도 여태 길 건너 녹색지대의 이름도 몰랐고 가본 적도 없다고 했다. 세상에나!! 지금은 안다. 남의 나라에서 사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는지를. 나는 잠시 들린 베짱이였을 뿐, 그들은 한여름 땡볕에도 쉬지 않고 일해야 했던 개미였다는 것을.
런던에 다시 간다면 천정이 높고 매장이 널찍했던 세인즈버리에 들려 스페인산 복숭아를 한 팩 산 다음 하이드파크로 갈 것이다. 그리고 아름드리나무 아래 누워 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