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 고민, 타투
모든 처음의 것들이 그러하듯, 특히 돌이키기 어려운 첫 타투에는 특별함이 존재합니다. 먼저 타투라는 터부시되는 문화에 발을 들이게 되는 계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과연 괜찮을까?',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무엇을 새길까?', '이 디자인이 좋을까?'와 같은 실용적인 물음 등 고민이 있겠죠. 이런 계기와 고민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제 첫 타투 이야기를 나누며, 첫 타투를 고민하는 분들께는 참고가, 이미 타투가 있는 분들께는 공감을 나눌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1. 계기
모두의 첫 타투에는 분명 남다른 계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건일 수도, 감정일 수도, 둘 다 일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그 특별함이란 어느 사건과 감정의 뒤섞임이었습니다. 바로 할아버지의 별세라는 사건 그리고 무기력, 상실, 공허라는 감정입니다. 보다 드라이하게 표현하자면, 부정적인 사건과 이로 말미암은 감정이 첫 타투의 계기였던 것이죠.
할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서술하려면, 그 주제만으로도 수십 편의 글이 나올 테니 저에게 너무나 크고 소중했던 존재라는 짧은 몇 문장으로 갈음하겠습니다. 할아버지의 별세는 스물셋에 겪은 인생사 유례없는 잔인한 현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의 영구적인 상실은 제게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무기력과 상실, 공허를 불러왔습니다. 처음에는 그 감정들이 마음을 허하고 건조하게 망가뜨려 어떻게든 다른 것들로 마음속을 채우려 노력했죠. 새로운 운동을 배우고, 새로운 만남을 가지며 억지로 마음을 채우려 했지만 이는 해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죽고 못살던 학과 동기가 옆구리에 타투를 새겨왔고, 난생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타투라는 예술에 대해 이유 모를 강렬한 욕구와 소름이 느껴졌습니다.
2. 고민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지만, 이미 취업처가 정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네, 바로 지금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직장이죠. 분명 타투가 직장생활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은 너무나도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살결에 무언가를 새기고, 채워 넣고 싶다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욕구에 수개월을 고민하였습니다. '타투를 하면 반드시 후회한다'라는 혹자의 조언이 떠올랐고, '나중에 타투를 지우는 것은 비용과 고통 모두, 새기는 것의 10배 이상이다'라는 이야기도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수도 없이 인스타그램으로 타투를 찾아보며 고민하는 일상 중, '그래, 타투를 하면 언젠가 후회하는 순간이 오겠지. 그런데 안 하면 계속 후회할 것 같아'라는 생각과 함께 타투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무엇을 새길까'라는 실용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이 고민은 어렵지 않게 해답을 찾을 수 있었죠. 바로 지금 내가 그리워하고 상실감을 느끼는 대상, 바로 할아버지에 대한 것을 새기자는 것이었습니다.
3. 나의 첫 타투
타투를 받기로 결심을 했지만, 아직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름 무난(?)하다고 생각되는 레터링을 새기고자 하였습니다. 레터링이라는 타투 장르는 문구와 폰트, 부위, 사이즈라는 비교적 어렵지 않은 요소들로 구성됩니다.
저는 천주교도인 할아버지의 세례명 라우렌시오(Laurentius)를 새기기로 하였습니다. 부위로는 통증이 적으면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동시에 가리고자 하면 어렵지 않게 가릴 수 있는 아래팔 상단부에 새겼습니다.
첫 타투를 받았을 때 기억나는 생각으로는 아프지 않다는 의외의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얇으면서도 10cm 이내의 작은 레터링을 하며 긴장하고 떨었던 제가 우습기도 합니다.
비록 작디작은 타투였지만, 타투라는 예술·문화에 발을 들인 순간이었습니다. 이후에는 타투에 더욱 많은 관심이 생기며 장르에 대해 공부 아닌 공부를 하기도 하였고, 앞으로 내 몸을 어떻게 채워갈까 신중히 계획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