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먀! 하면 냐! 하는 사이
동그란 눈, 작은 코, 겁먹은 표정. 똑 닮은 얼굴을 한 우리는 9년째 우당탕 서로 귀찮게 하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첫 만남은 내 삶의 아주 흐린 어느 날로부터 시작되었다. 고된 회사 생활로 인해 지쳐가는 심신, 나는 나날이 버석해지며 모든 것에 미련이 사라지고 있었다. 두려움을 느낀 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삶의 미련 둘 것을 만들어놓자. 그것은 고양이였다. 그런데 내가 평생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생명은 절대 키우지 않겠다는 것. 하지만 그 다짐을 어기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게 1년여를 고민하다 다짐을 깨트리고 고양이를 데려왔다. 회색 털의 초록 눈을 가진 고양이. 고양이와도 어울리고 내 이름 성과도 어울리는 이름으로 과자 이름을 따와 오레오라고 지어주었다.
고양이의 특성은 경계심이 강하고 겁이 많으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초반 2~3년 정도는 동거자 정도로 지냈던 거 같다. 나라는 사람도 특성이 고양이와 같아서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게 3년 정도 되니까 점점 교감이라는 것이 된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초보집사는 동물병원 데려가는 것도 서툴렀지만 서로의 고생스러운 추억이 쌓였고, 하루에 몇 번씩 마주칠 때마다 살포시 안아주곤 했는데 가만히 있어주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으며, 이름을 부르면 달려와주는 횟수가 늘어났다. 밤에 잠잘 땐 처음엔 행거에서 잠을 자던 레오는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의 집, 캣폴, 해먹, 나의 침대, 내 머리맡, 나와 같은 베개, 나의 배위 이런 식으로 점차 나와의 거리가 좁혀져 갔다. 그 느낌과 감정은 정말로 황홀했다. 행복한 꿈속 같았고 편안한 이불속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진짜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했다.
힘들거나 속상할 때 레오를 붙잡고 주절주절 얘기한다.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레오는 가만히 들어준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직접적인 언어로 대화할 수 없어도 알 수 있다. 우리는 대화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레오는 나의 힘들었던 시절을 같이 버텨준 유일한 존재이자 동지이다. 나 혼자였으면 절대 버티지 못했을 텐데 우리 둘이 그 어두운 시절을 어떻게 같이 버텨왔는지 알기에 서로에게 더 애틋하다. 레오가 두 살쯤 되던 때에 첫 직장에서 퇴사 후 일 년 넘게 취업실패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져 날이 밝을 때까지 잠들지 못할 때도 레오는 같이 밤새어주며 졸린 눈을 반쯤 뜨고 같이 깨어있었다. 새벽에 문득 잠들지 못해 잠자리에서 벗어날 때도 레오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자다 깨 나에게 와서 같이 밤을 지새우곤 한다. 나 홀로 처참히 암흑 속을 헤맬 때도 조용히 옆을 지켜준다. 그저 가만히 옆으로와 기다려준다. 나의 어둠이 가시길말이다. 가끔 마음이 너무 힘들어 유독 더 잠들기 어려운 밤에는 레오에게 평소보다 더 치대며 품에 안길 때가 있다.(나는 평소에 레오 품에 자주 안겨있곤 한다) 보통의 밤이면 보통의 고양이처럼 레오는 1분 정도 참다가 가버리곤 하는데 그런 날은 참 신기하게도 뭘 아는 건지 가만히 있어 준다. 내가 충분히 레오 품에 치댈 수 있게 가만히 있다가 내가 보내주면 그때 본인의 자리에 가서 잠들곤 한다.
레오가 "먀!" 하면 나는 "냐! 하고 대답한다. 우린 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동료이기 때문에 간단한 한국어와 고양이어(?) 그리고 눈짓과 손짓으로 충분한 대화와 티키타카가 가능하다. 레오의 말을 듣고 원하는 걸 해주면 레오는 좋아서 사이렌을 울린다. “마아아아아~~” 레오는 자신의 이름을 내가 어떤 억양으로 부르냐의 따라서도 내 의도를 다양하게 읽을 정도이다. 대략 알아듣는 말들은 가자, 안돼, 이리 와, 자자, 엄마 안아, 밥 먹어, 빨리, 이 정도이다. 오라고 손짓하면 바로 달려오기도 한다. 이 외에도 대부분 불편함 없이 의사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가끔 레오에게 사람인 거 아니까 솔직히 말해도 된다고 슬쩍 말하곤 하는데 아직 넘어오진 않는다. 어쨌건 레오가 고양이건 사람이건 상관없으니 아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