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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미래의 나에게 떠넘기는 마음의 빚

오늘도 꿈에서 현실로 하루를 이어내며

by Karel Jo Mar 23. 2025


나는 꿈을 매일같이 꾸는 사람이다. 하루의 잠에 한 개의 꿈을 꿀 때도 있고, 세네 개의 독립적인 꿈을 꾸는 날도 있다. 어느 날은 그 세네 개의 꿈이 모두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가 아닌, 마치 드라마 에피소드 몇 개로 엮어진 마냥 머릿속에서 재생되기도 한다. 원치 않는 넷플릭스를 시도 때도 없이 틀어주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꿈을 왜 이렇게 많이 꾸는 걸까?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도 보통은 그렇게 꿈을 많이 꾸지 않는 모양이다. 또는 꾸는데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고. 그래서 가끔 눈을 반짝이며 '나 어제 진짜 재밌는 꿈/황당한 꿈 꿨잖아'라고 말을 시작하는 친구들을 볼 때, 안 그래도 공감능력이 부족한 나는 그저 웃으며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꿈을 매일 꾸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내용이라도 좋으면 그렇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도서관 휴게실에서 차 한잔을 놓고 책을 한 열 권쯤 쌓아둔 채로 언제 다 읽지라는 행복한 고민과 함께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는 꿈이랄지,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과 도시 한가운데에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 카페에서 둘만의 시간은 느린 채로 흘리는 꿈이랄지.


내가 꾸는 꿈은 다행히 그렇게 동적인 편은 아니다. 원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꿈에서조차 나는 신체능력이 뛰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안타깝게도 슬픈 꿈을 꽤 길게 꿔야 하는 상황이 된다.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놓쳐 상대방을 붙잡아야 함에도, 그녀를 붙잡으러 가는 그 순간들이 마치 슬로 모션이 걸린 것처럼 느릿하게.


아마도 나는 생각이 너무 많고, 내가 본 것들에 대한 장기 기억력이 지나치게 높은 탓에 내가 겪었던 일을 창조적으로 재조합해 없던 일도 꿈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가 보다. 또는 내 안에 억눌린 욕망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로 매일 그렇게 마음 어딘가에 묻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우울증에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했을 때 심리치료를 먼저 관두게 된 이유도 비슷한 이유였다. 나는 나 자신이 오랫동안 묻어둔 진짜 욕망이 뭔지를 파헤치는 게 두려웠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때는 시간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여유가 없어 당장의 상태가 좋아진 것에 만족하고 또 새로운 흙으로 덮어냈다.


매일 꿈을 꾸는 건, 풀리지 않는 내 욕망의 아우성일수도 있다. 발현되지 못한 그 감정의 아우성을 듣는 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책임으로 값을 치러야 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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