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타임 대학원생이 졸업 못 하는 이유
"졸업 준비는 잘되어가십니까? 졸업 논문 주제는 잡으셨어요?"
"네, 일단 랩실에 최대한 들락거리면서 교수님께 눈도장 찍고 있어요. 랩실에서 하는 과제에 다리 하나 걸쳐서 같이 실험하고 연구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있어요."
"지금 몇 년 차이신데요?"
"2년 차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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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부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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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에 재직 중인 직업 특성상 파트타임 대학원생을 볼 기회가 많다. 그럼 이 같은 대화를 수도 없이 한다.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대학원에 입학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쩜 레퍼토리가 다들 비슷한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저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 중 졸업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니 랩실에서 하는 과제에 다리 하나 걸치지도 못했다. 그들은 연구 과제나 프로젝트가 흘러가는 프로세스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파트타임 학생 중 졸업을 못 하는 학생들을 보면 크게 두 부류인 것 같다.
[첫 번째 부류: 의존형] "지도교수님이 어떻게 해주시겠지" "랩실 과제에 다리 하나 걸치면 되겠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겠지" 이들은 교수님이나 랩실에 의존한다. 스스로 연구 주제를 정하지 않는다. 랩실 과제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두 번째 부류: 정치형] "교수님께 잘 보이면 되지 않을까" "인맥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얼굴 열심히 비추면 되겠지" 이들은 정치로 해결하려 한다. 연구보다 관계에 집중한다. 의전과 눈도장에 시간을 쓴다. 가끔씩 보면 정말 의전과 윗사람 모시기를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분들은 사실 대학원에서 학위를 하지 않아도 뭘 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나와 같은 일반인은 그게 아마 연구보다 백배 어렵다. 그래서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정치인이 따로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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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면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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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형이 안 되는 이유] 랩실에서 하는 과제들은 상당 부분 지도교수님께서 민간기업으로부터 수탁을 받거나 과기부, 산업부, 중기부 등 정부 프로젝트 공모에서 경쟁을 통해서 수주한 과제들이다. (공대 기준) 과제를 수탁받으면 과제비를 받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학생들 인건비를 주고 연구를 하고 랩실을 운영한다. 이런 과정에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연구 산출물이 나오면 실적을 쌓는다. 다시 연구 범위를 넓히거나 더 깊게 연구 내용을 확장해서 과제를 수탁한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파트타임 학생이 랩실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파트타임 학생 대부분은 직업이 있으므로 인건비를 줄 수도 없고 참여 연구원으로 참여시킬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불법이므로 연구부정행위로 발각되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 더군다나 과제 하나하나로 랩실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서 랩실 연구 범위나 깊이를 넓혀가는 중요한 과정에서 검증도 되지 않고 연구도 해보지 않은 파트타임 학생에게 쉽게 기회를 주기는 어렵다. 최대한 배려를 해준다고 해도 연구 논문 공저자에 이름을 올려주는 정도가 될 것 같다. 연구를 하지 않고 공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고 석박사 논문을 작성할 수준이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결국 직접 연구를 해서 논문을 쓰고 실적을 쌓아야 졸업할 수 있다.
[정치형이 안 되는 이유] 가끔 지도교수님 성향상 혼자서 연구를 못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학생들은 다시 착각하는 것 같다. 지도교수님이 다 정해주시고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겠지라고… 내가 본 대부분 아니 모든 경우는 그런 사례를 본 적 없다. 지도교수님이 어떤 의도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직접 들어보지 못해서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지도교수님이 다 책임질 테니 하라는 대로 하란 말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인맥과 지도교수님께 잘 보여서 졸업할 수 있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졸업 주제도 안 잡고 연구도 안 하고 얼굴만 비추면 지도교수님도, 선후배들도 어찌해줄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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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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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비춘다고 졸업할 수 없다. 인맥으로 졸업할 수 없다. 오직 본인이 직접 뭐라도 해야만 졸업할 수 있다. 입학하면 즉시 연구 주제를 고민해야 하고, 졸업을 준비해야 한다. 맨땅에 헤딩하며 연구를 시작하면 교수님도, 선후배들도 도와줄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다리 하나 걸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졸업은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