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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으로 일관하는

EP-3

by 무명독자

2002년. 8살의 민수.


민수는 다리를 쭉 뻗은 상태에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그네를 타고 있다. 하늘이 보였다가 단풍잎이 보였다가 하는 풍경이 마냥 즐거워 이대로 걱정 없이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분쯤 지났을까? 학교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바로 세우고 출입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수많은 학생들 사이로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누나를 발견하자마자 실내화 가방을 흔들며 뛰어가고 있다.


“누나!!”

“민수! 오래 기다렸지? 친구들이랑 얘기 좀 하고 오느라고.”

“아니? 오래 안 기다렸어. 그네 타고 있었어.”

“잘했어^^. 민수야! 오늘 무슨 요일!? “

”토요일!! “


토요일. 이 날은 누나랑 같이 하교하는 날이자,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날이다. 게다가 오늘은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고 하니. 심지어 날씨까지 완벽하니 귀에 걸린 민수의 입은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안 하고 있다.


“ㅎㅎ배고프지? 얼른 가서 먹자.”


——


[오늘 물어볼까?]

“누나. 근데 언제 도착해?”

“저 앞에 파란색 글씨로 된 영어 간판 보이지? 오늘 갈 곳이 저기야. “

“우와 짱 크다. 근데 저거 뭐라고 읽어?”

“영어 그대로 말하면 패밀리마트인데, 사람들은 훼미리마트라고 부르더라.”

”그래? 누나는 뭐라고 부르는데? “

“패밀리마트.”

“그럼 나도 패밀리마트라고 부를래.”


민수는 패밀리마트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는 누나의 뒤꽁무니만 쫓아가고 있다. 과자가 진열되어 있는 코너를 지나 멈춰 선 누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야. 오늘 우리가 먹을게. “


“먹을게.”라는 말과 함께 삼각형 모양의 음식을 집어 들었다. ‘참치마요’가 써져 있는, 공백이 채워진 트라이앵글 같은 음식을.


“이게 뭐야? “

“삼각김밥. “

“이게 그렇게 맛있어?”

“응. 전주비빔밥도 같이 사자. ”

“궁금하다. 얼른 먹어보고 싶어.”

”우선 계산부터 하고. 밖에 나가있어 민수야. “


——


[이따가 물어보자.]

“이거 어떻게 먹어?”

“누나 하는 거 보고 잘 따라 해 봐. 우선, 여기 가운데 부분 뜯어져 있는 거 보이지? 이거를 잡고 밑으로 천천히 내리면서 뜯어. 그리고.. “


민수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채 일어나서 누나가 앉아있는 의자 옆으로 옮긴 후 다시 앉았다.


“천천히 내리면서 뜯고~ 한쪽을 잡은 상태에서 비닐을 옆으로 쭉 빼내고~ 반대쪽도 똑같이.. “

“누나. 그냥 누나가 뜯어줘..”

“에휴ㅋ 알았어.”


——


누나는 양손에 든 삼각김밥을 보여주며 말했다.

“한 입씩 먹어보고 더 맛있는 거 민수가 먹어. “


민수는 왼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이거 먹을래. 빨간 건.. 그냥 싫어.”

“그래..^^”


——


“어때?”

[그냥 그래..]

“응..? 어, 맛있어.”

“다행이다^^”


[이제 물어볼까?]

민수는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옷에 닦으며 누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누나. 나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 “

“뭔데?”

“누나는 엄마 아빠가 싸울 때마다 왜 자꾸 기도해?”


누나는 잠시 저작운동을 멈추고 민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기도 밖에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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