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졸업을 위한 잔인한 방법
원래 토요일이 연재일이지만 이번 명절에 부상으로 연재가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명절 기간에 사고를 당해 오른쪽 손바닥에 골절상을 입었다. 본격적 연휴 전날인 금요일 저녁에 사고를 당해 토요일 오전 정형외과에서 깁스를 했고 그렇게 명절을 보냈다. 주로 사용하는 오른손에 부상을 입은 관계로 상당히 불편하고 성가셨다.
깁스를 하고 불편한 명절을 보내며 문득 석사 시절 생각이 났다.
그때 나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
� 서약서
━━━━━━━━━━━━━━━━━━
나는 석사 과정 때도 기업에 재직 중이었다. 매주 목요일 직장이 있는 창원에서 부산역으로 가서 대전 행 KTX에 몸을 싣고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는 강행군 중이었다. 입학 당시 산학장학생으로 추천을 받아 입학을 했었지만 조건이 있었다. 석사 학위를 2년 만에 졸업하지 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회사에서 받는다는 조건. 나는 그 조건에 사인을 하고 팀장을 비롯한 동료들 시기질투(?)를 받으며 학위 과정을 했었다. 업무를 등한시하거나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남들은 다들 열심히 일하는데 무슨 특혜를 받은 것 마냥 공부를 하다 보니 주위 눈총이 뜨거웠다. 어디 제때 졸업하는지 두고 보자 하는 눈으로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직장 동료들에게 이런 내 입장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금이 가지 않게 노력해야 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2년 안에 졸업하지 않으면 페널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
� 멈출 수 없는 경주마
━━━━━━━━━━━━━━━━━━
그러던 중 석사 1년 차 2학기 겨울방학에 발등뼈가 세 조각이 나는 교통사고로 부득이하게 수술을 해야 했다. 그렇게 여름방학에 수술 후 깁스를 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는 내게 너무 중요한 시기였고 석사 논문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수학적 개념들을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수술 후 깁스를 하고 병실 침대에 누워서 영어 원서를 보며 공부를 계속했다. 울고 싶고 멈추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정해진 기간이 있고 서약을 했기 때문이다. 서약서에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는 기간 내 졸업을 못 해도 페널티를 감면해 준다는 조항이 없었다. 그렇게 매일 공부를 하다 보니 건너편 침대에 누워 계시던 환자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영어를 아주 잘하시는 가 봐요. 매일 영어 원서를 읽으시네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잘 못합니다. 졸업하려면 읽어야 합니다.' 영어가 안 되면 사전을 찾으면 될 일이었다. 퇴원 후 모두 만류했지만 다시 창원-부산-대전을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오갔다. 그렇게 몇 주간 다니다 보니 교수님도 나를 딱하게 여기셨는지 밥도 사주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다리에 깁스를 푸는 데는 1달 넘게 걸렸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연구를 지속해서 다행히도 2년 만에 석사를 졸업할 수 있었다. 석사를 2년 만에 졸업하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당시 나와 같은 코스로 입학했던 수십 명 중 2년 안에 졸업한 사람은 내가 두 번째였다. 그 뒤로도 한 명 더 있었고 총 3명이 다였다. 그 뒤로 그 코스는 없어졌다. 아마 직장인이 하기에는 너무 힘든 코스였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더 이상 하지 않기를 원했던 걸로 기억난다.
━━━━━━━━━━━━━━━━━━
� 빠른 졸업을 위한 핵심
━━━━━━━━━━━━━━━━━━
문득 깨달았다. 무언가를 결심하고 실행해 얻기 위해서는 마음에 부담이 있어야 한다. 내 경우처럼 무언가를 걸고 해야 한다. 못하면 끝이다라는 결심으로 다리가 부러져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야 한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대학원을 빨리 졸업하려면 졸업 못 하면 안 되는 무언가를 걸어라. 내 경우 졸업 못 하면 지원 등록금 토해내기, 직장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쳤지만 제때 졸업도 못 한 사람이 되는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그렇다. 나는 석사도 그렇고 박사도 그렇고 입학 시에 회사의 지원을 받는 대신 무언갈 하나 걸고 입학을 할 수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정말 맞다. 석사는 2년 안에 졸업한다는 조건이고 졸업 후 몇 년간 의무 근무를 한다는 조건, 박사는 4년 안에 졸업하고 졸업 후 몇 년간 의무 근무를 한다는 조건이었다. 만약 주어진 기간 안에 졸업하지 못하면 지원받은 금액을 토해내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다들 못했는데 넌 가능하겠니라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주위의 뜨거운 관심. 그래서 더 멈출 수 없었다. 뇌과학적으로도 목표를 세우면 주위에 목표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홍보하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게 바로 최소한 내 자존심을 거는 원리이지 않을까?
━━━━━━━━━━━━━━━━━━
무언가를 걸어보자. 돈이든, 자존심이든, 주위 기대든.
서약서에 사인하고, 주위에 크게 말해보자.
그러면 멈출 수 없다. 다리가 부러져도 목발 짚고 기차에 오를 수밖에 없다.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