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눈을 조금만 들어도 파란빛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햇살은 그 하늘을 따라 얇게 번져내린다. 하늘이란 이렇게 넓고도 고요한 것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다시 알게 된다.
그 고요를 깨듯 바람이 불어온다. 멀리서부터 달려와 뺨을 스치고, 머리카락을 흩뜨린다. 길게,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한 결을 가진 채 옷깃 사이를 파고들어 몸 안까지 차갑게 흔든다. 바람 속에는 풀잎의 향과 먼 곳의 흙냄새가 뒤섞여 있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오랜 시간 나를 향해 오고 있었던 것만 같다.
바람이 지나가자 햇빛이 더 뚜렷해진다. 여름의 무게를 벗은 빛은 손등 위에, 목덜미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채 온기를 조금씩 남긴다. 바람에 흔들리며 빛이 스며드는 느낌이 묘하게 선명하다.
그 아래에는 아직 새벽의 흔적이 깔려 있다. 발끝을 감싸는 공기에는 밤새 식어버린 냉기가 남아 있고, 그 차가움이 천천히 몸 속을 돌아다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이 서늘해지고, 마치 안쪽까지 맑아지는 것만 같다.
차가움이 내려앉은 땅 위에는 낙엽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누군가 방금 손으로 비벼놓은 듯, 바삭하게 마른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끝에 닿는다. 햇빛이 스치자 낙엽의 갈빛 가장자리가 반짝인다. 부서진 잎사귀의 향기는 오래된 책장 속 먼지 냄새 같기도, 한여름 끝의 기억 같기도 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모든 냄새와 빛과 바람을 한꺼번에 들이마신다. 순간, 몸 안에 계절이 스며드는 것 같다.
아, 가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