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42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연애 초, 아내의 거절과 30일간의 편지

'자만추' 직진의 정석, 후진 없는 아우토반

by Karel Jo Mar 24. 2025


"아직 나는 여유가 없는 것 같아"


라고 웃으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던 나를 안아준 뒤 출국장으로 나를 떠밀어 보낸 아내의 얼굴 표정이 어땠는지를 나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확실한 건 그다지 울고 있는 표정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그다지 후련하거나 확실함을 담은 결연한 표정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확실한 건, 그때 예상하지 못한 아내의 거절에 많은 생각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스탄불 공항 즈음부터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친한 친구에게서 이스탄불에 도착해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릴 때 걸려온 보이스톡에서, 잘 되었냐는 친구의 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려대고 사연 있는 남자가 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공항 앞에서 거절당한 인연의 가장 안타까운 점이라면, 스스로 그를 씻어내거나 받아들일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이름 모를 모두와 나의 사정을 함께 나눌 수밖에 없다는 걸 것이다.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아내가 '지금은 여유가 없어'라고 말하며 나를 보낸 순간을 몇백 번이고 반복적으로 머리에서 재생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일까, 우크라이나어로는 반대가 다른 뜻인가?
아닌데, 그러기엔 우린 영어로만 얘기했는데.
싫다고는 안 했잖아, 여유가 없다는 말을 했지.
멍청이야, 곧이곧대로 말을 안 한 거지 이건 그냥 끝이야.


그 당시 내 옆에 앉았던 이름 모를 노신사분과 숙녀분, 그리고 잠도 자지 않고 한숨과 눈물로 비행을 지새우던 나에게 프로답게 커피와 간식거리를 끊임없이 권해준 터키항공 승무원 분들의 친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여전히 내가 터키항공을 꾸준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굳은 충성심의 시작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 이틀 정도 나는 깊은 실의에 빠져있었다. 이미 서로 간의 마음을 확인을 끝낸 채로 공식적인 관계에 대한 정리만 필요하다 생각했고, 지독한 J, 통제형인 나는 아내의 대답을 시작으로 결혼비자까지 처리하는 과정을 이미 죽 세워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계획이 시작부터 틀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그때가 주말이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그저 멍한 상태를 이어갔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을 수 있던 그때의 후일담으로, 아내는 당시 너무 자신만만한 나의 태도에 대답을 망설였다고 했다. 아내 또한 처음 나를 만나서, 내가 실존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기뻐했고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단계였으나, 내가 혼자서 모든 게 완벽하다고 단정 짓고 나를 택함으로 아내 자신과 우리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나에게 아내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정황을 그때는 알 리가 없었으니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해 어두움 속에 나를 감추던 때, 아내 쪽에서 먼저 한국엔 무사히 잘 도착한 지 묻는 문자를 보내왔고, 나는 실의에 이어 깊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유가 없다는 말은 사실 생각대로 거절이 아니었단 말인가? 혼란 속에 담담하게 비행기가 조금 흔들렸지만 괜찮다. 시차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답하고, 나는 그때 공항에서의 아내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아내도 지금의 나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때 그냥 그렇게 포기했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아내는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지금의 두 딸 또한 딸이 아닌 아들이 되었을 수도, 또는 딸이지만 지금의 소중함은 아닌 다른 소중함으로 내게 와줘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아내의 애매함에서,
이건 거절이지만 거절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날부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요기 베라의 흔한 명언을 핑계 삼아, 나는 다시 아내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지만,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담담하게 생각을 전하자고 마음먹고 나는 펜을 잡고 아내에게 A4 지를 한 장 꺼내 손 편지를 써 내려갔다.


그 편지를 쓴 날부터 중국으로 취업한 아내를 베이징에서 다시 만나는 데까지 걸리는 한 달 동안 끊임없이 도합 30일 동안 나는 30장의 A4 위에 나의 마음을 써 내려갔다.  편지는 그날 바로 스캔하여 아내의 이메일로 보내고, 실물은 옛날 종이 접기로 쪽지를 묶어내듯 접어 아내를 찾아간 한 달 뒤에 박스에 모아 전달해 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매일 애타게 너를 그리며 사랑한다는 그런 뜨거운 내용은 아니었다. 내가 주로 편지를 쓰는 시간은 아침 출근길이었는데, 대부분의 시작이 날씨가 어땠는지, 전날 밤에 달은 얼마나 밝았는지, 그 사이에 생각난 네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런 표현을 담아 시작하곤 했다. 지금 기억나는 구절이 있다면 대강 이런 느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길에 걸려 있는 나무의 이슬은 오늘도 그렇게 맑지 않았어. 공기가 탁하기 때문이겠지. 네가 베이징에 오게 되면 베이징은 여기보다 공기가 더 좋지 않을 텐데 잘 적응할 수 있을지가 벌써부터 걱정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넌 나에게 참 소중한 사람이고, 난 달리 너를 포기할 방법도 알지 못하니까 말이야.


그렇게 아내의 거절에 한 달 동안 편지로 화답한 결과, 베이징에 찾아간 그 주간에 우리의 연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그 과정도 곧바로 이어진 것은 아니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조금은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때 직진하지 않았더라면, 운명은 나에게 다른 결과물을 안겨 주었을 거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장모님이 오시고 식탁 위가 달라졌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