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처절한 노력, 조직의 상생 정신으로 일궈낸 자폐인들의 반전 사례들에 이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던 경우들도 있습니다.
예전에 복지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니 한국의 경우, 장애인들 대상 복지 자체는 다른 나라들 대비 괜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다만 각 부처 및 기관별 서비스가 통합되어 있지 못하고 산발적이라 복지 수혜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하거나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거죠.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지 최근에 호주에서 National Autism Strategy라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폐 가정들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는 이미 비슷한 전략을 취한 영국, 미국, 캐나다에 이은 조치로 자폐 가정들이 진단에서부터 치료까지 더 유기적으로, 더 저렴하게 케어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도 앞서간다고 느낀 이스라엘의 사례를 공유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자폐인 지원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출생부터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생애주기별 통합 지원 시스템입니다. 이는 단순한 복지 정책을 넘어 자폐인을 사회의 소중한 인적 자원으로 보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이를 위해 실제로 재정적으로 연간 27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2천만 달러).
영유아기 지원이 특히 탁월한데, 80%가 3.5세 이전에 조기 진단을 받습니다. 이는 한국(30%)은 물론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준입니다. 이러한 높은 조기 진단율은 정부의 적극적인 스크리닝 정책 덕분입니다. 진단 후에는 ABA 치료를 국가 차원에서 전폭 지원하며, 보험 적용을 통해 재정적 부담을 크게 줄여줍니다. 특히 ABA 치료사 양성 프로그램을 국가가 직접 운영하여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학령기 지원에서도 이스라엘의 차별점이 드러나는데, 60%의 자폐 학생들이 일반 교육과정에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70%가 특수교육을 받는 것과 극명히 대조됩니다. 통합교육을 위해 일반 교사들은 의무적으로 자폐 학생 지도 연수를 받으며, 각 학교마다 자폐 전문 교육 코디네이터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자폐인의 사회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보는 이스라엘의 교육 철학이 반영된 것입니다.
성인기 지원에서 가장 혁신적인 것은 군대와 취업을 연계한 프로그램입니다. 대표적으로 9900 특수부대에서는 자폐인들의 뛰어난 시각적 능력과 집중력을 활용해 항공사진 분석, 위성사진 판독 등 전문적인 정보분석 업무를 수행하게 합니다. 이들은 최소 1년간의 군 복무 후 민간 IT 기업으로 취업하는 경로가 열려있으며, 실제로 많은 자폐 군인들이 구글, IBM 등 글로벌 기업에 채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폐 청년의 취업률이 62%에 달하며(한국 22%), 특히 IT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력이 된다면 이렇게 환경이 더 좋은 나라들로 아예 이민을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실제로 그런 생각으로 미국이나 캐나다에 정착한 가정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처럼 이민을 생각 안 하거나 못하는 가정들이 대부분이죠.
원래 이스라엘도 처음부터 체계적이지 않았습니다. 몇 십 년 전 자료를 보면 이스라엘 안에서도 자폐 가정들이 거의 방치되어 비극적인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큰 노력 없이 다른 나라들이 한 것들을 잘 벤치마크하면 되겠지요.
저희 아이를 비롯해서 자폐로 고생하는 가정들이 안쓰러워서 저도 각종 부처들과 정치인들에게 건의도 하고 외국 사례들도 공유했습니다. 대부분 무응답이나 관료주의적 답변 밖에 듣지 못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허탈감도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과도한 자기 연민이나 타인에 대한 원망은 독(毒)일뿐, 당장 내 현실을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이스라엘 9900부대가 한 교수가 자폐증인 친구 아들이 안타까워서 시작된 것처럼 우리 아이를 넘어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언젠가는 그런 기회가 와서 다만 한 가정이라도 우리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만큼 큰 보람도 있을까요. 그런 날이 오기를 그리면서 오늘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