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하여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누군가 죽거나 다치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어쩌다 삶은,
생존게임이 되었을까?
티브이를 듣다가 시선을 돌린다.
주변을 한번 둘러본다.
인간이기에, 생명이기에 이기가 차고 넘친다.
끝없이 부딪치는 이기들!
'안면몰수', '안하무인'
이기적 존재들이 끝없이 부딪친다.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이기’는 생명에겐 당연한 일이다.
살아있어야만 하기에,
무엇보다 생존이 중요하기에
내가 존재해야 세상이 존재하고,
나를 지켜야 타인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적당한 ‘이기’는 생존의 방식이 된다.
희생이 숭고하지만
무조건적 희생은 자신의 존재자체를
담보하기도 한다.
인간과 인간사이 적당한 거리처럼,
적당한 ‘이기’는 약이 된다.
스스로를 지킬 때 타인과의 관계도 평안해진다.
또 ‘이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적당한 ‘이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사이,
관계와 관계사이를 건강하게 한다.
나만의 ‘이기’를 위해 타인을 스스럼없이 희생시킨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떠올린다.
그래서 인간은 선하냐? 악하냐?
‘인류 최대의 난제’에 다시 부딪친다.
선하기로 치면,
무의식적으로
그렇다면 악하냐?
남의 것을 당연하게 빼앗고,
타인의 목숨마저 죄의식 없이 빼앗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할 정도다.
그래서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자신 안에 선과 악을 품고,
때에 따라 불러낸다.
필요에 따라 선함과 악함을 오고 간다.
인간이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물론 '우월감'이나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선함'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엄밀히 말해 '선함을 가장했다.'라고 할 수 있다.
'위선'이 여기서 나온다.
선과 악, 어디에 무게를 두고 귀를 기울일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
그렇다고 자신의 안위를 희생하며 선함을 따르자는 말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선택이 자신에게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과
악이 다른 이와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만 기억하길 바랄 뿐이다.
세상은 이제 지구를 넘어 우주를 향하고,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넘어서고 있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고,
과거의 세상에 비해 기술진보의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큰 힘에는 당연히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은 오로지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나만을 위한, 우리만을 위한 선택은 쉽다.
반대로 '남'과' 옳음'을 위한 선택은 어렵다.
그 속성을 기억한다면 더 이상 ‘남의 일’은 ‘남의 일’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속한 사회가 ‘운명공동체’리는 사실을 잊지 말자!
서로가 서로의 소방수가 돼주고,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자!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즘 같은 시국에, 이런 세상에 소용이 있을까 생각될 수 있다.
의심을 품기 전에, 의문을 던지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보자!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큰 힘이 아니다.
이런 작은 마음과 의지가 쌓여 삶이 되고 철학이 된다.
인간의 역사이레 '이기적 존재'들은 늘 있어왔다.
고난과 시련도 늘 있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남을 방법은
급변하는 세상 속,
이제, 우리 스스로
완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본연의 모습을 따르자는 것이다.
오늘도 모자라고 허점투성이 '인간'으로 이 별에 머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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