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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때는 미지의 ‘x'세대

by 윤윤

옛날에 우리 할머니는 경로당에 가는 걸 싫어하셨다. 이유는? 노인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할머니도 노인이면서 왜? 고개를 갸웃했었다.

내가 40대 후반이 되고 보니 나도 할머니와 비슷한 마음이다. 눈치도 없이.

일단 젊은 친구들과 별다방에라도 가면 따라(따뜻한 라떼)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 이런 말이 절로 새어 나오고 생전 모르던 신메뉴도 따라 시켜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맛으로 먹는 건 아니다.

노트북을 가지고 뭔가 심각하게 일하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깔깔대며 한껏 그 젊음의 공간에 스며들어본다. 집에서는 따라니 따아니 쿨 라임 어쩌구니 그런 게 다 뭐야 봉지 커피 휘리릭 저어서 노동 당도를 맞출 뿐이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

“어우~ 빌런이야 뭐야 트롤이야?”

“뇌절하지 마세욤~”

내 입에선 그동안 유튜브로 단련된 요즘 용어들이 마치 잘 배운 영어회화처럼 나온다.

내 말에 젊은 내 옆자리 동료가 박수를 치며 좋아해 준다. 지금 생각하니 미안허다.

“깔깔~ 너무 재밌어요. 나이 차이가 안 느껴져요”

그럼 난 어깨가 한껏 천장까지 올라가 승모근 부자가 되어도 좋다.

그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댔어. 놀다 보니 아랫배에 신호가 온다. 그때 느낀다.

나의 작디작아진 한껏 예민해진 방광을 말이다.


손을 씻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흠칫 놀랐다.

나는 거울 말고는 날 볼 일이 없으니 젊은 동료의 얼굴을 내 얼굴로 잠시 잠깐 착각하기도 했나 보다.

거울 속의 나는.. 내 입술과 입 주변은 한겨울 쫙쫙 갈라진 논바닥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껏 웃던 입술을 오므려 입술 주변을 좍좍 늘려주어 최대한 다림질해 주고 핸드크림이라도 꺼내어 입 주변에 바른다.

그런데 정수리에 일자로 떨어지는 조명은 어쩔까. 가르마가 과장 보태 3cm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하아...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와 한참 수다를 떠는 그 친구들을 보면 아.. 거기는 밝디 밝은 다른 세계.

나는 지금껏 무얼 하고 있었나.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현자타임이다.

나는 그들을 흉내 내며 거기 끼면 안 됐었고 뭔가 영양가 있는 조언이라도 해 줘야 하는,

요즘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언니.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하는 그런 롤모델이 되어야 할 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이렇게 하찮은 걸. 그런 girl.


그래 나도 한 때는 미지의 x- girl이었다. (마음만이라도)

일단 바지는 한껏 통이 넓어야 한다. 시내 한평 정도는 빗자루질할 용의가 있어 보여야 하지.

그리고 허리춤엔 삐삐를 차야 한다. 상의는 크롭티에 쫙 달라붙어야 제맛.

귀걸이는 버스 손잡이 링 귀걸이.

( 이 쇠 귀걸이를 새로 한지 얼마 안돼 음주를 하고 잤다가 잔뜩 덧나서 병원 가서 뺀 건 비밀이다.)

내 입술보다 2cm는 더 굵게 저승사자 빛으로 그린 입술도 세트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의 현신이랄까.


가슴 설레는 드럼 소리와 전자 기타 소리만 나와도 이미 마음은 승천 일보 직전이다.

“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 거야.”

태지 오빠가 부르는 ‘필승’을 들으면 없던 살기도 생길 판이었다.

“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에 패스ㅌ 푿. this is the city life”

울 해철 오빠가 읊조리면 나는 집도 뿌리도 없는 메마르고 세상 차가운 도시 여성이 되는 거다.

그렇게 마이마이에 테이프를 꽂고 고속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면 내 이름은 ‘자유’가 된다.

앞머리는 눈앞에 찰랑찰랑 내려서 세상을 보는 건지 나를 보는 건지 모르는 채 말이다.


억 그런데 마치 타임 슬립을 하듯 지금의 나라니. 너무 황당황이랄까.

지금의 내가 ‘자유~~’, ‘내 맘대로 한다는데 무슨 상관이에욧!’

이런 대사를 한다고 생각만 해도 나도 막 손발이 없어지는 것 같다.

‘Don’t touch me’ 라는 말. 이 말은 정말 때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간섭은 노땡큐입니다. 하면 간섭할 사람이 십오만팔천 명쯤이었다면

지금의 내가 ‘제가 알아서 할게요’하면 ‘오우 대단히 땡큐입니다.’ 거나

‘오우 누가 물어봤나요?’라는 반응이랄까.

그냥 몇 번 밥 먹고 숨 쉬다 보니 이렇게 나는 준비 안 된 어른이 되었다.

그것도 아아주 발효된 어른 말이다.

내가 중년이라니. 거짓말 같다.

정신은 겨우 겨우 허덕허덕 흠칫 놀라며 따라오는데

남들이 보는 나는 무엇을 맡겨도 할 수 있어야 할 나이인 것이다. 노올랍다.


그 유명한 말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제목의 도서만도 수십 권이 되는 듯한 이 말.

이 말이 사춘기 그리고 20대 이후로 이렇게 절실할 줄이야.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늘도 식욕과 수면욕과 게으르고 싶은 나에게 무릎 끓겠지만.

내일도 그 미지의 x- girl은 또 말간 얼굴로 중년의 내게 물을 것 같다.

너 정말 앞으로 어떻게 살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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