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평가, 발표점수
한국의 시험에는 학생들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킬러 문항이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 비하면 독일은 절대평가다.
객관식 시험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주관식 시험인데 절대평가라 시험이 쉬웠거나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상위권에 아이들이 몰려 있기도 하고, 반대로 저 아래쪽에 점수가 포진되어 있기도 한다.
수학에서 답이 틀려도 그 문제가 0점이 되지는 않는다.
문제풀이 과정에서 틀린 점수는 감점이 되고, 맞게 푼 곳에는 점수를 준다.
어떤 과목에서는 추가 점수가 주어지기도 한다.
독일에는 한국과는 달리 발표 점수와 시험 점수로 나뉜다.
한국에서는 학원에서 다 배워서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하면 독일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다. 점수에 선생님의 주관이 많이 반영되는 점은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수업 시간의 태도와 참여도를 점수에 반영하는 것은 유용한 제도로 보인다. 게다가 발표 점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크다.
점심에 밥 먹으러 온 딸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한다.
라틴어 시험 결과를 아직 못 받았는데 선생님이 미리 와서 이야기를 해주셨단다.
네가 한 문장 번역을 아예 빼먹었다고..
선생님도 여러 번 찾아봤는데 한 문장의 번역이 없었단다.
하나를 틀려서 원래는 1- 일 텐데 번역을 빼먹은 그 문장에 점수가 3점이 있었단다.
총 4개를 틀렸다는 말..
선생님이 점수를 두 개 주신다고 했다고 한다.
문장을 빼먹어서 받을 점수와 안 빼먹었다면 받았을 점수를 주겠다는 것으로 해석이 되는데, 아이는 그 말을 하면서도 어쨌든 자신이 빼먹었으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그러고 며칠 뒤 시험지를 받아 왔는데 선생님의 센스가 돋보인다.
한 문장을 빼먹어서 점수는 빨간펜으로 gut- (2-)인데 연필로 앞에 sehr를 써넣어 (1-)라고 써 놓았고, 전체 점수에도 연필로 1-에 표시를 함께 해 놓았다.
이 시험지를 보고 내가 느낀 점은..
'넌 잘하고 있어, 문장을 빼먹지 않았다면 1-를 충분히 받았을 테니 앞으로는 좀 더 신중히 하길 바라 너를 믿는다.'라고 따듯한 격려를 해주고 있는 것 같다.
참고로 독일의 성적은 1에서 6까지 1+, 1, 1- 이런 식으로 6까지 내려가는데 1+ 가 가장 좋은 점수이고 3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4는 위험한 점수로 분류되고 중요 과목의 점수에 5 이하가 두 개가 나오면 낙제라 한 학년을 다시 다니게 될 수도 있고, 김나지움 (대학을 준비하는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되기도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국과 독일이 참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어떻게든 아이들을 헛갈리게 해서 틀리게 하려고 문제를 내고, 학생들은 그 킬러 문항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노력을 하는데 독일은 학생이 이 문제를 정말 알고 있는지를 평가하려고 하는 것 같다.
킬러 문항을 맞추기 위한 노력도 학생들에게는 어디에든 그 흔적이 남기 때문에 그 시간들이 헛되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노력을 더 발전적인 곳에 쓴다면 학생들의 역량이 얼마나 커질까 하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7학년, 라틴어 과목을 시작할 때부터 한 번도 1을 놓쳐본 적이 없는데 성적이 2가 될 수도 있다며 울먹이는 둘째 딸을 보며, 나도 언니도, 그래도 이게 아비투어 (한국의 수능) 시험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때는 이런 실수 절대 안 하겠지라고 위로를 건넸다..
큰 딸이 아비투어 시험을 봤을 때의 기억이 있다.
한 학생이 커닝을 하다가 걸려서 시험이 0점 처리되어 1년 학교를 더 다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이의 말에 의하면, 그 학생은 평소에도 커닝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선생님의 실책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평소의 시험에서 커닝했을 때 잡아냈다면 중요한 시험에서 절대 커닝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그 학생이 했을 텐데 평소의 시험에서 그냥 넘어가니 중요한 시험에서도 습관대로 한 거라고..
실제 잘못은 학생이 했지만 그것을 잡아내고 못하게 하는 것은 선생님의 일이지 않은가!
11학년 들어 처음 함께 수업하는 라틴어 선생님인데 실수를 미리 알려주고 믿음을 주는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이는 라틴어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이든 어른이든 실수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
그 경험을 통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