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집안의 천덕꾸러기였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언니들은 고집 세고 드세기만 한 귀찮은 막내 동생인 나를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언니들과 놀았던 기억보다 혼자이거나 이웃집 아이들과 어울린 기억이 더 많다.
불화가 많은 가정에서 커서 그런지 우리는 항상 예민했고 곧 잘 부딪혔으며 막내인 나는 그런 언니들에게 지기 싫어 꿋꿋하게 대들었었다.
아마도 모두 사소한 일이었음이 분명 한대도 우리는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쥐어뜯고 싸웠다.
내 기억의 어떤 날은 무슨 일 때문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큰 언니에게 허리띠로 맞았다.
그리고 울분을 참지 못했던 나는 그날 찬도 몇 가지 없는 밥상을 뒤엎었고 또 언니한테 맞았다.
또 어떤 날은 할퀴고 쥐어뜯고 언니의 교과서를 찢어발겼다.
나는 언니들에게 결코 고분고분한 동생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그 성질머리는 이제는 조금 뭉툭해졌지만 언니들은 아직도 종종 내 어릴 적 성질머리를 들먹이고는 한다.
아빠가 집에 계신 날은 우리 네 자매는 모두 숨을 죽이며 집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지냈다.
아빠는 일이 없어 집에 머무는 날이면 술을 자주 마셨고 줄담배를 피워댔다.
그러다 우리가 무언가 심기를 거스르는 날에는 크게 혼이 났으니 네 자매는 차마 소리 내어 싸울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자매끼리 싸우게 되는 날이면 서로 째려보며 작은 욕설을 내뱉거나 내 머리를 쥐어박는 정도로 끝이 났다.
나는 어떨 때 너무 억울하고 서럽고 맞은 머리가 아파서 크게 소리 내어 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달려와서 동생을 잘 돌보지 않는다며 언니들에게 크게 윽박 지르며 혼을 내곤 했다.
어린 나이에 나는 그게 좋았다. 어찌 되었든 내 편이 있는 셈이었으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언니들이 그때 그래서 날 더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그래도 막내라고 나를 좀 예뻐한 편이었다.
언니들에 비해 혼도 크게 낸 적도 없고 항상 별일 아닌 일로 혼내는 대상은 주로 큰언니와 둘째 언니였다.
아빠는 막내라서 나를 마냥 예뻐한 건지 아니면 언니들에 비해 엄마의 손길을 못 받고 크느라 안쓰러움에 감싸준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당시 엄마얼굴조차도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보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분명 좋지 않은 가장이었음에도 함께한 시간들의 따스함이 기억으로 일부 남아있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어린 날의 어느 하루는 둘째 언니가 발뒤꿈치에 유리조각에 크게 베여 피를 철철 흘리던 때가 있었다.
아빠가 둘째 언니를 둘러업고 언덕을 헐레벌떡 내려가 병원으로 달리던 뒷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때 나는 아빠에게 크게 혼났던 것 같은데 언니가 유리에 베인 게 아마도 나 때문이었나 싶다.
솔직히 말하면 왜 혼났는지 언니가 왜 다쳤는지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내 기억에는 없다.
그냥 혼이 났기에 ‘나 때문이었나?’ 하는 느낌만 남아있을 뿐.
나는 정말 언니들에게는 천덕꾸러기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