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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꿈 (feat. 영웅의 여정)

조지프 캠벨의 『블리스로 가는 길』을 읽으며

by 시 선

밥을 먹는데 아들이 묻는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꿈?”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다. 뇌가 버퍼링 중인 듯 천천히 기억을 되짚는다.

“엄마 꿈은… 아주 어렸을 땐 의사였어, 엄마는 할머니가 키워주셨는데, 할머니가 자주 아프셨거든? 그래서 엄마가 의사가 돼서 할머니를 낫게 하고 싶었어. 더 커서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 너희들 한 참 키울 때는 아무 생각 없다가, 그럴 여유가 없었거든. 그러다 식물에 빠져서 원예치료사나 식물가게 하고 싶었어. 대학교 강의도 신청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 취소됐고, 너희를 가정 돌봄을 하면서 그 꿈은 날아갔지. 또 바리스타 배우면서 카페 열고 싶었는데… 그런데, 지금 엄마는 작가가 되고 싶어!


아들의 질문 하나에 주저리주저리 길게 늘어놓았다. 덧붙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엄마 매일 도서관 가서 책 읽고 글 쓰고 오잖아!”


나 자신에게 놀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도서관에 간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겼다. 그건 내가 쓰는 글이 대단하지도 않거니와 소잉이나 가드닝, 다른 취미보다도 효용성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당당해진 연유는 무엇일까? 어디서 비롯된 자신감일까?

그때와 딱히 달라진 것도 없는데 말이다.


아들에게도 물어봤다.

“아들아, 네 꿈은 뭐니?”

“난 큐브 선수!”

“아! 그래? 그럼, 오늘 밥 먹고 당장 큐브 한 판 돌려야겠는걸?”

꿈을 꿈이라 할 자격은 행하는 자에게만 있다는 듯이. 그렇지 않다면 그건 꿈도 아니라는 듯이.






요새 조지프 캠벨의 『블리스로 가는 길』을 읽고 있다. 캠벨은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방법으로 ‘영웅의 여정’을 소개하며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인생의 영웅이라고 한다. 용기 내 모험을 떠나고 자신의 ‘블리스’를 따라가라고 충고한다. 그가 말하는 ‘블리스’란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느낌,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어떤 것을 하고 있을 때 느끼는 희열감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느낌, '블리스'를 누리며 사는 것이라고 그는 설파했다.


이번엔 스스로 묻는다. 나의 블리스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따라가고 있는가?


사실 나의 모험은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매주 글쓰기라는 모험을 떠난다. 올해 1월 1일부터 1년 동안 어떻게든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 여기 브런치에 글 한 편을 발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요일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에 친한 글 쓰는 동생 J는 “언니! 꿈이 너무 소박한 거 아니에요?” 하며 비웃었다. 이제 J는 일주일에 글 한 편 쓰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며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운다.


누군가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리는 작가님들도 꽤 많다. 그러나 내게는 이 일이 거의 조지프 캠벨이 말하는 ‘영웅의 여정’과도 같다.


‘영웅의 여정’은 이런 식이다.

나는 가까스로 수요일 자정 전 브런치에 새 글을 발행한다. 반응이 어떻든, 영웅이 된 난 스스로 도취되어 잠이 든다. 다음 날, 새 글감이 떠오르고 다시 모험을 떠난다.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로 존재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물론 늘 그렇지만은 않다. 영웅이 되려면 언제나 시련과 고난이 닥치기 마련이다. 보통은 잠이 부족해 피곤함에 절어 있고 삭신은 늘 쑤신다. 작은 일 하나에도 머리가 어수선해 글이 눈에 잘 안들어 온다. 알바가 있는 날엔 시간에 쫓겨 마음만 조급하다. 어쩔 땐 내가 왜 이리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을 자처하는건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괜히 서가를 두리번거리고 햇빛을 쐬고 기지개를 켠다. 커피 한 모금과 브런치에 라이킷과 고마운 댓글 하나에도 위안을 얻는다. 용기를 내본다. 작가의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어느새 수요일, 글을 발행하고 나는 또 다시 영웅이 된다.


불현듯 알게 됐다. 내가 자신있게 내 꿈을 말할 수 있게 된 건, 내가 그 꿈을 위해 매일매일 애쓰고 노력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영웅의 여정’을 그저 묵묵히 지켜가며 ‘작가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스스로 다지고 견고해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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