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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드립니다(11).

유목민족

말을 타고 양이나 소떼를 몰고 다니는 유목민족은 오늘날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국가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종적을 거의 감추었습니다. 세계 정세나 국제 뉴스에서도 유목민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최첨단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유목민은 그다지 중요하게 보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불과 400년 전까지만 해도 유목민은 역사의 방향을 바꿀 정도로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200년 경부터 기원후 1600년대까지 유목민은 중요한 시기마다 등장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중에는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인 몽골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목민은 어떻게 등장했고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는지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유목민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한 기원전 1만 년 전후에 점차 농경민과 구별되기 시작합니다. 이분법으로 나누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농경보다는 목축 비중이 좀 더 높은 부족들이 유목민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가축화된 동물, 양이나 소 등을 방목하면서 목초지를 찾아다녔습니다. 동물들이 풀을 소비하는 속도가 빨랐기에 자연스레 이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매번 새로운 곳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계절마다 머무르는 지역이 있었으며, 주기적으로 지역을 순환하며 공동체를 유지하였습니다. 이런 환경에 적합한 지역은 주로 초원이 많은 평야지대(스텝)였습니다. 일반 농경민들이 거주하는 지역보다 위도상으로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이 지금의 시베리아 평원과 중앙아시아에서 동유럽으로 이어지는 평원지대였습니다. 학자들은 이 지역을 이어주는 길을 초원길이라고 부릅니다.


잦은 이동 생활로 인해 유목민의 강점은 기동력이 됩니다. 주로 말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기에 이들은 어릴 적부터 말을 다루는 방법을 배웁니다. 여행 가서 승마 체험을 하셨던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말을 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를. 게다가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말안장, 고삐, 등자(말을 탈 때 발을 거는 고리)가 제대로 발명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신체 능력으로만 말을 제어해야 했기에 말타기는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요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농경민을 상대로 유목민이 우위를 누릴 수 있었던 점입니다. 매우 빠른 속도와 말의 돌파력으로 유목민은 보병 중심의 농경민을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영화에 나오는 기병 전투 장면은 오류가 많습니다. 유럽에서는 기원후 800년 정도 이후에나 등자를 장착한 기병이 등장했고, 동아시아에서는 그보다 빠르긴 하나 기병을 유지하는 비용과 길러내는 시간으로 인해 대규모 기병대를 운용하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말은 주로 이동용으로 사용했고 전장에 도착해서는 말에서 내려 전투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유목민이 처음부터 농경민을 약탈했던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는 거래를 중심으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축 역병이 돌거나 기근이 들면, 유목민은 남하하여 식량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수많은 유목민 중 세계 역사에 획을 그은 유목민들은 누가 있을까요? 기록에는 시베리아 지역에 있던 스키타이인이 등장하나 첫 주자로 지대한 영향력을 준 유목민은 흉노였습니다. 흉노는 지금 중국의 내몽골과 몽골 공화국 지역에 넓게 퍼져 살던 부족이었습니다. 수렵과 목축을 주로 하면서 농경민을 약탈했던 흉노에 대해 중국인들은 매우 적대시했습니다. 형이 죽으면 형수와 동생이 결혼하는 제도를 반인륜적이라 욕하는 한편, 성벽을 쌓아 흉노인들의 접근을 막고자 했습니다. 한나라 초기까지만 해도 흉노의 우위는 계속되었고 평화를 위해 한나라는 흉노에게 공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다가 한무제의 등장 이후, 대규모 흉노 원정으로 인해 흉노는 거점을 잃고 서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들이 로마제국 멸망 원인을 제공한 훈족이라는 학설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어쨌든 서쪽으로 이동한 흉노족의 후예인 훈족은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이후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


보라색은 훈족의 활동 영역, 녹색은 흉노의 활동 영역을 가리킨다(https://manasataramgini.wordpress.com)


두 번째 주인공은 돌궐입니다. 기원후 500년을 전후하여 흉노족의 빈자리에 돌궐인들이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돌궐은 중국어로 쓴 표현이고, 본래 발음은 튀르크입니다. 오늘날 튀르키예, 투르크메니스탄 등이 모두 이 돌궐족의 후예라고 주장합니다. 돌궐 역시 흉노처럼 중국 왕조와 대립합니다. 당시 중국을 지배하던 왕조는 수와 당제국이었고 돌궐의 팽창은 이들 제국에 큰 위협이 됩니다. 특히나 돌궐이 고구려와 연결되면 북쪽과 서쪽 국경이 매우 위험해질 것이 자명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 제국은 돌궐 공격에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돌궐도 지지 않고 맞서 싸우나 당 제국은 이전 중국의 농경국가와는 달리 유목민족이 건국한 국가였기에 돌궐이 가지고 있는 기병의 이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돌궐은 분열되었고 일부는 당에 투항하고 나머지는 서쪽으로 이주합니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에 자리 잡게 되는데, 이 시기 중앙아시아에는 이슬람교가 한창 전파되던 시기였습니다. 돌궐은 이슬람교도로 개종했고 뛰어난 군사적 역량을 인정받아 용병으로 활약합니다. 이즈음부터 돌궐은 튀르크로 더 많이 기록에 등장합니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튀르크족 중 셀주크 부족은 적극적으로 이슬람에 융화되어 마침내 이슬람 왕조의 정치적 지배자(술탄이라고 지칭)가 됩니다. 이들은 당시 동로마 제국을 압박하고 영토를 점령하여 십자군 원정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부 지역까지 이동한 튀르크 족은 여러 이슬람 왕조를 수립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튀르크소이는 튀르크 문화 국제기구를 가리킨다. 오늘날 튀르크 계열 국가들이 연합하여 문화 교류를 하는 국제기구다.


이제 이번 글의 마지막 주인공이자, 세계 제국을 최초로 건설한 몽골 제국 차례입니다. 몽골 제국 역시 흉노와 돌궐 부족이 이동하기 전에 거주하던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바이칼 호(오늘날 몽골 지역에 있는 큰 호수) 근처에 거주하던 몽골족은 중국으로 남하한 거란과 여진족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습니다(한국사에 등장하는 거란과 여진족을 말합니다). 분열되었던 몽골 부족이 통합되고 엄청난 저력을 가지게 된 계기는 너무나도 유명한 칭기즈 칸(본명: 테무친)이 등장하면서입니다. 칭기즈 칸은 통합한 몽골 부족을 이끌고 당시 중국 북부를 지배하고 있던 금나라,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점령합니다. 원정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계속되었습니다. 유럽 쪽으로 향한 몽골 군대는 러시아를 점령하고 폴란드 지역까지 밀고 들어갑니다. 당시 몽골족의 공포가 얼마나 대단하였으면, 유럽인들이 몽골족을 신의 채찍이라 불렀고 이는 18세기 유럽인들이 가졌던 황색(황인종) 공포의 근원이 됩니다.

아시아 지역도 몽골제국의 침략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셀주크 튀르크가 지배하고 있던 서아시아의 이슬람 왕조는 결국 수도인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초토화되면서 멸망하게 됩니다. 몽골은 이에 멈추지 않고 중국 전체를 정복하려고 합니다. 중국 북쪽을 지배하고 있던 여진족의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남하하여 중국 남쪽을 점령합니다. 베트남도 몽골의 침략을 받아 수차례 항전을 거듭하지만, 나중에는 무릎을 꿇게 됩니다. 심지어 인도네시아까지 군대를 보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려 역시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항전하지만, 결국 항복합니다. 유일하게 동아시아에서 몽골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지역은 일본이었습니다. 몽골은 2차례나 일본을 침공했지만, 태풍(카미카제)으로 인해 실패하면서 더 이상 군대를 보내지 않습니다.

몽골 제국 최대 영역(4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후계자들이 통치하였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참조)

기원후 1100년경부터 1200년경까지 100년 만에 세계를 정복한 몽골제국은 후기로 갈수록 유목민족의 색채가 옅어집니다. 중국에서는 '원'이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하며 여타 중국 왕조처럼 중국을 지배합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몽골 영역도 비슷하게 변해갔습니다. 이런 몽골의 변화 모습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유목민족의 강점을 약화시키는 방법이었고 결국 몽골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몽골제국이 전 세게에 끼친 영향은 상당합니다. 이 시기에 동서 무역로는 다시 활성화되었고 유럽과 중국을 오가는 여행자들의 기록이 나타납니다. 또한 몽골 제국의 멸망 이후, 서아시아에서는 몽골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여러 제국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 인도의 마지막 왕조였던 무굴 제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굴 제국의 지배층들이 몽골제국의 후계자로 자처하면서 이렇게 불렸던 것입니다.


이렇듯 훈, 돌궐, 몽골과 같은 유목민족들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이유는 현재 세계가 대부분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한 국가들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목민들에 대한 기록이 모두 편견과 증오로 가득 찬 농경인들의 기록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유목민족이 정착하면서 결국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기존 농경인들의 전통과 문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는 종국에 가서 유목민들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게 하였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유목 왕조가 농경 왕조에 동화되는 역사적 과정으로도 증명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유목민의 우위는 기원후 1600년경까지 이어집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화약의 군사적 활용이 시작된 시기였습니다.


낯설지만, 흥미로운 유목민족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려고 합니다. 다음 주제는 이제 중세 세계관의 붕괴가 시작되는 르네상스와 신항로 개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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