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의 함정

by 레옹
6wmHIVo1pcE0JU113TOD7L8yaDYJvfrcahwmpL91ABAF8EJr_eeSoEv_-cD9KscepdoyYxwAy_Fcm6C5wbMo60DEpGqVC5KKTL97vJcpm36J2LxQlKpB0hslRU8JvTxV_SqOlOObSx_qIX7X2vHTbw.jpg

1798년, 영국의 한 젊은 성공회 목사가 세상에 내놓은 소책자 하나가 이후 200년 이상의 경제학과 역사학, 그리고 인류의 미래관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놓았다.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가 쓴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은 계몽주의의 낙관론이 절정에 달하던 시대에 찬물을 끼얹은 문헌이었다.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은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인류가 빈곤과 고통을 영원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은 인간 이성의 완전 가능성을 설파했고, 콩도르세(Condorcet) 후작은 역사가 필연적으로 진보한다고 선언했다. 맬서스는 바로 이 두 사람을 직접적인 논적으로 삼아 자신의 책을 썼다. 그는 낙관론자들에게 냉혹한 수학을 들이밀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한다. 이 두 곡선은 반드시 엇갈린다. 따라서 인류는 언제나 생존의 한계에 붙들려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른바 '맬서스의 함정(Malthusian Trap)'이다.


얼핏 들으면 직관적으로 납득이 가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명제가 진정으로 무서운 이유는 그 단순함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실제로 옳았기 때문이다. 맬서스는 예언자가 아니었다. 그는 관찰자였다. 그리고 그의 관찰은 당대까지의 인류 역사를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었다.


농업이 시작된 기원전 약 1만 년 전부터 18세기 산업혁명 이전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인구는 하루하루의 생존을 걱정하며 살았다. 고대 로마의 평민이든, 송나라의 농부든, 중세 유럽의 소작농이든, 이들의 평균 생활 수준은 놀랍도록 유사했다.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추계에 따르면 기원후 1년부터 1820년까지 전 세계 1인당 GDP의 연평균 성장률은 0.0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수치를 체감하기 위해 복리 계산을 해보면, 1820년의 세계 평균 소득은 예수가 살던 시대보다 고작 20퍼센트 남짓 높았을 뿐이다. 1820년의 세계 인구는 서기 1년에 비해 다섯 배가량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즉, 인류는 더 많아졌지만 개인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거의 늘지 않은 것이다. 수백 년의 기간 동안 인류의 물질적 생활 수준은 사실상 정체해 있었다.


이 정체가 단순한 기술 발전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인류는 그 기간 동안 분명히 발전했다. 로마인들은 수로를 놓고, 중세 유럽인들은 삼포제(three-field system)를 도입했으며, 중국은 당송 시대에 세계 최고 수준의 철 생산 기술을 보유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술적 진보는 하나의 결과로 귀결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겨우 생존할 수 있게 된 것. 생활 수준의 향상이 아니라 인구의 팽창. 기술 진보가 개인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더 많은 사람이 가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는 이 역설이야말로 맬서스의 함정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메커니즘은 잔혹할 정도로 정교했다. 어느 지역에서 농업 기술이 개선되거나 기후가 좋아져 식량 생산이 늘어나면, 잠시 동안 생활 수준이 개선되었다. 사람들은 더 잘 먹었고, 더 오래 살았으며, 더 많은 자녀를 낳았다. 영아 사망률이 떨어지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구는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면 1인당 자원은 다시 줄어들었고, 결국 생활 수준은 이전의 궁핍한 수준으로 돌아왔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맬서스적 균형(Malthusian equilibrium)'이라고 부른다. 일시적인 번영은 언제나 인구 팽창으로 상쇄되어 다시 생존 한계선으로 수렴하는 균형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반대 방향에서도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했다. 전쟁이나 역병이 인구를 급격히 줄이면, 살아남은 자들은 더 많은 자원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례는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다. 1347년부터 1353년 사이,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옮긴 이 역병은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에 달하는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의 참상은 기록으로 생생히 남아 있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연대기 작가 아뇨로 디 투라(Agnolo di Tura)는 "나는 내 손으로 다섯 아이를 묻었다"고 썼다. 피렌체 인구는 역병 이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데 이 대재앙은 역설적으로 살아남은 유럽 농민들의 임금과 생활 수준을 대폭 끌어올렸다.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농민들의 협상력이 갑자기 높아진 것이다. 영국에서는 흑사병 이후 실질임금이 급등하여 15세기 중반에는 역병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높아졌다는 역사적 추계도 있다. 죽음이 번영을 낳은 것이다. 이 섬뜩한 역설이 맬서스의 함정의 본질이다.


이 메커니즘이 더욱 소름 돋는 것은, 인간의 선의나 노력과 완전히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중세 유럽의 농부들은 게을러서 가난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새벽부터 해질 녘까지 땅을 팠다. 중국의 송나라 농민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쌀 재배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아랍 세계는 8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수학·천문학·의학에서 유럽을 압도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맬서스의 함정 안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번영의 씨앗은 언제나 인구 증가라는 잡초에 의해 질식당했다.


맬서스 자신은 이 균형을 유지하는 두 가지 힘을 구분했다. 하나는 '예방적 억제(preventive check)'로, 만혼이나 금욕, 출산 자제처럼 의식적으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맬서스는 특히 유럽의 '만혼 패턴(European Marriage Pattern)'에 주목했다. 서유럽에서는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23~26세에 결혼했는데, 이는 인도나 중국의 15~18세에 비해 훨씬 늦은 것이었다. 이 늦은 결혼은 가임 기간을 줄여 자연스럽게 출산율을 낮추는 효과를 가졌다. 맬서스가 이 '예방적 억제'를 도덕적으로 더 바람직한 방식으로 여겼던 것은, 그것이 적어도 이성적 판단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 억제(positive check)'로, 전쟁·기근·역병처럼 이미 태어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인구를 줄이는 방식이다. 맬서스의 표현은 충격적일 정도로 직접적이다. 그는 『인구론』에서 "자연은 생명의 연회 자리에 자리가 없는 자에게는 냉혹하다"고 썼다. 국가가 빈민을 부양하려 하면 오히려 빈민의 수만 늘어날 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당시 영국에서 논의되던 빈민법 개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었다. 국가의 자선은 인구 증가를 부추겨 장기적으로 모두를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이 냉혹한 논리는, 맬서스를 빈자의 적으로 낙인찍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사회정책 논의에서 피할 수 없는 준거가 되게 만들었다.


이 냉혹한 논리가 지배한 수천 년의 역사는, 인류가 제아무리 창의적이고 부지런하더라도 집단적으로는 번영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기술이 발전해도, 제도가 개선되어도, 결국 인구 압력이 그 성과를 모두 흡수해버렸다. 경제학자 그레고리 클라크(Gregory Clark)는 이 상황을 '맬서스적 트레드밀(Malthusian treadmill)'이라고 명명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제자리에 머무는 러닝머신 위의 인류. 그러나 이 은유가 단순한 비관의 표현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는 데 이 개념의 진정한 무게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함정에서 빠져나왔는가. 혹은 정말로 빠져나온 것인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맬서스의 예측을 정면으로 배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맬서스는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던 바로 그 시기에 『인구론』을 썼다. 기계와 화석연료가 인간의 근력과 농지의 한계를 동시에 돌파했다. 증기기관은 석탄의 열에너지를 기계적 운동으로 전환함으로써, 인류가 처음으로 태양에너지의 현재적 흐름(나무, 풍력, 수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수억 년 전에 저장된 에너지를 꺼내 쓸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효율 향상이 아니었다. 에너지 기반 자체의 질적 도약이었다. 19세기 내내 영국과 서유럽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지만, 생활 수준도 함께 올라갔다. 인구 증가가 더 이상 빈곤을 의미하지 않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 산업적 전환이 어떤 규모의 변화였는지를 수치로 확인하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영국의 1인당 GDP는 1800년에서 1900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인구가 같은 기간 동안 거의 세 배로 불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이런 조합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경제사학자들은 이것을 '대분기(Great Divergence)'라고 부른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영국과 서유럽은 나머지 세계와 급격히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격차는 20세기까지 계속 확대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맬서스의 함정을 극복한 유일한 힘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한 것은 농업 기술의 혁명적 발전이었다.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는 1840년대에 식물 성장의 화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내며 현대 농업 화학의 기초를 놓았다. 이후 20세기 초 프리츠 하버(Fritz Haber)와 카를 보슈(Carl Bosch)가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합성하는 하버-보슈법(Haber-Bosch process)을 개발했다. 이 발명은 인류 역사상 단일 기술 혁신으로서는 가장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화학비료의 대량 보급이 가능해졌고, 농업 생산성은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은 하버-보슈법으로 만들어진 비료가 없었다면 먹고 살 수 없다는 추계가 있을 정도다.


20세기 중반에는 이른바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 또 한 번 맬서스의 유령을 물리쳤다.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를 비롯한 농학자들이 개발한 고수확 단간 밀 품종과 화학비료, 관개 기술의 조합은 아시아와 남미의 식량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멕시코는 1940년대에 밀을 수입하던 나라에서 1960년대에 수출국으로 탈바꿈했다. 인도의 밀 생산량은 1965년에서 1970년 사이 단 5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1960년대에 스탠퍼드 대학의 생물학자 폴 에얼리크(Paul Ehrlich)는 『인구 폭탄(The Population Bomb)』에서 1970년대와 80년대에 수억 명이 굶어 죽을 것이라는 묵시록적 예언을 내놓았지만, 그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인도는 1960년대 만성적인 식량 부족 국가에서 21세기 곡물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볼로그는 이 공로로 197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그가 구한 목숨의 수를 10억 명으로 추산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놀라운 역전은 인류가 맬서스의 함정에서 완전히 탈출했음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성급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기에는 풀지 못한 물음들이 너무나 깊고, 현재 진행 중인 위기들이 너무나 묵직하다.


맬서스의 함정에서 '탈출'한 것처럼 보이는 국가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했다는 것이다. 인구통계학자들은 이 현상을 '인구전환(demographic transition)'이라고 부른다. 경제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사망률이 먼저 떨어지고 출산율은 높게 유지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경제 발전과 여성 교육이 이루어지면 출산율 역시 급격히 하락하며 인구 증가가 둔화된다. 유럽, 북미, 일본, 한국, 중국 등 선진국과 급속히 발전하는 국가들에서 이 패턴이 반복적으로 관찰되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60년에 6.0명이었지만 2023년에는 0.72명으로 떨어졌다. 이 수치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속도의 출산율 붕괴다.


이것은 맬서스가 말한 '예방적 억제'의 현대적 형태다. 맬서스의 체계 안에서 인류는 함정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출산율 감소라는 새로운 예방 메커니즘을 통해 그 압력을 우회한 것일 수 있다. 이 해석이 더 불편한 이유는, 그것이 함정의 근본적 극복이 아니라 단지 경로의 변경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는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다. 어쩌면 인류는 맬서스의 함정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그 함정의 다른 편 벽에 부딪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맬서스의 함정이 식량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맬서스의 원래 논의는 식량과 인구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그 핵심 논리—유한한 자원에 대한 무한한 욕구의 압력—는 식량을 훨씬 넘어서는 보편적 원리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한계는 경작지나 식량 생산이 아니라 지구 자체의 수용 능력이다.


화석연료를 태워 이루어낸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은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쌓아왔고, 그 결과 기후 변화라는 형태의 새로운 한계 상황이 찾아오고 있다. 산업화 이전 280ppm이었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024년 기준 420ppm을 넘어섰다. 이것은 지난 300만 년 동안 전례가 없는 수준이다. 기온 상승은 이미 농업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 연구팀의 2019년 분석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 밀 생산성은 1961년 이후 이미 5.5퍼센트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50년대에 시작된 산업화가 만들어낸 성과가 기후라는 역풍에 의해 점점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담수 고갈의 문제가 겹친다. 전 세계 농업용수의 상당 부분은 지하 대수층(aquifer)에서 끌어올린 것인데, 이 지하수는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것으로 현재의 사용 속도로는 수십 년 내에 고갈될 위험이 있다. 인도의 북서부 평야지대, 미국의 오갈랄라 대수층, 중국의 화북 평원 모두 지하수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녹색혁명의 성과가 대부분 집약적인 관개 농업에 의존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지하수 고갈은 맬서스적 위기의 새로운 형태가 될 수 있다.


지구 수준에서 작동하는 이 새로운 맬서스의 함정을 '생태적 맬서스주의(ecological Malthusianism)'라고 부를 수 있다. 인류는 식량 대 인구의 균형에서는 벗어났지만, 이제 지구의 생태 수용 능력(carrying capacity) 대 인류의 전체 물질 소비량이라는 더 거대한 균형 문제에 직면해 있다. 맬서스의 함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을 바꿔 재등장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전 세계를 균일하게 보는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 산업혁명과 녹색혁명의 혜택은 결코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은 여전히 맬서스의 함정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헬 지역(Sahel)—세네갈에서 에티오피아까지 이어지는 반건조 지대—에서는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지만 제도와 기술, 자본의 성장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가뭄과 분쟁이 반복적으로 식량 위기를 불러온다. 니제르의 합계출산율은 2020년대 기준에도 여전히 6명을 웃돈다. 이 높은 출산율은 여성의 교육 기회 부재, 아동 노동에 대한 경제적 의존, 사회보장의 부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약 7억 3천만 명이 여전히 만성적인 기아 상태에 있다. 이것은 지구 전체의 식량 생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재 생산되는 식량은 이론적으로 100억 명 이상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추계도 있다. 문제는 분배와 접근성이다. 정치·경제·제도적 실패가 맬서스적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대의 기아는 자연의 억제가 아니라 인간의 실패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이 점을 날카롭게 통찰한 경제학자다. 그는 『빈곤과 기근(Poverty and Famines)』(1981)에서 20세기의 주요 기근들이 모두 식량의 절대적 부족이 아니라 식량에 대한 접근권의 박탈, 즉 '권원(entitlement)'의 실패에 의해 발생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1943년 벵골 기근은 당시 인도의 식량 생산이 최악도 아니었음에도 발생했다. 전시 가격 급등과 식량의 역내 이동, 식민지 행정의 실패가 겹치면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맬서스의 함정이 단순한 자연 법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적 현상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서 맬서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론적 비판이 등장한다. 그는 기술과 제도의 변화 능력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기술 진보를 인구 증가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외부적 힘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현대 경제학, 특히 폴 로머(Paul Romer)의 내생적 성장 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은 정반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구가 많을수록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많아지고, 지식은 공유해도 줄어들지 않으며,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맬서스의 세계에서는 인구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소비자이지만, 로머의 세계에서는 인구가 동시에 지식의 생산자이기도 하다. 인류가 맬서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기술이 발전해서가 아니라, 지식의 축적과 공유를 가능케 한 사회적 제도—대학, 출판, 특허, 자유 시장—가 함께 진화했기 때문이다.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르(Joel Mokyr)는 이 과정을 '계몽된 경제(Enlightened Econom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과학적 지식과 실용적 기술의 결합을 가능케 한 독특한 지적 문화, 즉 '유용한 지식(useful knowledge)'에 대한 집단적 헌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사건이 아니라 문화적·제도적 전환이었다. 맬서스는 이 전환을 목격하고 있었지만, 그 의미의 전모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맬서스를 단순한 오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의 진짜 공헌은 예측의 정확성이 아니라 사유의 틀을 제공한 데 있다. 인구와 자원의 관계, 생활 수준과 출산율의 연동, 기술 진보의 성과가 분배되는 방식에 대한 질문들은 그가 처음으로 엄밀하게 정식화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1838년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의 개념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직접 밝혔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개체들 사이에서 더 잘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의 핵심 논리는, 맬서스의 인구 압력론에서 생물학으로 직수입된 것이다.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역시 독자적으로 맬서스에서 영감을 얻어 자연 선택 이론에 도달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맬서스를 근대 경제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꼽으며 그의 유효수요 이론과 맬서스의 수요 부족론 사이의 연관을 강조했다. 경제학이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맬서스(와 그의 논적 데이비드 리카도)의 냉혹한 논리에서 비롯된 이미지였다. 이 별명을 붙인 것은 토머스 카알라일(Thomas Carlyle)이었는데, 그는 역설적으로 맬서스가 노예제 폐지를 경제적으로 지지한 것에 반발하여 이 표현을 사용했다. 한 인간의 사상이 이토록 넓은 지적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 자체가 그의 통찰의 깊이를 증명한다.


맬서스의 유산을 둘러싼 논쟁에는 불편한 정치적 차원도 있다. 그의 이론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 심지어 우생학의 정당화에 악용되었다. 19세기 영국이 아일랜드 대기근(1845~1852) 당시 적극적인 구호를 하지 않은 것의 배경에는 맬서스적 사고, 즉 구호가 오히려 인구 압력을 가중시킨다는 논리가 있었다.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200만 명 이상이 이민을 떠나는 동안, 영국 정부의 일부 관리들은 이것이 자연의 섭리에 의한 인구 조정이라고 묘사했다. 사상이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의 경고다. 아이디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21세기의 맬서스적 질문은 이렇게 재구성될 수 있다. 인류의 기술적 능력은 지구의 생태적 한계와 전 세계의 인구 압력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가.


한편에서는 낙관론의 근거들이 쌓인다.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의 비용이 지난 10년 동안 90퍼센트 이상 하락했다. 이것은 에너지 체계의 탈탄소화가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수직 농장(vertical farming)과 정밀 발효(precision fermentation), 세포 배양 육류(cultured meat) 같은 기술들은 기존 농업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인공지능과 유전공학은 작물 품종 개발과 병해충 대응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고 있다. 이것이 제2의 녹색혁명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경고음이 울린다. 지구 온난화는 예측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극단적 기상현상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생물다양성의 손실은 농업 생태계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항생제 내성의 확산은 동물 농업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혜택이 지구 곳곳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까지 닿으려면 기술 외의 것들, 즉 제도와 정치와 의지가 필요하다.


결국 맬서스의 함정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역사적 쟁점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자원의 한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기술은 자연의 제약을 영원히 극복할 수 있는가, 번영은 지속 가능한가, 그리고 그 번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들을 내포하고 있다. 18세기의 한 목사가 던진 질문이 21세기의 기후 위기, 자원 고갈, 식량 안보,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 시장 논의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맬서스가 틀렸다고 말하기는 쉽다. 실제로 그의 가장 비관적인 예측들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장 근본적인 통찰, 즉 인간의 욕구와 물질 세계의 한계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 긴장을 기술과 제도의 혁신으로 관리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매번 의식적인 선택과 집단적 노력의 결과다.


인류는 지금까지 맬서스의 함정을 여러 차례 피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탈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함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않은 곳에 더 깊이 파여 있을지도 모른다. 1798년에 한 목사가 촛불 아래에서 쓴 경고문은, 2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발밑을 가리키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s://namu.wiki/w/%ED%86%A0%EB%A8%B8%EC%8A%A4%20%EB%A7%AC%EC%84%9C%EC%8A%A4)

일요일 연재
이전 15화확증편향의 알고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