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릿의 배신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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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2016년 펴낸 『그릿(Grit)』은 출간 즉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녀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렬했다. 재능보다 끈기가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이 책은 수백만 명의 독자에게 희망을 팔았고, '그릿(Grit)'이라는 단어는 자기계발의 성배처럼 숭배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불편하게 마주해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끝까지 버티는 것이 정말 언제나 옳은가?


인간은 이야기를 사랑한다. 특히 고난 끝에 승리하는 이야기를.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수천 번 실패했다고 하고,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 원고를 열두 곳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뒤 마침내 빛을 봤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끈기의 증거로 소환하고, 역경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 사용한다. 그러나 이 서사에는 치명적인 편향이 숨어 있다. 우리는 버텨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는다. 버티다가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다.


나심 탈레브(Nassim Taleb)는 이 현상을 "침묵한 증거의 묘지(The Silent Evidence)"라고 불렀다. 에디슨처럼 버티다 결국 성공한 사람 뒤에는, 똑같이 버텼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수만 명의 실패자가 있다. 우리는 왜 그들을 보지 않는가. 왜냐하면 실패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는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반복 주입하지만, 정작 언제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 침묵의 틈새에서 그릿의 배신이 시작된다.


경제학에는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라는 개념이 있다. 이미 지출하여 되돌릴 수 없는 비용, 즉 매몰 비용이 미래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비합리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식당에서 이미 내돈을 냈다는 이유로 배가 불러도 음식을 억지로 먹는 사람, 재미없는 영화지만 티켓값이 아까워 두 시간 내내 좌석을 지키는 사람, 손해 보고 있는 주식을 "이만큼 버텼는데"라는 이유로 팔지 못하는 투자자. 이 모두가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미 쏟아부은 시간, 돈, 에너지가 미래의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릿과 매몰 비용의 오류가 결합하면 이야기는 더욱 위험해진다. 끈기 있게 버티는 것이 미덕이라는 문화적 신념과,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아깝다는 심리적 편향이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걸어가면서도 스스로를 '의지 있는 사람'이라 착각한다. 이 지점이 바로 맹목적 인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더 이상 목표를 향한 전진이 아니라, 과거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반복. 이것이 진짜 그릿의 배신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손실 회피(Loss Aversion) 심리를 설명한다. 인간은 같은 금액의 이득보다 손실을 약 두 배 더 크게 느낀다. 이 비대칭성은 우리가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족쇄다. "지금 포기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전부 무너진다"는 두려움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지만, 그것이 판단을 지배할 때 우리는 미래보다 과거를 위해 살게 된다.


세스 고딘(Seth Godin)은 2007년 출간한 짧지만 예리한 책 『딥(The Dip)』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모든 가치 있는 일에는 '딥(Dip)'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시작과 성공 사이에 놓인 험난하고 지루한 구간, 바로 그 딥을 통과하는 사람만이 정상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딘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반대편에 있다. 그는 모든 고통스러운 구간이 딥이 아닐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어떤 것들은 딥이 아니라 '데드 엔드(Dead End)', 즉 막다른 골목이다. 데드 엔드에서의 인내는 용기가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고딘의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전략적 포기(Strategic Quitting)는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최고의 전략가들은 언제 포기해야 하는지를 안다."


그렇다면 딥과 데드 엔드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이것이 가장 어렵고 본질적인 질문이다. 딥은 고통스럽지만 끝이 있고, 통과할수록 경쟁자가 줄어드는 특성이 있다. 반면 데드 엔드는 아무리 버텨도 구조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 시장이 사라졌거나, 자신의 핵심 강점과 방향이 근본적으로 맞지 않거나, 시스템 자체가 당신의 성공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로 짜여 있는 경우가 그렇다. 딥에서는 더 파고들수록 빛이 보이지만, 데드 엔드에서는 더 깊이 들어갈수록 출구가 멀어진다.


역사는 전략적 포기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사례로 가득하다. 스티브 잡스는 1985년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났을 때 그 상황을 끝이 아닌 전환점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넥스트(NeXT)와 픽사(Pixar)를 거치며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고, 그 우회로가 결국 그를 다시 애플로 이끌었다. 반면 코닥(Kodak)은 1975년 자사 엔지니어가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음에도, 필름 사업 보호라는 이름 아래 그것을 서랍 속에 묻어두었다. 코닥은 '버텼다'. 자신들이 가장 잘 아는 것, 가장 많이 투자한 것을 지키며 버텼다. 그리고 2012년 파산했다. 이것이 매몰 비용과 결합한 그릿의 최후다.


개인의 삶에서도 이 비극은 조용히 반복된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시험, 10년을 바친 직장, 수년간 이어온 관계. 이것들이 잘못된 방향임을 내면 깊은 곳에서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 설득은 처음에는 의지처럼 들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옥의 벽이 된다. 신체는 소진되고, 정신은 협소해지며, 결국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끊겨 고립된다. 맹목적 인내가 만들어내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고립이다.


물론 오해를 경계해야 한다. 이 글이 "포기를 미화한다"거나 "어려우면 그냥 그만두라"는 메시지로 읽혀서는 안 된다. 진짜 딥은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방향이 옳다면, 그리고 구조가 가능성을 허용한다면, 그 인내는 진정한 그릿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인내 자체가 아니라 '이유 없는 인내', 과거의 무게에 짓눌려 미래를 포기하는 인내다. 그릿의 진짜 적은 나약함이 아니라, 매몰 비용에 눈이 먼 맹목성이다.


지능적인 포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내가 지금 버티는 이유가 미래의 가능성 때문인지, 아니면 과거의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인지를 냉정하게 물을 수 있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더크워스가 말하는 그릿보다 더 고차원적인 자기 인식이다. 세스 고딘의 말처럼, "승자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승자는 포기해야 할 것은 빠르게 포기하고, 버텨야 할 것은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끈기도, 쉬운 포기도 아니다. 냉철한 판단력과 용기 있는 전환이다. 이미 쏟아부은 것들을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애도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애도를 끝낸 사람만이 진짜 새로운 출발선에 설 수 있다. 그릿의 배신에서 벗어나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때로는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이미지 출처 https://bigdown.tistory.com/entry/%EA%B7%B8%EB%A6%BFG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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