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에 석사 학위 논문 발표 완료했고, 2월에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업무 미팅이었다. 졸업 준비로 입술은 부르트고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그동안 학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 이게 아닌데?' 그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회사 지원으로 대학원에 간 사람은 나 말고도 십여 명 더 있었다. 하지만 바쁜 업무와 준비 부족으로 졸업장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다들 수료만 하고 졸업은 못하고 있는 상황. 팀장은 내가 졸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가 내뱉은 말은 그게 전부였다. 축하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얼마나 잘하나 어디 한번 두고 보자.' 본인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상무님 배려로 대학원 입학을 하게 된걸 안 날, 팀장이 내게 보낸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어차피 너도 졸업 못할 거야.' 그날부터 본격적인 괴롭힘이 시작됐다. 내가 전담하던 전문 업무에서 나를 배제시켰다. 마치 그게 자신의 권력이며,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공식적인 이유는 "대학원을 가야 하니 업무 변동이 필요하다"였다. 대학원은 파트타임으로 근무는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모두가 싫어하는 업무로 나를 몰았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혼자 특혜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팀장은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고, 동료들도 그에 동조했다. 사람이 동일한 환경에서 같은 사람들과 오래 있으면,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나조차도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해보지도 않은 생소한 업무를 하며 꾸역꾸역 대학원을 다녔다.
학부 졸업 후 5년 만에 다시 전공 공부를 하려니 버거웠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만난 좋은 선배님들과 지도교수님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회사에서는 괴로웠지만, 학교에서의 대화는 나를 숨 쉬게 했다. 업무, 수업, 논문 준비.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을 졸업하는 과정은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마지막 졸업 논문 발표를 앞두고는 체력적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포트폴리오에 한 줄을 채웠다.
대학원 진학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공학적으로 말하면 내 상태를 안정 상태에서 불안정 상태로 스스로 만든 것이다. 많은 비아냥과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한 도전이었다. 포트폴리오를 채우기 위해 용기를 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불안정 상태로 날 밀어 넣으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원에서 만난 선배님, 지도교수님, 전공교수님들은 내 안목을 넓혀주었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와 내 직업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대기업이지만 큰 전망이나 기대가 없는 사업부였고, 당시 제조업 위기 등으로 대기업들 사업 재편이 가속화되기도 했다. 회사 밖 사람들과 네트워킹하며 이러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팀장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 후로 포트폴리오를 채우기 위한 다양한 경험은 나를 성숙시켰다. 시간이 지나고 포트폴리오를 채우는 과정에서 이직을 해야 되는 상황이란 판단이 더욱 들었다. 그때는 팀장은 더 이상 내 이직 사유가 아닌 단계가 되었다.
대학원을 다니는 2년 동안, 나는 학위만 받은 게 아니었다. 특허 3건 등록. 학회 논문 발표. 사내 논문 대회, 개선 대회 참가. 입상 여부와 상관없이 대회만 있으면 신청하고 참가했다. 정량적 경력을 쌓고 싶었다. 5년 전, 처음 포트폴리오를 작성했을 때의 그 허무함을 잊을 수 없었다. 멋진 양식에 넣어도 허전하기만 했던 이력서가, 이제는 두 페이지로도 모자랄 만큼 채워졌다.
입사 8년 차. 회사 공식 지원으로 대학원을 다녔기에 의무 근무 기간이 있었다. 그 몇 년간 팀장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이해할 수 없는 파견 업무에는 항상 나를 지목했다. 회사 생활에서 파견은 '찍혔다'는 낙인이나 다름없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공식적으로 팀장에게 찍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파견 업무가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특히 한 파견지에서는 평일에도 시간이 많이 남아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친놈 질량 보존의 법칙". 어디를 가나 '미친놈'은 있다. 사람이 힘들어서 떠나지는 않는다. 그 생각이 확고해졌다. 와이프가 조언해 준 대로, '준비가 되면 옮기겠다'는 철칙으로 4년을 버텼다. 완벽하진 않지만, 포트폴리오에 나름 자신 있는 경력을 몇 개 채우고 나니 '이직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 졸업 시에는 채용 공고만 뜨면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냈지만 지금은 달랐다. 경력직 채용 공고를 보고, 내게 맞는 직무,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었던 직무만 골라서 이력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연구 업무를 계속하고 싶었기에 주로 연구 관련 공공기관을 타깃으로 했다.
이직 준비 1년간 10여 곳 지원, 결과는 8~9곳 면접. 1~2곳만 서류에서 떨어졌고, 나머지는 모두 서류를 통과했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대기업 연구소 약 10년 근무, 근무 중 다양한 경력, 석사 학위' 면접관들이 내 이력서를 보는 눈빛이 달랐다. 신입 때 수백 곳에 떨어지며 느꼈던 절망감과는 정반대였다. '이제 나를 원하는 곳이 있구나.' 자신감이 붙었다. 몇몇 기관에서는 인적성 시험(당시 NCS가 시범 도입되던 때)을 봤고, 몇몇 기관에서는 PT 면접도 봤다. 경력직 이직 채용 과정을 몇 번 겪고 나니,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지리, 조건, 미래 등을 고려한 후 와이프와 상의해 최종적으로 이직할 곳을 결정했다. 연봉 협상을 진행하던 시점에도 나는 여전히 파견 근무 중이었다.
파견 중 오랜만에 팀을 찾았다. 팀장은 나를 보고는 또 불렀다. 뭐가 또 불만인지.
"도대체 근무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지금 파견 근무 중인데요?"
"파견 근무에서 어떤 거 하십니까?"
더 이상 대화하기 싫었다. 심호흡을 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건 파견 근무를 계획한 데 알아보십시오. 그리고 저 이직하기로 했습니다."
"네?"
팀장의 얼굴이 굳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히며 '어차피 넌 못 떠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트집을 잡고 괴롭히려던 참이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다.
"X월 X일까지 이직하는 회사로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퇴직 절차 밟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힘없이 떨어졌다. '당신은 나를 그렇게 대했지만, 나는 끝까지 젠틀하게 마무리하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이직 절차를 밟았다.
퇴사 프로세스를 밟으며 조금 아이러니한 일들이 있었다. 많은 동료들은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줬다. "XXX 팀장 때문에 고생했지." 내 이직 이유를 말 안 해도 다들 안다는 표정으로 아쉬워했다. 인사부, 사업부 본부장, 중역들은 모두 나를 붙잡았다. "왜 그만두냐?" 인사부서에서는 퇴직서 승인을 해주지 않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는 과정이 몇 번 있었다. 그 때문에 이직 시기가 늦어지는 게 아닌가 곤란해하며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 못살게 굴던 팀장은 나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지 못했다. 이직한다고 말하자 잠깐 "어디로 이직하냐? 언제 가냐?" 등 필요한 정보만 받아 상부에 보고했다. 듣기로는 상부 보고 시에도 "붙잡기 힘들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속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잘 대해줬는데 본인이 싫어서 그만둡니다. 제가 관리를 못한 게 아닙니다.' 말 못 할 못난 어필이었다. 그런 보고를 받은 상부 중역은 당연히 의아해했다. 10년간 투자해 어렵게 키워낸 소중한 인력이 갑자기 이직을 한다고 하는데, 팀장은 붙잡기 힘들다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팀장님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경험 쌓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날, 나는 그렇게 말했다. 팀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짓말하네~"
그렇게 대화 같지 않은 마지막 대화를 하고, 나는 이직했다.
와이프 조언대로 갈 곳을 정해두고 떠났다. 10년간 근무한 회사를 관두고, 2주간 집을 알아본 후 이사까지 완료하고 새로운 회사에 출근했다. 조금만 더 쉬었다 출근할 걸이란 후회는 나중에 했다. 그렇게 이직 후 나는 새로운 곳에서 또다시 10년째 근무하고 있다. '미친놈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기서는 '미친놈'이 없었다. 그럴 때는 내가 '미친놈'일 수 있다고 하던데…
돌이켜보면, 아버지를 잃고 나 자신도 잃었던 그 5년. 텅 빈 포트폴리오를 보며 절망했던 그 순간. 모든 게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나를 만들었다. "빈 포트폴리오"는 단순히 이력서가 비어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나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내 미래를 누군가에게 맡겼다는 증거였다. 그때 내가 빈 포트폴리오를 보고 좌절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좌절하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채우기 위해 한 발 나간 용기가 나를 발전시켰다.
만약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면, 힘들다고 무턱대고 떠나지 마세요. 준비하세요. 포트폴리오를 채우세요. 그리고 떠나세요. 그게 진짜 "현명한 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