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는 결국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며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막상 그 삶의 한복판을 지나다 보면, 인생이란 것이 치밀한 계획이나 필연보다는 예상치 못한 우연에 의해 좌우될 때가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며, 쏟아부은 노력만큼 정직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냉혹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때로 고단하고 슬픈 일이지만, 우리를 지탱하는 힘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에서 나옵니다. 그 작은 빛들을 잃지 않는 한, 인생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어제 아침의 풍경도 그랬습니다.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보내고 아내와 함께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한 뒤, 점심으로 외식을 즐기는 그 평범한 시간 말입니다. 식사 후 아이들을 다시 도서관으로 들여보내고, 아내와 나란히 백화점을 거닐며 바지 한 벌씩을 샀습니다. 사실 이번 달은 이래저래 지출이 많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기였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기분 좋은 소비를 감행했습니다. 물건을 손에 쥐었을 때의 설렘 뒤로 살며시 고개를 드는 죄책감 또한 우리네 삶의 익숙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에는, 이런 소소한 소비가 나를 위한 정당한 보상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때로는 뼈를 깎는 노력이 배신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내가 옳다고 굳게 믿으며 추진하는 일들에 주변의 지지나 도움이 따라주지 않아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 날이면 세상이 참 무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다시 긍정하게 되는 순간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딸아이를 마중 나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입니다. 편의점에 들러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골라 들고, 길가에서 그것을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하는 딸아이의 얼굴을 봅니다. 그 해맑은 표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맺혀 있던 시름이 씻겨 내려가며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본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인생 전체라는 거대한 흐름은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영역일지라도, 하루하루를 채우는 사소한 행복만큼은 우리의 시선과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발견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거창한 성공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편의점 봉투를 흔들며 걷는 이 밤거리의 소박한 풍경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