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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해가 뜨기 전 새벽, 초겨울 어둠 속 창밖에는 강한 바람으로 인해 더욱 차가움이 숨어있었다. 살며시 열어본 창문 틈을 비집고 거센 바람이 베란다로 밀려들었다.


생존을 위한 유전자의 진화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복제이고 이 단계에서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개념이 ‘밈’이라는 개념이었다.


사실 밈이라는 단어는 요즘 세대에서 인터넷에서 이미지나 영상을 반복해서 확산되는 것들에 대한 통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단어를 도킨스가 처음 만든 개념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작년에 책을 읽었을 때는 몰랐던 아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이 ‘밈’이라는 문장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안의 문장에서 오늘의 단어를 떠올렸다.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에게도 이름이 필요한데, 그 이름으로는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명사가 적당할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모방은 밈이 자기복제를 하는

수단이다.”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 346page



모방.

1.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모습, 행동, 생각 등을 본떠서 따라 함.

2. 기존의 양식이나 방식을 본받아 그대로 또는 유사하게 재현하는 일


오래전 모방은 타인의 것을 흉내내는 것의 의미로 사회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며 모방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타인의 뛰어난 능력을 본받아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받는 이른 바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변모하여 모방은 이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용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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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밑바탕에

이제 모방은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모방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이동한 이 변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상대적이며 얼마나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모방은 어느 순간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취하는 비겁한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모방 속에서 자란다. 말을 배우고 걸음을 배우고 감정을 표현하는 법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움직임을 그대로 옮겨 적는 아이처럼 출발한다.


그렇게 시작된 모방은 나이가 들어도 멈추지 않는다. 일을 배우는 것도 생활의 태도를 다듬는 것도 결국 누군가 먼저 다녀간 길을 조용히 살피고 따라가며 시작된다.


특히 나는 투병의 과정에서 모방이 주는 효용을 깊이 실감했다.


나보다 먼저 치료를 시작한 사람들의 식사 속도나 걷는 리듬이나 통증을 버티는 방식이 내게는 살아 있는 지침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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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을 따라 하며 견디는 법을 익혔다.

모방은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강한 누군가의 방식을 빌려와 내 몸과 마음에 다시 힘을 붙이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창조의 밑바탕에 모방은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창조는 마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바닥에는 언제나 모방을 통한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깔려 있다.


어떤 작가의 문장을 따라 써보고 어떤 사람의 자세를 본받아 보고 심지어 생활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누군가에게서 힌트를 얻는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모방이 어느 순간 내 고유의 결을 만들어낸다.


결국 모방은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확장시키기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누군가의 뛰어난 능력은 내 부끄러움의 근거가 아니라 내가 도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방향을 따라가며 나만의 방식을 완성해 간다.


초겨울의 서재의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새벽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도 혼자서 완전해질 수 없고 누구도 처음부터 창조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걸음에서 걷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의 상처에서 버티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의 말에서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운다.


이 깊은 배움의 방식은 모두 모방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다. 때로는 우연처럼 보이는 선택도 결국은 내 안에 축적된 모방의 흔적이었다.


오늘의 글을 쓰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한 가지 감정이 오래 머물렀다.


모방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나를 다시 구성하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조금은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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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투병도 그렇고 회복도 그렇고 글쓰기 또한 그렇다. 모두 누군가의 방식과 누군가의 내면을 모방하며 조금씩 다듬어져 왔다.


그러나 그 모방을 지나며 결국 나는 나만의 방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모방은 나를 잃어버리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내일 새벽에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또 다른 문장을 읽고 또 다른 단어를 붙잡을 것이다. 그 과정은 어쩌면 무수한 모방의 연속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방 속에서도 나는 매일 조금씩 나만의 결을 찾고 있다.


초겨울의 차가움 속에서 천천히 내 안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모방은 내 삶을 조금씩 더 따뜻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나는 ‘모방’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모방은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선택한 가장 인간적인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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