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지극히 시시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다가 상가 어디선가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려올 때 문득 발을 멈추고 귀 기울이는 것, 아파트 현관을 나서다가 이마를 스치는 서늘한 바람에 아 가을이 오는구나 하면서 다시 돌아온 계절을 느끼는 것, 화단에 수줍게 숨어 덜 핀 동백꽃 봉오리 몇 개 몰래 꺾어다가 주방 창에 올려놓고 보는 것, 특별히 애쓰지 않고 무심코 만나는 순간, 그 하찮은 순간들을 좋아한다.
그런 스쳐가는 만남 말고 일부러 시간을 들여 갖는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혼자 영화 보기이다.
모든 불이 꺼지고 캄캄한 어둠 속 오롯이 혼자인 나와 눈앞을 꽉 채운 화면과의 만남. 이 순간이 참 좋다. 난 이제 현실을 떠나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될 수 있는 한 영화는 개봉 초반에 보려고 한다. 쓸데없는 여러 가지 정보들에 휘둘려 선입견을 갖고 미리 결말까지 알고 가면 재미없다. 그래서 신문에 괜찮은 영화 정보가 나오면 더 이상 검색하지 않고 간다. 내가 모르는 세계와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 무섭고 슬프고 때론 끔찍하기도 하면서,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도 한 화면 속으로 들어가기 전의 짧은 암흑 속에서 기꺼이 나의 넋을 내어주고 함께 호흡할 준비를 하는 그 순간이 좋다.
내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결말이 나는 영화, 나를 깜빡 속여주는 영화가 좋다. 전에 <올드보이>가 처음 상연되었을 때 부지런히 가서 보았다. 며칠 후 아들이 딱 엄마가 좋아할 만한 영화라면서 같이 가자고 해서 안 본척하고 또 가서 봤다. 로맨틱 무비보다 갱스터무비가 내 취향인 것 같다. 그들의 잔혹한 인생사만큼이나 처절한 사랑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위대한 침묵>같은 종교영화를 볼 때는 지루하게 경건한 삶, 더할 것 없이 되풀이되는 순종과 인내, 거의 흑백에 가까운 봉쇄수도원,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나도 모르게 그 위대한 세계에 잠깐 빠져들어가 보기도 한다. 최근에 본 임윤찬의 반 클라이언트 콩쿠르 다큐멘터리는 두 시간 내내 긴장과 한숨, 음악가들의 숙명, 죽어야 끝나는 끝없는 연습에 내 손가락마저 꼼질꼼질, 가슴은 두 방망이질, 흥분과 열광으로 진땀 나는 과정이었다.
두 시간 세 시간 어둠 속에서 가슴 졸이며, 숨죽이며 내가 있을 수 없는 곳, 감히 들여다 볼 수 없는 세계에 빠져들어가 정신줄 놓고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이 지나가면서 아! 빨리 이 어둠 속에서 벗어나야지 할 때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난 현실로 돌아온다. 극장밖을 나와 눈이 부신 햇빛속으로 나와서 다시 마주한 현실, 역시 좋다. 아무 일 없는, 전혀 극적이지 않은 지루하지만 평온한 나의 일상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피 칠갑으로 덮인 화면, 악에 받친 얼굴들, 오롯이 신을 향해서만 나가는 경건한 삶, 혹은 무시무시한 천재들의 세계, 죽을 때까지 끝이 안 나는 연습 시간, 아! 그냥 평범한 내 삶이 좋다 하고 어쭙잖고 별 볼일 없는 나의 삶에 감사한다. 그러니 영화 보기는 나의 삶을 돌아보는 동시에 나를 떠나 다른 세상으로 몰입할 수 있고 극장 밖을 나와서는 현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진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