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와 잘 살기....
제5편 내가 만든 행복
오늘은 늦잠을 잤다.
늦잠을 잔 덕택으로 아침식사 후 동네 한 바퀴 걷기 일정은 취소되었고 모든 일정이 한 시간씩 미루어졌다.
그런들 어떠하리...첫 번째
9시 30분 아내와 집을 나선다.
오늘은 토요일... 아내와 저녁에 파티를 하는 날이다.
특별하게 정한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 동안 일하며 서로 소원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별다른 약속이 없는 한 매주 토요일 저녁은 둘만의 파티를 한다.
아내와 나는 파티에 쓸 식재료나 기타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토요일이면 이천 롯데마트로 장을 보러 나간다.
2년 전 이곳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면서부터 가지게 된 습관처럼 되어버린 생활패턴이다.
마트로 들어가면 우선 빵 파는 곳으로 향한다.
빵쟁이 아내... 아내는 빵을 무척 좋아한다.
빵 굽는 냄새가 좋고... 빵을 찢을 때 살짝 저항하지만 바로 찢기는 느낌이 좋고... 빵을 씹을 때 부드러운 촉감이 너무 좋다고 한다.
아내가 고른 빵은 이름도 생소한 “올리브치아바타”이다.
앞전에 아내한테 조금 얻어서 먹어보니 겉은 바게트처럼 딱딱한데 속은 부드러웠고 맛은 담백하고 고소함이 느껴졌던 빵이다.
아내가 맛있다고 하니 사야지...두 번째
아내에게 제안을 한다.
“오늘 점심 여기서 해결할까?”
“여기서? 여기서 사서 막 먹는다고?”
“이런...저기 초밥 코너하고, 떡볶이, 순대, 회비빔밥 코너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집에서 먹자는 거지”
“오... 좋아 좋아.. 그것도 재미있겠는데”
“나는 장어 초밥... 뭐 먹을 거야..”
“응...응...응..” 아내는 뭘 먹을까 하며 한참을 망설인다.
고질적인 결정 장애 현상.. 하지만 다그치지를 못하겠다.
전에 무슨 가전제품을 사러 갔는데 한참을 망설이는 아내에게 왜 이렇게 결정을 못 하냐고 타박을 하니 아내는 입가에 약간 섬찟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너무 섣부르게 결정을 해버렸고 그 결정으로 인해 많은 시간 동안 후회를 하게 되었거든...그런데 아무리 후회를 해도 시간은 절대로 돌려지지가 않더라고.. 그때부터 결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거야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정해야 할 때 아주 신중해졌거든... 이유를 더 알고 싶어?”
그 말을 들은 뒤부터는 웬만하면 마음껏 고르도록 보채지를 못하고 있다.
드디어... 아내가 골랐다.
“참다랑어 회 뱃살 김밥”
지난달 아들 회사 근처인 광화문 쪽에 볼일이 있어서 아내와 같이 동행을 하였는데 그때 아들과 함께 계동 일식집에서 먹었던 “후토마키”를 진짜 맛있게 먹었다며 비슷한 것을 골랐다고 한다.
다음 주류 코너...
아내의 주류 취향은 맥주다.
평소에는 “카스”, 특별한 날은 흑맥주인 “코젤다크”
오늘은 특별하지 않지만 “코젤다크”로 4캔을 고른다.
역시 아내는 흐뭇 흐뭇한 눈치다.... 세 번째
집에 오니 뒷마당은 어제 내린 눈이 하얗게 깔려있다.
눈이 많이 오지 않아서 오후면 녹을 것 같은데 아내는 비질을 한다.
나도 덩달아 넉가래로 눈을 밀어낸다.
거실로 들어오니 포근한 온기가 온몸을 감싼다.
거실 삼면을 큼지막한 유리창으로 해 놓은 덕분에 따스한 햇빛을 온전히 받아놓은 덕택이다.
상위에는 장어초밥과 참다랑어회 뱃살 김밥이 놓여 있다.
아내에게 장어초밥을 먹으라고 하니 아내는 자기는 자기 것만 먹겠다고 한다.
장어초밥은 열개, 참다랑어회 뱃살 김밥은 네개
일대일의 맞교환은 싫은가?
따스한 햇빛이 맘껏 들어오는 거실 식탁, 그 위에 초밥과 김밥, 맛있게 먹고 있는 아내와 나.. 그리고 음악... 네 번째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간다.
아침에 못한 동네 한 바퀴를 돌기 위함이다.
아내에게 “같이 안 가?” 하고 물으니 아내는 “나는 탁구 칠 거야”한다.
“탁구?”
“응..벽하고 탁구 치는 거야”
그러고는 시범을 보여준다.
“이렇게...이렇게...”
하며 탁구채를 잡고 탁구공을 벽에 튀기고 탁구공이 벽에 맞고 땅으로 떨어지면 그걸 다시 받아치는 것이다.
“호... 기발한데..”
아내는 어떻게 벽하고 탁구를 쳐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지?
신기하면서도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해 낸 것이 신통하다.
아침에는 무척 쌀쌀했는데 오후가 되니 날씨가 풀려서 걷는 걸음이 기분이 좋다.
오늘은 한 번도 안 가본 은행나무 길로 가보기로 한다.
그런데 한참을 걸어도 은행나무가 안 보인다.
은행나무 길인데 은행나무가 없다니..
이름을 먼저 짓고 나중에 나무를 심으려고 하나?.. 아니면 이름을 짓기 전에는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근래에 베어버렸나?
하지만 한참을 걸어도 은행나무는 없었고 베어낸 흔적도 못 찾았다.
은행나무가 없는 은행나무 길을 한 시간여를 터덜터덜 걷다가 집으로 향한다.
아내는 아직도 벽과 탁구를 치고 있다.
얼굴은 운동 기운으로 약간 붉어졌고 이마에는 땀이 배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잠시 쳐다보는데 참 재미있게 잘한다.
한 10여 차례는 벽하고 탁구공을 치고받으며 주고받는 것 같다.
물론 아내는 탁구를 잘 치지 못한다. 다만 일명 똑딱이 탁구를 칠 뿐이다.
그래도 땀까지 흘리며 벽하고 탁구를 치는 모습이 정말 이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다.
아내는 떼구루루 구르는 탁구공을 줍다가 나를 보며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으며 “왔어?” 한다. 다섯 번째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는다.
아내도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지 안 보인다.
노트북을 꺼낸다.
햇빛이 창을 뚫고 들어와서 등을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있다.
왼쪽은 창밖으로 밭과 산이 한가득 자리를 잡고 있다.
오른쪽은 창밖으로 블루엔젤의 푸른 잎이 보이고 옆집과 그 너머로 산이 보인다.
그리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쓴다.
스피커에서는 “알리의 가시연꽃” 노래가 흘러나온다.
“정녕 날 두고 떠날텐가....하늘이어..훠..이여..”...... 여섯 번째
6시부터 우리 부부는 파티를 열 것이다.
식탁은 텔레비전 앞으로 이동을 할 것이다.
아내는 “코젤다크”를 나는 와인을 마시게 될 것이다.
안주는 벌교 참꼬막과 군만두가 될 것이다.
아내와 나는 일주일 동안 모아둔 연속극을 보며 건배를 할 것이다..... 일곱 번째
나는 오늘 일곱 개의 행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