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법칙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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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4월, 고든 무어는 잡지 한 편을 썼다. 《일렉트로닉스》 지에 기고된 그 글은 학술 논문도, 공식 선언문도 아니었다. 제목조차 "집적회로에 더 많은 부품을 채워 넣기(Cramming More Components onto Integrated Circuits)"라는 건조한 공학 용어로 시작하는, 겨우 세 쪽짜리 짧은 칼럼이었다. 당시 무어는 서른여섯 살의 젊은 엔지니어였고,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연구개발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이 훗날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예측"이라고 불리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세 쪽은 이후 반세기 동안 인류가 어떤 속도로 미래를 향해 달려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기준점이 되었다.


무어는 그 글에서 단순하지만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집적회로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수는 매년 두 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훗날 1975년에 그 스스로 이 주기를 약 2년으로 수정하면서, 사람들은 이것을 '무어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법칙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물리학의 만유인력 법칙이나 열역학 제2법칙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자연이 스스로 따르는 규칙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목표였다. 어떤 수식도 그것을 강제하지 않았고, 어떤 자연 현상도 그것을 보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는 60년 가까이 지켜졌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이야기를 단순한 기술 연대기가 아닌, 인간의 의지와 산업 구조와 물리적 한계 사이의 치열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드라마로 만든다.


무어의 법칙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집적회로는 발명된 지 불과 7년밖에 되지 않은 신기술이었다. 기원을 짚자면, 1947년 벨 연구소에서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이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데서 시작된다.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을 대체하며 전자 신호를 증폭하고 제어할 수 있는 소형 소자였는데, 당시에는 이것들을 하나씩 납땜하여 회로판에 연결하는 것이 전자 제품 제조의 전부였다. 회로가 복잡해질수록 납땜 지점이 늘어났고, 그 접합부가 실패하는 빈도도 비례해서 늘었다.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이 문제는 '숫자의 횡포(tyranny of numbers)'라고 불렸다. 기술은 있었지만, 그것을 대규모로 통합할 수 없었다.


이 난관을 돌파한 것이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에서 일하던 잭 킬비였다. 그는 저항기, 커패시터, 트랜지스터 같은 서로 다른 전자 부품들을 하나의 반도체 기판 위에 함께 제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킬비가 만든 최초의 집적회로는 게르마늄 기판 위에 금속 와이어를 손으로 연결한 조잡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 자체는 혁명적이었다. 불과 6개월 뒤,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로버트 노이스—훗날 인텔을 공동 창업하고 고든 무어의 동료가 될 인물—도 독립적으로 같은 개념에 도달하여, 보다 실용적인 실리콘 기반 집적회로를 특허로 등록했다. 이 두 발명가의 기여는 나중에 둘 다 인정받았고, 킬비는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시작된 지 7년 후, 무어는 그 궤적 속에서 패턴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하나의 칩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무어는 그 초라한 출발점에서 놀랍도록 일관된 성장 추세를 읽어냈다. 1959년에는 칩당 소자 수가 약 1개, 1962년에는 약 8개, 1965년에는 약 64개였다. 고작 다섯 개의 데이터 포인트에서 지수 함수를 끌어낸 것이었으니, 어떤 이는 이것을 과감한 외삽이라고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통계학적으로도 그 근거는 빈약했다. 하지만 무어에게는 그것을 넘어서는 직관이 있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이 정밀해질수록 더 작은 트랜지스터를 더 많이 집적할 수 있고, 그것이 더 낮은 단가와 더 높은 성능으로 이어져 더 큰 시장을 열고, 그 시장이 다시 더 정밀한 공정 개발에 투자되는 선순환의 논리를 그는 꿰뚫고 있었다. 외삽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10년, 20년이 아니라 거의 60년에 걸쳐서.


이 지속성 뒤에는 하나의 핵심적인 메커니즘이 있었다. 반도체 산업은 무어의 법칙을 관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로드맵으로 삼았다. 1992년부터 국제반도체기술로드맵(ITRS, International Technology Roadmap for Semiconductors)이라는 기구가 공식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인텔, 삼성, TSMC 같은 기업들과 장비 공급업체, 소재 회사들이 함께 모여 향후 15년간의 기술 발전 목표를 합의하는 자리였다. 이 로드맵의 핵심은 바로 무어의 법칙이었다. 2년마다 트랜지스터 밀도를 두 배로 끌어올린다는 목표가 명시적으로 설정되었고, 공급업체들은 그 일정에 맞춰 장비와 소재를 개발했으며, 고객사들은 그 사이클에 맞춰 제품 출시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교과서적 사례였다. 업계 전체가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것은 실현되었다. 반도체 설계 회사의 경영진이 회의실에 모여 "이번 세대는 무어의 법칙을 따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순간, 그들은 단순히 경쟁자에게 뒤처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장 전체가 설정해 놓은 좌표계 자체에서 이탈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다음 세대 칩을 전제로 코드를 짰고, 시스템 설계자들은 2년 후의 프로세서 성능을 계산에 넣어 아키텍처를 구성했다. 무어의 법칙을 이탈한다는 것은 이 거대한 생태계 전체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법칙은 이렇게 외부의 강제 없이도 스스로를 강제했다.


여기에는 경제적 논리도 강력하게 작동했다.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들수록 같은 웨이퍼 면적에서 더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었고, 그것은 개당 비용의 하락을 의미했다. 무어가 원래 칼럼에서 강조한 것도 이 경제성이었다. 그는 집적회로가 진공관보다 물리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집적화가 진행될수록 단위 기능당 비용이 극적으로 떨어진다는 경제적 사실을 지목했다. 기술 발전은 공학자들의 낭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가 경쟁이라는 냉정한 시장의 압력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그 결과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능 향상이었다. 1971년 인텔이 출시한 4004 프로세서는 약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담고 있었다. 이것은 시계 주파수 740킬로헤르츠로 작동하는, 당시로서는 세계 최초의 단일 칩 마이크로프로세서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20년대의 최신 칩들은 트랜지스터 수가 수백억 개에 달하며, 클럭 주파수는 수 기가헤르츠, 즉 100만 배 이상 빠르다. 트랜지스터 수로만 따지면 1,000만 배 이상의 증가다.


이 숫자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실감하기 위해 다른 산업과 비교해보자. 자동차 산업이 같은 속도로 발전했다면 오늘날의 자동차는 시속 수억 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었을 것이고—이것은 광속의 상당 부분에 해당한다—, 항공 산업이 그랬다면 대서양 횡단 비행기 한 대의 연료비는 1달러 이하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철강은 5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가격에 제조되고, 시멘트의 원가 구조도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반도체만이 이 특이한 궤적을 걸었다. 이것은 기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밀하게 설계된 결과였다.


이 점에서 반도체 산업이 다른 산업과 근본적으로 다른 속성을 한 가지 짚을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제조업에서 제품의 크기를 줄이면 성능이 낮아지거나 원가가 높아진다. 자동차를 절반 크기로 만들면 엔진 출력도 줄어든다. 그런데 반도체는 정반대다.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들수록 전기 신호가 이동하는 거리가 짧아져 더 빠르게 스위칭되고, 소비 전력이 줄어들며, 단위 면적당 집적도가 높아진다. 소형화가 곧 성능 향상이라는 이 역설적인 물리적 특성이 무어의 법칙을 가능하게 한 핵심 조건이었다.


무어의 법칙을 물리적으로 실현하는 주역은 빛이었다. 현대의 반도체 제조는 본질적으로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포토리소그래피라고 불리는 이 공정은 마스크에 새겨진 회로 패턴에 빛을 통과시켜 감광성 물질(포토레지스트)이 코팅된 실리콘 웨이퍼 위에 그 패턴을 인쇄한다. 그런 다음 빛에 노출되거나 노출되지 않은 부분을 화학적으로 식각하여 회로를 완성한다. 원리는 사진 현상과 비슷하다. 다만 그 해상도가 원자 수준에 근접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회로를 더 작게 만들려면 더 짧은 파장의 빛이 필요하다. 이것은 광학의 기본 원리다. 파장보다 작은 패턴은 회절 현상 때문에 제대로 인쇄되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산업은 더 짧은 파장을 향해 끊임없이 이동했다. 가시광선(약 400~700나노미터)에서 시작하여 자외선(248나노미터), 심자외선(193나노미터)으로 이동했다. 193나노미터 파장의 ArF 레이저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엔지니어들은 기발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 물을 채워 빛의 굴절률을 높이는 '이머전 리소그래피' 기술로 유효 파장을 134나노미터 수준까지 낮춘 것이다. 이 발상의 전환 하나가 기술 발전을 몇 년 더 연장했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 한계에 부딪혔고, 산업은 극자외선(EUV, Extreme Ultraviolet) 기술로 넘어갔다. EUV 리소그래피는 13.5나노미터의 파장을 사용한다. 이 수치는 인간의 머리카락 두께의 약 5,000분의 1이다. 이 파장의 빛은 공기 중에서 거의 즉시 흡수되기 때문에, EUV 장비 내부는 완전한 진공 상태여야 한다. 빛을 반사시킬 거울도 일반 금속이 아닌, 수십 개의 얇은 막을 원자 수준의 정밀도로 증착한 다층 반사경을 사용해야 한다. EUV 광원은 초당 5만 번 주석 액적에 레이저를 쏘아 플라즈마를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모든 것이 진공 챔버 안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이 장비를 만드는 회사는 사실상 전 세계에서 네덜란드의 ASML 한 곳뿐이다. 하나의 EUV 기계 가격은 약 3,500억 원에 달하며, 무게는 180톤이 넘고, 부품 수는 10만 개 이상이다. ASML의 공급망은 전 세계 5,000개 이상의 업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비 하나를 완성하는 데 최대 1년이 걸린다. 칼 자이스(독일), 사이머(미국), VDL(네덜란드) 등 수십 개의 특수 부품 공급업체 없이는 단 한 대도 만들 수 없다. 무어의 법칙을 지속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인류가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최고 수준의 공학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일이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불안한 신호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원자 몇 개 수준에 근접하면서, 물리학의 또 다른 영역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양자역학이었다.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서 전자는 절연층을 넘지 못한다. 그것이 절연체의 정의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입자가 충분히 얇은 장벽을 확률적으로 통과할 수 있다. 이것을 터널링 효과라고 한다. 트랜지스터의 게이트 절연층이 불과 몇 나노미터 두께로 얇아지자, 이 효과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자들이 절연층을 그냥 통과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누설 전류를 유발하고, 소자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며, 무엇보다 스위치 역할을 해야 할 트랜지스터가 제대로 '꺼지지' 않는 문제를 낳는다. 트랜지스터가 0과 1을 구분하지 못하면, 컴퓨터는 계산을 할 수 없다.


열 문제도 심각해졌다. '데나드 스케일링(Dennard Scaling)'이라는 이론에 따르면,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면 속도가 빨라지는 동시에 전력 소비도 비례해서 감소해야 했다. 1974년에 제안된 이 이론은 1990년대까지 대체로 들어맞았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이 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형화가 한계에 다다르자, 속도를 높일수록 전력 소비가 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칩의 단위 면적당 발열량이 핵발전소 노심에 버금가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것이 이른바 '전력의 장벽(power wall)'이다. 인텔이 2004년에 4GHz를 넘기로 계획했던 펜티엄 4 계열의 개발을 전격 취소하고, 방향을 멀티코어 아키텍처로 전환한 것은 이 장벽에 정면으로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인텔은 2016년에 예정되었던 10나노미터 공정 노드 전환을 처음으로 지연시켰고, 이후 경쟁사 TSMC와 삼성에 뒤처지는 전례 없는 상황을 경험했다. 한때 "인텔 안이면 안심"이라는 마케팅 문구로 업계를 지배하던 회사가, 자사의 칩 생산을 경쟁사 파운드리에 위탁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무어의 법칙의 종언을 선언했다. 심지어 무어 본인도 2015년 인터뷰에서 이 법칙이 "10년 안에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선언을 섣불리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오류일 수 있다. 무어의 법칙의 역사는 동시에 그것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새로운 발명으로 돌파구를 찾아온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11년, 인텔은 혁신적인 구조적 전환을 단행했다. 평면(2D) 구조의 트랜지스터가 한계에 다다르자, 채널을 수직으로 세워 게이트가 세 면에서 감싸는 '핀펫(FinFET)' 구조를 도입한 것이다. 기판 위에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솟아오른 이 3차원 구조는, 동일한 면적에서 게이트의 제어력을 획기적으로 높여 누설 전류를 크게 줄였다. 이것은 단순한 공정 개선이 아니라 트랜지스터 구조 자체의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이후 업계는 한 발 더 나아가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Gate-All-Around)' 구조를 도입하고 있다. 게이트가 채널을 사방에서 완전히 감싸는 이 구조는, 삼성이 3나노미터 공정에 처음 적용했으며 인텔도 뒤를 따르고 있다.


단일 다이의 집적도 향상이 물리적으로 어려워지자, 시스템 수준에서의 혁신도 뒤를 이었다. 칩을 평면으로 배치하는 대신 수직으로 쌓는 3D 패키징 기술이 등장했다. AMD의 '3D V-캐시' 기술은 캐시 메모리를 프로세서 위에 직접 적층하여, 두 칩 사이의 데이터 이동 속도를 극적으로 높였다. 하이 밴드위스 메모리(HBM)는 여러 층의 DRAM을 수직으로 쌓고 수만 개의 미세 구멍(TSV, Through-Silicon Via)으로 연결하여, 기존 메모리 대비 수십 배의 대역폭을 제공한다. 이것은 오늘날 AI 연산의 핵심 부품으로, SK하이닉스, 삼성, 마이크론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다.


칩렛 아키텍처도 중요한 흐름이다. 하나의 거대한 칩을 만드는 대신, 기능별로 분리된 작은 칩(칩렛)들을 첨단 패키징 기술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AMD가 이 전략을 먼저 적극적으로 채택하여 인텔을 추격했고, 애플의 M 시리즈 칩도 이 원리를 활용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공정 노드에서 최적화된 칩렛들을 조합함으로써, 전체 시스템의 성능과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오늘날 TSMC와 인텔이 경쟁하는 전선은 단순히 '몇 나노미터'가 아니라, 얼마나 정밀하게 칩렛들을 연결하고 조합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의 정신—주어진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컴퓨팅 성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겠다는 의지—은 그 물리적 형태를 바꾸면서도 살아남고 있다.


이쯤에서 한 걸음 물러나, 더 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어의 법칙이 가져온 것은 단순히 빠른 컴퓨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의 정보 처리 능력 전체를 지수 함수적으로 끌어올리는 기반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현대 문명의 핵심적인 전환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1990년대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라우터와 서버의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따라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리가 설계한 하이퍼텍스트 개념은 아름다웠지만, 그것을 전 세계적 규모로 실현하려면 어마어마한 컴퓨팅 인프라가 필요했다. 무어의 법칙은 그 인프라를 해마다 저렴하게 공급했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프로세서가 손바닥 크기 안에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무대에서 "인터넷이 가능한 아이팟, 전화기, 그리고 인터넷 통신기기"를 하나로 묶은 기기를 선보였을 때, 그것은 단순한 제품 출시가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집적화의 결실이 마침내 일상의 물건으로 응결되는 순간이었다.


딥러닝이 2010년대에 부활한 것은 더욱 직접적인 사례다. 신경망의 수학적 아이디어는 194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역전파 알고리즘도 1980년대에 이미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 알고리즘을 충분히 큰 신경망에 적용하려면 엄청난 행렬 연산이 필요했고, 당시의 컴퓨터로는 현실적인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없었다. GPU가 그래픽 처리라는 본래 용도를 벗어나 병렬 행렬 연산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그 GPU의 성능이 무어의 법칙을 따라 해마다 향상되면서, 드디어 1만 개, 100만 개, 1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신경망 훈련이 가능해졌다. 2012년 AlexNet이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했을 때, 그것은 알고리즘의 승리인 동시에 하드웨어 발전의 승리였다.


오늘날의 대규모 언어 모델과 생성형 AI의 시대는 어떤 의미에서 무어의 법칙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컴퓨팅 자원이 한꺼번에 개화하는 현상이다. GPT-4와 같은 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사용된 컴퓨팅 자원은 불과 10년 전의 기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였다. 단백질 접힘 문제를 알고리즘으로 풀어낸 알파폴드, 핵융합 제어에 딥러닝을 적용한 연구들, 수백만 개의 신약 후보 물질을 시뮬레이션하는 AI 시스템들 모두 같은 뿌리에서 자라났다. 고든 무어가 1965년에 그린 지수 곡선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지금 그 진정한 잠재력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법칙의 끝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질문이 아니다. 경제학적 질문이고, 지정학적 질문이며, 어쩌면 문명론적 질문이기도 하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무어의 법칙의 둔화는 이미 가시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과거에는 새 세대 칩을 설계하면 자동으로 성능이 두 배가 되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하드웨어가 알아서 느린 코드를 보완해줄 것이라고 기댈 수 있었다. '공짜 점심(free lunch)'이라고 불리던 이 관행은 2000년대 중반에 이미 끝났다. 이제 성능 향상은 더 이상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프로그래머는 병렬 처리를 명시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시스템 설계자는 특정 작업에 최적화된 전용 하드웨어를 검토해야 한다.


지정학적 측면에서의 파장은 더 거세다.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은 사실상 국가 안보와 동의어가 되었다. 미국이 2022년 반도체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에 대한 첨단 칩 및 장비 수출을 제한한 것은, 무어의 법칙의 최전선에 있는 기술이 군사력과 경제력의 핵심 요소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SML의 EUV 장비는 중국에 수출이 금지되었다. 중국은 수십조 원을 투자하며 자체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 축적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칩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의 지리적 분포를 보면 미국(설계, 소재, 장비 소프트웨어), 네덜란드(리소그래피 장비), 일본(소재, 부품), 한국과 대만(제조)이 서로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 무어의 법칙이 만들어낸 것은 기술적 성과만이 아니라, 어느 한 나라도 단독으로 완결할 수 없는 깊은 상호 의존의 구조였다.


기술적 돌파구는 어디서 올 것인가. 가장 뜨겁게 논의되는 후보는 역시 양자 컴퓨팅이다. 고전 컴퓨터가 비트(0 또는 1)를 사용하는 반면, 양자 컴퓨터는 중첩(superposition)의 원리를 이용해 0과 1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큐비트를 사용한다. 이론적으로, 충분히 많은 큐비트를 갖춘 양자 컴퓨터는 고전 컴퓨터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암호 해독, 분자 시뮬레이션, 최적화 문제 같은 분야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현재 양자 컴퓨터는 오류율이 너무 높고, 계산 가능한 문제의 범위가 제한적이며, 절대영도에 가까운 냉각이 필요해 운영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가 경쟁적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실용적인 범용 양자 컴퓨터가 고전 컴퓨터를 대체하는 시점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뉴로모픽 칩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인간의 뇌는 20와트의 전력으로 현존하는 어떤 수퍼컴퓨터보다 복잡한 인지 작업을 수행한다. 뉴로모픽 칩은 뇌의 신경 구조를 모방하여, 에너지 효율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텔의 로이히(Loihi) 칩이나 IBM의 트루노스(TrueNorth) 칩이 이 분야의 선도 사례다. 광컴퓨팅은 전자 대신 광자를 신호의 매개체로 사용하여, 데이터 전송 속도를 빛의 속도로 끌어올리고 열 발생 문제를 근본적으로 줄이려 한다. 실리콘 포토닉스 분야는 이미 데이터센터 내부의 통신에 일부 적용되고 있다.


이 중 어느 것이 무어의 법칙의 후계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이 모두가 조금씩 기여하며 새로운 복합적 진보의 시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컴퓨팅 성능의 향상에 대한 인류의 수요가 멈추지 않는 한—그리고 AI가 그 수요를 폭발적으로 키우고 있는 지금—, 무어의 법칙이 열어놓은 지향점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무어의 법칙의 진정한 교훈은 숫자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가능해 보이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산업 전체가 그 목표를 공유하며, 세대를 이어가며 기술적 장벽을 하나씩 돌파해온 인간의 집단적 의지에 관한 이야기다.


고든 무어는 자연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력, 즉 측정 가능한 약속을 만들어낸 것이다. 야구에서 타율 3할을 목표로 하는 타자처럼,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목표로 훈련하는 육상 선수처럼, 반도체 산업은 매 2년마다 갱신해야 할 기록을 스스로 공표하고 달려왔다. 그리고 그 약속은 60년 가까이 지켜졌다. 이것은 물리학의 승리가 아니라, 엔지니어링과 경제학과 인간의 야심이 정밀하게 맞물려 빚어낸 합작품이다.


2023년 3월, 고든 무어는 하와이에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법칙은 단순히 반도체 기술의 이정표가 아니라, 인간이 집단적으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했다. 명확한 목표, 공유된 믿음, 그리고 끊임없는 혁신. 그것이 무어의 법칙이 60년을 살아남은 비결이었다.


(이미지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C%96%B4%EC%9D%98_%EB%B2%95%EC%B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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