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주의 시작. 새롭지 않은 한권의 책을 통해 새로운 사유로 나를 다시 만들기 위해 작년 가을에 읽었던 김익한 교수의 <거인의 노트>를 다시 꺼냈다.
단순한 재독이 목적이 아니었다. 요즘 내가 매일 쓰고 있는 일기가 나를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바꿔 줄 수 있을지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나는 거인이 되고 싶다. 몸집이 큰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크기가 조금은 다른 사람.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에만 반응하지 않으며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사고의 거인 말이다.
거인의 노트를 다시 펼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록이 쌓이면 생각이 되고 생각이 쌓이면 태도가 되며 그 태도가 결국 사람을 만든다는 믿음 때문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기록들이 언젠가 나를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다시 묻고 싶었다.
그때는 밑줄만 긋고 지나쳤던 문장들이 지금의 나를 붙잡았다. 계절은 겨울의 중심에 있고, 몸은 여전히 회복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으며 생각은 예전보다 훨씬 느려졌다.
오늘 나를 멈춰 세운 문장은 이것이었다.
“더불어 ‘역사는 이론, 기록은 실천’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힌 내 생각의 틀도 깨 주었다.
이론(역사)을 추구해야 실천(기록)에 도달할 수 있고, 실천(기록)을 통해야 이론(역사)에 도달할 수 있다.”
거인의 노트 중에서 - 007page
실천.
1.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나 이론이 말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직접 행하는 것.
2. 가치, 신념, 원칙을 일상의 행동으로 구현하는 일.
실천이라는 말은 늘 행동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나는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무엇을 할지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먼저 떠올랐고, 움직이기 전에 점검해야 할 생각과 계획이 너무 많아졌다.
당장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압박 속에서 실천은 점점 무거운 단어가 되었다.
생각만 하지 말고, 계획만 세우지 말고, 지금 당장 하라는 명령처럼 들릴수록 나는 오히려 그 앞에서 작아졌다.
그때 내가 느꼈던 부담은 실천 자체보다는 내가 받아들인 방식에 더 가까웠다.
실천을 생각 없이 움직이라는
요구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실천은 늘 사고를 건너뛰는 선택처럼 그려졌고 고민하거나 망설이는 시간은 의미 없는 지연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실천은 행동의 문제이기 보다는 사고를 허락받지 못하는 상태로 느껴졌다.
실천은 이론이 완성된 뒤에 따라오는 종착점 이라기보다 생각이 흐르며 지나가는 통로에 가까웠다.
완성된 생각이 있어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면서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정리된 뒤에 쓰는 행위보다 쓰는 과정에서 정리가 이루어지는 모습에 더 닮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실천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시작하기 전에 모든 준비가 끝나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까?
우리 사회는 실천보다 결과를 먼저 요구하는 구조에 익숙하다. 시도보다는 성과를 묻고 과정보다는 증명을 요구한다.
한 번의 실패는 경험이 아닌 낙인이 되고 미완의 시도는 용기보다 무모함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우리는 움직이기 전에 점검한다. 이게 성공할 수 있는지 남들 보기에 부족하지는 않은지 실패했을 때 감당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진다.
그 과정에서 실천은 선택이나 행동이 아닌 심사에 가까운 상태로 변해 버린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행동은 무책임하다고 배워왔고 확신 없는 시도는 어설픈 것으로 치부되는 환경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멈추는 법을 먼저 익혔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물들임은 결국 시작을 미루기 위해
완벽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준비가 끝나야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왔다. 더 배워야 하고, 더 알아야 하며 더 확신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에 시간은 흘렀고 몸은 예전 같지 않게 되었고 삶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투병의 시간은 그 믿음을 무너뜨렸다. 생각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아도 선택해야 했고 마음이 단단하지 않아도 병원 문을 열어야 했다.
용기가 생긴 뒤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용기가 따라온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실천은 용기를 증명하는 행위라기보다 용기를 불러오는 선택에 가까웠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불완전함을 견디는 태도에 더 닮아 있었다.
그래서 실천은 거창할 필요가 없었다.
아주 작아도 충분했다.
오늘 하루를 기록하는 일도 실천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책장을 몇 쪽 넘기는 것도 실천이다.
글이 잘 써질 것 같지 않아도 자리에 앉는 것도 실천이다.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반복하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생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이해한다.
김익한교수가 말한 기록으로서의 실천은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기술 이라기보다 사유를 통과한 흔적을 몸에 남기는 일처럼 느껴졌다.
기록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공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생각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생각하는 실천은
과정의 언어이며 살아 있음의 증거에 가깝다.
어떤 일을 끝내기 위한 단계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지금도 완성되지 않았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래도 오늘 할 수 있는 만큼은 움직이고 있다.
이제 나는 실천을 다르게 부르기로 했다. 확신이 없더라도 해보는 태도이며, 두려움을 안고도 멈추지 않는 선택이라고.
나는 ‘실천’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실천은 완벽한 준비보다 작은 움직임을 먼저 허락하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