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은 마치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처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때도 그렇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새 물건을 사서 만져볼 때, 선물을 받았을 때, 호기심에서부터 시작된 설렘 등 여러 경우에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설렘이 있다. 이러한 설렘이 있는 삶은 생기가 있고 활력이 넘친다. 설렘이 사라지면 무미건조한 삶이 되고 희망의 끈이 줄어든 것처럼 허전할 것이다. 나이가 듦에 따라 설렘의 느낌 폭도 줄어들고 무뎌지기거나 희미해질 수도 있겠다. 그것은 저마다의 감성 지수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설렘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감성이 살아 있는 만큼 스스로 존재감을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지도를 보면서 모임 초대받은 집에 찾아갈 생각이었다. 집에 있을 땐 비가 그렇게 많이 오는 줄 몰랐다. 길을 나서고 보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앞이 보이질 않았다. 도저히 빗길을 헤치고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심조심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중간에 월그린 간판이 보이길래 일단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를 세운 후 좀 늦을 것 같다는 전화를 한 후 우버를 불렀다. 6분 기다려야 된다고 해서 기다렸다. 우버는 6분보다 배나 훨씬 지나서 도착했다. 내 차는 낯선 곳에 주차해 놓고 선물과 음식이 든 가방을 챙겨 들고 우버 택시로 바꿔 탔다. 내가 차를 탄 이후에 기사는 내가 부른 게 취소된 걸로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취소하지 않았으니 빨리 가자고 했다. 기사는 다시 부르라는 것이다. 잠시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그 차를 타고 초대받은 집에 도착했다. 워낙 집에서 일찍 출발했기에 중간에 그런 해프닝이 있었어도 그리 많이 늦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늦을까 봐 조바심치던 마음을 달래면서 들어갔다. 오는 동안 있었던 사정을 변명하듯 얘기했다. 많이 늦은 것도 아닌데 애썼다며 다들 내 마음을 안심시켜 주어서 고마웠다. 가져온 음식을 꺼내놓고 선물도 꺼내서 먼저 온 사람들이 내놓은 테이블에 내 것도 올려놓았다. 잠시 예쁘게 포장된 크고 작은 선물들에 눈길이 머물렀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와, 이 중에서 어떤 것이 내게로 올까? 작은 호기심과 설렘도 반짝 생겼다.
올 사람은 다 왔기에 식사를 하게 되었다. 저마다 한 가지씩 준비해 온 음식들을 차려 놓으니 푸짐하고 맛있어 보였다. 식사 시간은 화기애애했다. 사태찜, 두부조림, 우거지 고등어조림, 닭볶음탕, 콩나물무침, 갓김치 등 먹음직스러운 게 많았다
내가 해간 것은 닭볶음탕이었다. 먹기 좋게 손질한 닭에 야채 듬뿍 넣고 물볶음탕을 한 것이다.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하였다. 맵지 않고 야채 듬뿍 넣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많이 먹을 수 있다. 후식으로 과일과 차도 마시며 얘기꽃을 피웠다.
크리스마스 겸 연말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선물 교환이다. 비록 적은 액수의 선물일지라도 준비할 때부터 뭘로 하면 좋을까, 뭘로 해야 호응이 좋을까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선물 교환 시간이 되니 다른 사람들은 어떤 걸 준비했을까에도 관심이 간다. 선물 교환 규칙이 흥미롭다. 처음에 번호 뽑기를 해서 1번부터 돌아가면서 갖고 싶은 선물을 골라 가는 것이다. 두 바퀴째는 자기가 고른 게 맘에 안 들면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바꿀 수 있다.
내 차례가 돌아왔다. 11명 중에 9번이었다. 선물 카드가 좋을 것 같았다. 애초 정해진 액수보다 배가 되는 선물 카드가 있었다. 다들 그걸 눈독 들이는 것 같았다. 내가 준비한 것도 그 액수의 선물카드에다 몇 가지 작은 선물을 더 넣어서 인기 있었다. 두 번째 내 번호는 11명 중 6번이었다. 내 차례가 돌아오니 약간 설렜다. 하필 모두 눈독 들이는 것 같은 선물 카드가 제일 연장자에게 돌아가 있었다. 좀 미안한 맘도 있었지만 바꿔 왔다. 다들 손뼉 치고 웃으면서 재미있어했다. 아, 그게 나한테까지 돌아왔다. 잠시나마 재미있었고 기분 좋았다. 그다음 번호들이 남아 있기에 지킬 수 있을까 싶긴 했다. 결국은 뺏기고 말았다. 아, 그럴 줄 알았으면 미안한 마음까지 들면서 뺏어 오지나 말걸 후회가 되었다.
돌아올 때 내 차를 주차해 놓은 곳까지 나를 태워준 이에게 내가 뽑은 선물을 다시 선물로 건네주었다. 난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가만 생각해 보니 선물 뽑기 할 때 괜히 욕심을 부린 것 같아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남들 다 선호하는 좋은 걸 뽑지 말고 웬만한 걸로 챙겼더라면 뺏기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처음에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들이 놓인 것만 보고도 괜히 기분 좋고 설레었다. 제일 좋은 걸 고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생겼던 게 화근이었다. 그 사이 불안함도 일었고, 후회도 만들었다. 제일 좋은 선물은 내 손에서 멀어졌다. 아무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