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화, 인류세, 인공지능
드디어 마지막 편이네요. 사실 제3세계 부분에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였으나, 그래도 제가 생각하는 역사는 현재를 살아감에 있어 도움이 되어야 하기에 이렇게 마지막 편을 적게 되었습니다. 역사가 어떻게 현재에 기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에 필수 지점은 현재에 관한 이해입니다. 현재의 문제점 혹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지만, 과거의 어떤 점을 들여봐야 하는지가 결정이 되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현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손꼽으라면 지구화(Globalization), 인류세(Anthropocene),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입니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천천히 다루겠습니다.
첫째로 지구화입니다. 선택이나 취향에 관계없이 우리는 이미 지구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유럽이 제국주의를 추구하면서 전 세계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구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상호연결성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국내의 문제는 내부의 원인으로만 설명이 되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것 하나 전 세계 정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의 관세 강화 정책에 우리나라의 수출과 경기 불황에 미치고 있는 점만 봐도 그렇습니다. 또 다른 예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우리의 방산 산업이 갑작스러운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반대로 식료품 가격이 상승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제 전 세계는 더 이상 연결을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더 대표적인 예를 느끼고 싶으면, 지난 2020년의 코로나 사태를 기억하면 됩니다. 코로나 사태만큼 전 세계가 운명공동체임을 느끼게 했던 지점은 저는 결단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극우(far-right)의 물결도 그렇습니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난민 그리고 이주민의 발생으로 인하여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극우 정당이나 단체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유럽만 봐도 그렇습니다. 독일을 위한 대안정당(Afd)나 프랑스의 국민연대(전선, NR)가 그런 예시입니다. 혹자는 이를 반지구화라고 부르면서 지구화의 시대가 반전을 맞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재지구화라고 생각합니다. 극우가 생겨난 원인 역시 지구화에서 기원한 것이고 그렇게 생겨난 극우 정당 역시 이웃나라의 극우 정당의 정책을 모방하면서 새로운 전지구적 극우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지구화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며 결코 우리가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그렇기에 지구화 시대에 우리가 봐야 할 역사는 상호관련성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정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역할을 지구사(global history)에서 하고 있기는 합니다.
둘째는 인류세입니다. 다소 낯선 단어이지만, 제가 쓴 글에 나와있는 인류세 서평을 보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인류세는 2000년에 노벨상 수상 과학자에 의해 제기된 개념으로 간단히 말하면 지금의 지구는 인류가 지구의 생태계를 변형시키고 교란시키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변화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인간은 지구를 교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후 위기, 생물 다양성 감소, 대기권 파괴 등과 같은 환경오염 및 파괴 현상이 이제 우리 삶으로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진작부터 예측이 되었으나 이제는 체감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무더위와 강력한 산불, 그리고 식량과 물부족 현상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코로나 같은 전염도 그 전조 증상입니다. 아마 이대로 인류가 지구를 소모하고 변형시킨다면, 가까운 장래 안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지구로 변할 것입니다. 실제로 유엔 보고서에는 2050년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이 최소 2도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했으며, 이는 전 세계를 파멸로 몰고갈 것이라고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이런 위기의식을 반영하고자 역사에서도 1960년대부터 환경사(environmnental history)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과 환경이 어떻게 변형되고 환경에 대한 인간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다루는 환경 사는 상당히 근래에 떠오르는 역사학의 분과 중 하나입니다.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학술지가 만들어져 꾸준히 연구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분야의 등장은 상당히 반길 일이지만, 역사학계 내부에서는 아직까지 관심이 적으며 한국에서는 연구성과가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글쓴이의 예상이 맞다면, 해당 분야로 많은 연구성과가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역사의 범위가 이제 인간에서 자연 생태계로 넓어지겠지요. 물론 그것을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룬다는 것이 역사라고 한다면, 확실히 환경사 역시 주목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최근 출판되고 있는 기후의 역사나 동물의 역사를 다룬 책이 이런 흐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셋째는 인공지능입니다. 사실 이 분야는 저도 정확히 어떻게 될지 예상이 안 갑니다. 그동안 봐왔던 인공지능의 발달은 모두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이글아이와 같은 영화들은 모두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인공지능 사용해 보면, 이미 몇몇 분야에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역도 갈수록 빠르게 확장되고 있고요. 그래서 사실 이 분야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에 읽었던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하라리의 넥서스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인공지능의 발달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지점은 인간의 상상력과 직관이지 않을까 합니다. 기계와 달리 인간은 오감을 비롯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그리고 알고리즘이 생각지 못한 상상력을 가지기도 하죠. 그런 측면에서 유발하라리가 책에서 언급한 상상력 실험은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상상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역할이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마저도 인공지능이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왜곡된 인식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가는 것을 막는 것 또한 인간의 역할이지 않을까 합니다.
인공지능에 대해 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아직 글쓴이가 과문한 관계로 이 정도밖에 글을 쓸 수 없음을 양해부탁드립니다. 좀 더 지식이 쌓이면, 가능하려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세계적 변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역사학에서 시간을 재편성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동안 인간은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시간을 구분했습니다. 현대는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의미했습니다만 1945년의 현대와 2025년의 현대는 확실히 다른 느낌입니다. 역사학에서는 이 부분을 아직 역사적 시기로 구분하지 않고 다루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1990년 이후 냉전 이후의 시간은 새롭게 시기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니면 1945년 이후에서 1990년까지의 역사를 새로운 시기로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는 2025년에 살고 있으며, 1945년에 살았던 사람은 지금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시기를 구별 지을 수 있는 기준으로 지구화, 인류세, 인공지능을 제시해 본 것입니다.
마지막 편은 확실히 저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가 상당히 글이 정리가 안된 느낌이네요. 좀 더 정리가 된다면 다음번에 깔끔한 글로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26편의 글을 함께해 주신 독자분께 감사드리며 다음번에는 좀 더 좋고 재미있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