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피아노

김겨울, 제철소(2022)

by Eucalyptus



<멈추지 않는 피아노 예찬>



- 들어가며

한달 전인가, 도서관에 있는 김겨울 작가님의 책을 몽땅 빌릴까 고민했다. 김겨울님은 유튜버로도 유명한 분인데, 항상 책 이야기를 하면서 새어나오는 그 분의 행복한 웃음은 별 생각 없이 클릭한 시청자마저 잠깐이나마 도서관에 가볼까, 고민하게 만든다. 그 분의 책은 도서관 서재 맨 아랫단에 있었다. 기억나는 서평인 ‘처음 몇 페이지 읽고 나서는 중후한 작가의 글인 줄 알았다’가 작가님 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항상 훌륭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표현 방법을 자세히 눈여겨 보았고, 김겨울님도 그 중 한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내가 에리히 프롬의 책을 더 읽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아무튼, 피아노’를 서가 사이에서 쪼그려 앉아 후루룩 펼쳐서 구경하고 도로 넣어 놓았다. 그 때 읽은 문장이, 13 페이지의 ‘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였다.


그 말이 내 무의식에겐겐 퍽 인상깊었나보다. 지금의 나는 언어교환 앱에서 만난 피아노 전공자의 ‘Everything happens to me’ 추천 덕분에 새로운 음악을 연습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연습한 ’River flows in you’ 이후의 첫 곡이다. 티모시 샬라메의 보컬로 들어보라며, 이 노래는 보컬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을 연습할수록 공감하고 있다.



- 연습하기

수능공부를 하는 동안 먼지 쌓인 피아노를 간간히 치긴 했었다. 비록 근 4년동안 같은 곡의 9마디 정도만 반복했지만 말이다. 수능 후 무색 무취의 내 방에 놀러온 새로운 곡은 나를 들뜨게 했고, 매일 세마디씩 연습해 지금은 9마디 정도 외웠다. 어제는 연습하다 'River flows in you'를 다시 쳐봤는데, 이럴수가. 내가 이 곡에서 이렇게나 날라다녔구나, 속도도 이렇게 빠르게 치는데 스트레스가 없네! 고백송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또랑또랑하게 친 것 같았는데, 그냥 느낌 뿐이었을까? 다음엔 녹음버튼을 키고 쳐봐야겠다.


이번 책을 읽으며 컴플렉스였던 내 긴 손가락에 자부심까지 느끼게 된 나는, 어느 정도 익힌 음표들을 일정한 사운드로 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더불어 이 연습이 빛을 발할 어쿠스틱 피아노가 있는 집앞 연습실의 가격을 알아보고는 놀라기도 했다. 30분에 3천원이라니. 이 고물가 시대에, 어떻게 붕어빵 3개 가격하고 비슷할 수 있는 거야! 악보를 끝까지 숙지한 후에 꼭 가보리라.



- 3년의 법칙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유튜버 '탱로그' 덕분이다. '드뷔시 난 싫어?' 영상을 보고 입덕했다. (클래식 관련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단연코 1타 강사, 아니 이정도면 0타 강사이다. 미국 유학 브이로그도 정말 재미있는데, 그의 100만을 방구석 키보드 앞에서 열렬히 응원한다.) 열정이 반짝반짝 빛나며 상대방에게까지 에너지를 전달하는 사람은 내 오랜 이상향인데, 그가 바로 그랬다. 3년 전에 힙합을 입문했고 지금은 처음 듣는 힙합 노래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이젠 클래식의 차례가 왔나 보군. 향유하는 사람을 넘어 참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 책갈피

p.13

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p.89

또 어떤 순간에는 내가 나를 속이지 않고서는 삶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도 배웠다.


p.91

한탄과 고성과 협박 사이를 쳇바퀴처럼 돌던 시절이었다.

그건 단순히 사춘기 시절의 맹목이나 이유없는 정념은 아니었다.


p.95

그때 나에게 아르바이트의 피곤함과 재즈 피아노를 치기에는 부족한 소질을 구분할 능력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p.163

마지막까지 듣지 않 고 연주를 판단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꼭 인간과도 같다. 한순간에 파악될 수 없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앞선 사건들이 계속 새로운 의미로 재조직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음악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곡의 의미를 결정할 수 없다. 삶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삶의 의미를 단정할 수 없다.


p.165

그동안 아름다운 글과 소리를 들어서 그것을 만든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까스로 사랑할 수 있었다. 내 안의 소리를 들어서 나의 부족함을 가까스로 인정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서 가까스로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p.166

피아노 건반이 요구하는 확신은 곡이 완성된 후에야 비로소 이야기될 수 있다. 첫 음을 확신 없 이 시작했더라도 마침에 이르러 그 음은 의미 있는 음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모든 것은 건반으로부터 시작되며, 듣는 이에게서 끝난다. 계속 칠 수만 있 다면. 멈추지 않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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