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변기를 부쉈다.
TV에서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며 새해의 시작을 알렸을 때,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보다는 익숙한 쳇바퀴 속에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 무거운 마음을 몸과 함께 들어 올려서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해 첫날 내가 낸 소리는 자리에서 일어날 때 입에서 튀어나온 ‘끙차’였고. 처음 한 일은 작년부터 미뤄뒀던 머리 감기였다. 아참, 변기를 부순 게 먼저구나.
제야의 종 치는 것을 본 뒤에 머리를 감아야지 하고 몇 분 미룬 것이 말 그대로 작년부터 미뤄둔 일이 되어서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가 되었다. 새해 첫날, 그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사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는데 욕실 슬리퍼를 신자마자 발이 미끄러졌다. 역시 거대한 프로젝트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하여튼,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손에 잡힌 게 변기 커버였고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남들은 새해에 처음 들은 노래라던가, 처음 본 영화 같은 것을 우아하게 기록하면서 힙하게 새해 계획을 구상할 텐데 나는 내일 바로 변기 커버 배송을 받기 위해 쿠팡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변기 커버를 사본 적도 없고, 설치해 본 적도 없어서 변기마다 정해진 크기가 따로 있는 건지 아니면 모든 변기가 공용 크기인지부터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운에 맡기듯이 주문해 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물건을 받아서 다행히 잘 설치했다. 새해가 시작하고 ‘변기’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변기,변기 하던 때가 벌써 반년 전이다.
지금은 녹음이 짙고 짙은 여름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월도 지났다. 작년 겨울에 아빠 차를 얻어 타면서 자췻집을 갈 때 나무 박사인 아빠가 겨울에는 식물들이 살기 위해 죽은 척하면서 겨울을 난다고 말하던 고속도로 위에서의 짧은 기억이 있다.
작은 생명들이 뽀로로 올라와서 따듯해지는 날에는 그것들이 기특하고 대단해 보이고 그래서 위로받으며 출근도 하고 산책도 하지만, 겨울엔 마음을 줄 생명도 안 보이고 아침 일찍 일어나게 해줄 햇살도 게을러져서 같이 아침을 늦게 시작하는 계절. 다친 마음을 질질 끌고 봄을 기다려야 하는 동면의 시기. 그 시기에는 산불 조심 캠페인을 하는 날처럼 자신의 마음에 경비병을 세우고 순찰을 계속 돈다. 깊은 마음이 들지 않게 어린아이 목소리로 ‘칫, 겨울 재미없어.’라는 투덜거리는 한마디로 생각을 끝내곤 했다. 살기 위해 죽은척하는 나무들이 여름이 오면 분명 내 키보다 훨씬 거대한 팔을 뻗어 손을 흔들어주겠지. 그때만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때가 오면 모두 회복될 거라 믿으며.
사계절을 날마다 여름처럼 살아야 자신의 길이 겨우겨우 보이는 나는, 겨울에 멈칫하는 것이 자신의 게으름이라 생각해서* 추워지는 하반기에는 즐거운 마음이 들기 쉽지 않다.
*실제로도 그렇겠지만.
아빠의 말대로 죽은척하며 웅크리고 있다가 봄이 오면 ‘살았따!’라며 용수철 튕기듯 뿅 솟아오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죽지 않고 살아서 봄을 맞이하는 것은 누가 보면 당연해서 그것을 가지고 그리 기뻐할 일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당연한 것을 가지고 한바탕 즐거워해야 살맛이 나는 것 아니겠나.
올해 첫날, 겨울에 나는 거대 프로젝트인 머리 감기도 해냈고* 처음 해보는 변기 커버 교체도 성공했다. 이 정도면 당황스럽고 웃기고 게다가 마무리까지 잘 여민 완벽한 에피소드를 가졌으니 올 한 해 동안은 당당한 발걸음을 굴러도 될 것 같다.
*자기 전에 머리 감는 게 귀찮아서 다음 날 아침까지 미룰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뿌듯한 일이다.
동화책 같은 그림체로 어떤 장면을 상상해 본다. 내가 발걸음을 척척 내딛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뭘 잘했다고 가슴 펴고 다니냐며 손가락질한다. 나는 그의 짙고 화난 눈썹을 보며 씩 웃을 것이다. ‘제가 새해 첫날에 변기를 부쉈어요.’라고, 말하는 게 신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은 사선으로 치켜올렸던 눈썹을 둥근 아치형으로 풀며 ‘그게 무슨 소리야?’하는 호기심이 담긴 표정을 지을 것이다. 이 표정을 기다린 나는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를 웃겨주고 다시 내 갈 길 가야지. 웃긴 게 최고다.
모든 계절을 여름처럼 부지런히 보내려고 많은 일을 벌여도 헛수고가 되거나 내가 무엇을 했는지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게 그렇다. 내걸 누가 봐. 누가 본다고 해서 몇 명이나 봐. 몇 명이 본다고 해도 그 사람들의 짧은 몇 초의 찰나를 함께한 내 그림 혹은 글이 나의 삶에 영향을 줄 순 없다. 댓글이라도 하나 생기면 고양이 쓰다듬듯 계속 읽어보긴 하지만.*
*감사합니다. 증말루.
곧 있으면 하지다. 하지가 넘어가면 겨울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하다. TV를 틀면 내 나이대의 연예인들은 자신의 전공을 시작한 지 십여 년이 지나서 훌륭한 프로가 되어있다. 무대 위 조명 대신 자취방의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 나는 아직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걸어가야 할 길을 만들려고 잡초를 뽑고 돌을 치우고 있다. 그렇게 닦은 길이 올바른 방향인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눈으로 땀을 흘리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다른 경로로 안내합니다’라고 한마디 할 것 같다. 와! 그러면 화가 날 것 같은데 잠깐 숨을 고르고 보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못됨을 알 수 있다는 건 내가 갈 목적지를 누군가는 알고 있다는 것이니 그 또한 위로된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구나. 하지만 현실의 나는 내비게이션이 없으니, 이것도 환상이라는 게 참 씁쓸하다.
이럴 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큰 목소리로 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포인트는 혀 짧은 소리로 말해서 생각도 짧게 만들어버려야 한다. “나는 변기를 뿌셨땅! 나는 힘이 쎄당! 나는 처음 해본 변기 커버 교체도 빠르고 완벽하게 해냈당! 우리 집 아보카도가 싹을 틔웠땅! 대단해 생명! 나도 생명이니까 나도 대단행! 엄마 멸치볶음 맛있쪙! 오늘도 길고양이는 건강행! 다행이얌!” 아차차. 고양이 얘기하니까 하늘로 간 우리 집 고양이 생각이…이건 미스 미스.
마음이 무거워질 때, 혹시 지름길이 있는지 기웃거리고 싶을 땐 외치자 “아몰랑 해보고 아님 말어!” 거기에 댓글은 못쓰게 막아놓자. 이 말에 반박할 시에는 네가 대신 해야 함. 오키?
그냥 하자. 그냥 한 것들이 패턴이 될 때까지.
아니, 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