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그리고 다나

by 정늘

나는 유치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가난했던 우리 집은 큰언니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 큰 언니가 노란색 유치원복을 입고 아빠의 손을 잡고 찍었던 사진을 어느 날인가 본 기억이 있다.

그때의 집안형편이 어떠했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속으로 내심 조금은 부럽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가끔 말하셨다.

수도권에 살 적에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겨울이면 골방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고 먹을 게 없어 생고구마를 씹으며 배를 채우고 살았었다고.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인 것을 보면 아마도 내가 갓난쟁이였을 때 일일 것이다.



윗집에 사는 내 또래의 여아아이 다나는 이름도 예쁘고 심지어 유치원도 다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쾌활했던 다나의 집은 우리 집만큼 가난했지만 얼굴에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화목했다.

그 집 부모님은 가진 것 없어도 항상 웃었고 금슬이 좋았다.


다나가 유치원에 가고 언니들도 학교에 가고 어른마저도 일터로 떠나고 난 뒤, 큰 마당을 중심으로 다섯 채의 집들이 모여 있어도 텅 빈 듯 고요한 오전시간.

나는 다나가 올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거나 마당에 있는 뽀삐와 놀거나 아니면 동네를 온종일 하릴없이 쏘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아는 동네라고 해봤자 언덕에 있는 밭, 집 뒤편의 얕은 둔덕, 집 앞의 소각장으로 쓰는 공터 그게 전부였다.



어느 날 다나와 나는 집 앞 소각장에 쌓아놓은 쓰레기더미에 어른들이 불을 붙여놓은 것을 보았다.


말이 소각장이지 그냥 이웃들이 쓰레기를 모아다 태우는 빈 공터였을 뿐이니 하릴없이 심심했던 어린 우리가 호기심을 갖고 놀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다나와 나는 긴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불붙은 쓰레기더미를 뒤적이며 놀았다. 한마디로 불장난이다.


비닐봉지와 페트병, 각종 쓰레기들이 불에 타고 녹아들어 가는 모습을 무언가에 홀린 듯 보며 장작을 뒤적이듯 나뭇가지로 괜스레 쑤시고 들추었다.


다나는 소심한 나와는 다르게 쾌활했고 거침이 없는 구석이 있어 곧 나뭇가지에 녹아들어 가는 페트병을 꽂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으레 그러하듯 어린아이들의 사고는 순식간이었던지라 흐물거리며 녹아 흐르던 페트병의 일부가 다나의 팔뚝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곧 다나의 엄청난 비명과 울음소리에 어른들이 몰려왔고 다나는 그렇게 병원으로 급하게 옮겨졌다.


그 후로 다나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하얗게 번진 제법 커다란 화상흉터를 팔뚝에 갖게 되었다.


다나의 사고 날, 우두커니 소각장에 홀로 서 있던 나는 어른들에게 덩달아 혼날까 두려워 한껏 움츠리고 숨죽였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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