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은 연구는 안 하고, 한 마디로 NATO야!"
연구원에 입사 후 초반, 부서장님과 팀장님이 자주 하시던 말이었다.
"예? NATO가 뭔가요?"
"No Action Talking Only!"
웃겼다. 그런데 웃고 넘기기엔 너무 현실적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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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과의 간담회 영상을 봤다.
한 연구자가 말했다. 산업 지원금이나 정부 프로젝트 예산이 실력이나 실적보다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한테 가는 것 같다고.
그러자 대통령이 반문했다.
"그런 홍보나 발표 능력은 마케팅 능력 아닌가요?"
그걸 보고 나는 연구소에 입사하던 초반이 떠올랐다.
기업에 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다만 그때는 내가 뭐가 불만인지 정확히 몰랐다. 연구소에 오고 나서야 그 감정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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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여긴 연구할 환경이 안 돼서 제대로 연구하기 힘들어. 난 제대로 된 환경에서 연구하고 싶어."
그러면 선임 연구원들은 이렇게 받았다.
"그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려면 결국 예산을 확보해야 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다.
연구환경을 조성해야 예산을 확보할 수 있나. 아니면 예산을 먼저 확보해야 연구환경이 만들어지나.
대부분의 예산은 정부에서 나온다. 결국 뛰어난 마케팅 능력으로 예산을 먼저 끌어오는 사람이 주목받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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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첫 부서장님은 연구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높으셨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후배들을 위해 한 몸을 희생하셨다. 연구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 예산 확보에 매달리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분은 연구소 입사 후 논문을 한 편도 출판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 옆에서 연구자들이 연구는 안 하고 정치만 한다고 날을 세우던 팀장님은 어땠을까.
나는 당연히 공학자이실 거라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인문계 전공이셨다.
인문학 전공이신 분이 공학자들에게 연구는 안 한다고 정치만 한다고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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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박사들이 입사하면 어김없이 푸념이 나왔다.
"연구 환경이 조성이 안 되어서..."
그러면 부서장님은 판을 깔아주셨다.
"김OO 박사님, 다른 건 신경 쓰지 마시고 연구에만 전념하세요. 예산은 충분히 확보됐으니 몇 년간은 안정적입니다."
판을 깔아줬다.
그런데 그들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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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환경 탓이었을까. 아니면 연구환경은 그냥 핑계였을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알았다.
판은 아무나 깔아주는 게 아니다. 그리고 판이 깔렸다고 아무나 뛰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