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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아내와 사회부 남편의 기이한 하루

1. 아내는 정치부 남편은 사회부

by ㄴㄱㅅㅇ Apr 01. 2025
지브리 느낌의 기자 부부. 사진=챗GPT. ㄷㄷㄷ.

우리는 부부다. 우리는 기자 부부다. 우리는 신문기자 부부다. 우리는 동갑내기 신문기자 부부다. 우리는 동갑내기 신문기자 부부였다. 우리는 같은 날 백수가 된 동갑내기 신문기자 부부였다.


우리 관계를 설명하는 무수한 표현이 있겠지만 '부부'와 '기자'가 단연 핵심이다. 이 두 개의 단어에서 탄생한 우리 둘의 에피소드를 열거하자면 책 5권은 쓸 수 있다고 자신한다(글빨 좋은 아내가 4권은 쓰겠지?). 그중에서도 정치부 아내와 사회부 남편의 생활을 비교해 보면 전례 없는 기이함이 있다.


아내는 신문의 1면을 담당하며, 회사 에이스 중 에이스가 포진된 정치부 기자였다. 나는 대박이 나면 당당히 1면에, 쪽박이 나면 '얘가 오늘 했나' 아무도 모를 수도 있는 사회부 기자였다. 


우리는 그날 어떤 기사를 쓸지 고민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이따 봐!"


아내는 도청으로, 나는 ???으로 향했다.


▲'문서 지옥' 자처한 정치부 아내


부지런한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 요가를 하며 몸을 깨우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후 야채가 가득한 건강식 아침을 먹으며 출근 준비를 하고, 한창 꿈나라인 남편에게 간단한 인사 또는 포스트잇 메모를 남긴 뒤, 무려 출근시간보다 2시간 일찍 회사에 도착해 업무(종종 개인적인 일거리)를 시작했다.


이후 회사에서 도청 기자실로 장소를 옮긴 아내는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린 꼰머들의 온갖 얘기들을 오구오구 (흘러) 들어주며 마음을 가다듬고, 곧이어 주요 부서 실국장 또는 도지사의 브리핑이 시작되면 그때서야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브리핑으로 기사를 쓰거나 도청 보도자료가 말끔하게(=기사 쓰기 좋게 =비판 없이 복붙하기 좋게 =행정이 원하는 대로) 잘 나와 큰 무리 하지 않고 그것들로 하루를 보내는(때우는) 기자들이 다수였지만, 아내는 달랐다.

백수가 된 기자 부부의 낮술ㅋ

아내는 문서 지옥을 자처했다. 그들처럼 브리핑, 보도자료에 의존하지도, 만족해하지도 않았다. 아내는 늘 책상에 탑처럼 문서를 쌓아두곤 형형색색 펜을 휘두르며 분석하고 공부했다. 이 문서들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 나름 정보공개청구에 일가견 있는 나조차도 혀를 내둘렀다.


일명 야매기사 쓰는 기자들에겐 이런 행위는 시간 낭비 비효율의 극치였겠지만, 아내는 정치행정부 기자라면 도정 주요 시책과 정책에 대해 확실히 이해해야 하고, 공부 또 공부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아내는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전화가 아니라 직접 찾아가 물었고, 자료가 나오는 토론회인데도 굳이 직접 찾아가 들었다. "직접 가야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알 수 있어"라는 말은 내가 좋아하는 아내의 명언 중 15813째다.


어떻게 매일 이렇게 사나. "대충 해~"라고 대충 한 말에, 아내는 "문장이라도 내 거 거야"라고 사람 머쓱하게 했다. 다음날 아침 도내 일간지를 쫙 펴서 보면 매일 아내의 기사만 달랐다. 아내는 이렇게 정치부 기자로 6년을 일했다(물론 중간에 잠시 부서를 옮기긴 했지만).


그런 아내가 퇴사한다고 하니 지역기자사회가 발칵 뒤집힐 수밖에. 내가 퇴사한다고 할 땐 고생했다고 손 흔들어 주던 사람들이 아내가 퇴사한다니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손을 잡고 놓질 않았다. 아내의 결심이 확고하단 걸 알자 이젠 "여기로 와라", "저기가 너를 원한다" 온갖 이직 제안을 했다. "아니 이런 곳에서?!" 싶은 곳에서의 제안도 들어왔는데, 내 어깨가 으쓱하면서도 사실 내심 부러웠다. 내가 퇴사한다고 할 땐 쓴웃음만 짓던 우리 국장은 내 짝꿍이 퇴사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전화해 "어디 아프냐", "무슨 계획이냐", "안 좋은 일이 있었냐" 등 태어나 처음 보는 따뜻함을 보이기도 했다.


▲'30번 넘게' 기사 쓴 사회부 남편


사회부 기자인 나는 요가고 밥이고 나발이고 아침인 줄 모르고 잠을 퍼질러 잤다. 아내의 온기가 사라진 지는 오래다. 그래도 듣도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기사들을 잘도 가져왔, 쓰는 족족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에 회사는 나의 출퇴근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사실 나에게도 사정은 있다. 열악한 지역언론 환경 탓에 나는 퇴근하고서야 비로소 내 기사를 취재하고 쓸 수 있었다. 다음날, 며칠 뒤 기사까지 미리 취재하고 써놨는데 늦잠 조금 잘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탐사보도를 할 때면 밤을 꼴딱 새우는 날도 많았다. 물론 추가 근무 수당은 단 한 번도 받은 적 없다. 근무 시간에 뭐 하냐고? 그날 면 채우기에 급급했다. 일간지 기자가 하루에 기사를 20개까지 쓰는 날도 있었다.

수능 취재하는 기자 부부. 회사는 달라도 꼭 붙어있었다 히히,

그렇다 하더라도 부지런한 아내와 비교하자면 나는 백전백패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나름 자부심과 사명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했다. 특히 출입처, 공무원 중심의 취재 관례를 과감하게 던져버린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출입처에는 커피가 맛있어서 아니면 또래 기자들을 만날 때나 갔다. 대신 현장과 시민들에게 더 밀접하게 다가갔다. 기자생활 겨우 4년 했지만 도내 어떤 기자들보다도 많은 현장을 다녔고, 많은 취재원을 확보했다고 자신한다.


의제를 설정하는 아젠타 세팅(Agenda Setting)에서 나아가, 의제를 끝까지 지켜가는 아젠타 키핑(Agenda Keeping)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로 많은 이들이 인정하기도 했다. 최근 3년 동안 10여 개 의제에 대해 연속보도를 이어갔다. 한 의제에 최소 5번 최대 30번 이상의 기사를 썼다.


술자리에서 선배들이랑 언론의 위기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너는 뭐 했냐"는 선배의 호통에, "나요?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바꾸었다요!" 건방지게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용기의 원천이기도 했다. 반론을 듣다가 "너 관종이냐?"라는 말을 들었을 땐 컥했다. 끝을 봐야 하는 기질에 더해 나름 신념이라고 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하는 이었다. "그... 그러니까, 다... 당신이 그러지 말았어야지!"라며 그날은 말로 혼꾸녕을 내줬던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아내와 술자리에서 나는 "나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야"라고 어필하다 말고 "나 너무 힘들다 으엉엉어ㅓ어엉" 추태를 부기도 했다.


그런 내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붙잡는 사람 하나 없었다. 국장님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사정 아니까..."라고 했다. 퇴사 면담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타사 선배들도 "우리 회사로 데려 오고 싶은데..."라면서도 말을 마치지 못했다. 그들 회사의 사정도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내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다뤄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xxx는 갔지만 xxx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구나"라며 타사 선배한테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내가 1년 6개월 간 10번 넘게 단독보도 한 사건이 결국 검찰 보도자료로 나오며 매듭지어졌다. 서울, 수도권 언론사까지도 나의 1년 6개월 전 기사를 따라 썼다.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뉴스 대신 예능... 집에서는 기자 대신 부부


아내는 헬스로, 나는 복싱으로 하루의 공식적인 일과를 마친다(하지만 나는 늦은 밤 비공식적으로 일을 이어한다 ㅠ.ㅠ). 늦은 저녁 집에서 만난 우리는 가벼운 소맥 한 잔을 만 뒤 티브이를 켜고 뉴스 대신 예능을 본다.


티브이 소리를 백색소음으로 하고 우리 부부는 조잘조잘 얘기를 나눈다. 그렇지만 업무와 관련한 얘기는 장황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서로 몸 담는 분야가 달라서라기 보단 굳이 이 집에서만큼은 우린 기자가 아니라 부부이고 싶기 때문이다. 신기한 사실은 둘 다 하루를 온통 기자 신분으로 보냈으면서도 이와 무관한 새로운 얘기를 끊임없이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업무와 관련해 위로가 피로할 땐 서로의 얘기를 경청해 준다. 물... 물론 아내가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경우가 90% 같긴 하지만. 아무튼 기자 일에 진심인 우리 둘이 부부니 그 누구보다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정말인지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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