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자주 무너지고, 매번 일어나고 있습니다.

2. 내가 영양실조라고...?

by 오비채

2. 내가 영양실조라고...?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스무 살 초반이었다. 서울로 첫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 모든 세상이 암흑이었다. 이상하게 나의 화면은 흑백으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늘 외로웠고 회사는 무서웠고 집은 적막했다. 나날이 살은 빠져갔고 하루 종일 졸음이 몰려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무력하고 기운이 없었다. 그렇게 든 생각이 “아, 내가 어디가 아픈가 보구나 무슨 병에 걸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회사 근처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하고 며칠 뒤 결과를 들으러 갔다. 의사와 나. 단둘이 있는 진료실에서 의사는 굉장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시작했다. “일단 피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 나는 생각했다 아무 이상이 없는데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그러면서 의사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영양실조 상태라고 했다. 세상에 내가 영양실조라니...? 그 정도로 못 먹은 건 아닌 거 같은데 말이다. 그러면서 약봉지를 내밀며 영양제를 처방했다고 한다. 하루치 약봉지마다 영양제가 한가득 들어있다. 이거 꼭 잘 챙겨 먹으라며 당부하더니 뒤이어서 하는 말이 내가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순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드라마에서 암 선고를 받는 사람처럼 멍하니 이해 못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의사는 내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죽음을 선택할까 봐 겁이 나는 얼굴로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냐는 질문 등을 하였다. 그때 나는 역겨움이 밀려오기 위해 시작했다. 아,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의사마저도 무슨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겁내며 꺼리는구나, 이건 정말 혐오스러운 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작은 진료실과 저 의사가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공포인지 걱정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괴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의사에게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 이후의 기억은 제대로 나지 않은 채 도망치듯 그 병원을 뛰쳐나왔다.


우울증 환자로 사는 일은 이런 것이다. 의사조차도 겁을 먹고 꺼리는 일.(물론 정신과 의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면 일반인은 오죽하겠는가? 아무리 미디어 매체에서 정신과와 우울증에 대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떠들지만 우리들의 인식은 좋지 않다. 그렇게 나는 그 일을 마음 한편에 덮어둔 채 지내다가 몇 년 전부터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어 고민하다 나의 오랜 불면을 알고 있는 친구와 친동생에게 넌지시 말을 한 적이 있다. “잠을 너무 못 자서 정신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는데 먹었더니 괜찮더라" 하며 우울함이 아닌 불면을 주제로 정신과에 다녀온 얘기를 했는데 둘 다 반응은 비슷했다. ‘아무리 그래도 약은 먹지 마라’ ‘그런 거 위험하다더라 좋지 않다’ ‘그럴 필요까지 있냐 처방받은 것만 먹고 더 가지 말아라’ 하며 흔히들 아는 가벼운 불면증에 도움 되는 팁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정신과를 다니고 있는 것을 모른다. 아마 알게 된다면 더 이상 나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그들이 두려워하고 한편으론 혐오하는 정신과 환자이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는 들키지 않으려고 가면을 써야 한다. 약도 몰래 먹거나 누군가 물어보면 대충 둘러대야 한다. 우울증 환자로 사는 일은 여간 쉽지 않다. 우울증이라는 건 돌연변이 같은 게 아니다. 우리가 모두 한 번쯤은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걸 다들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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