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게 뭔가요.
엄마한테 물어보면 희생이라고 할 거고, 우리 아빠에게 물어보면 허허하고 웃는 소리를 들려주실 것 같다.
이런 글을 쓰는 중에 네 살짜리 조카에게 전화가 와서* 조카에게 사랑이 뭐냐는 질문을 해봤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언니가 남자 친구랑 싸웠냐고 묻는다. 보고있어도 보고 싶고 같이 있어도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을 드라마에서인가 들은 적이 있다. 사랑을 정의하는 것은 분야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겠지.
*언니가 전화를 걸어서 자기 딸에게 핸드폰을 쥐게 했다.
독립을 하고 나서 명절이나 가족 생일 등 가야 할 이유가 없으면 본가 출입이 드물었는데, 나랑 둘이 살던 고양이가 서울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가게 된 후로 고양이를 챙기려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가게 되었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오가니 부모님 집에서 업무가 생겼다. 엄마 염색은 한 달을 넘기기 전에 한 번씩은 해야 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살아서 오래된 집의 누렇게 된 벽지를 뽀로로 흰색 페인트로 다 덧칠하고, 동네 화장품 가게가 없어진 지 오래라서 화장품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 곤란한 엄마를 위해 올리브영에 가서 선크림이랑 아이브로우도 사놓고, 오래되어 쓰지 않는 하늘색 캐릭터 칫솔 통을 버리고 심플하고 예쁜 흰색의 새것으로 바꿔놓고, 원플러스원 행사하는 바디워시를 구매해서 하나는 자취하는 집에, 하나는 부모님 집에 가져다 놓아야 하고-. 어릴 때랑 달리 이 집에 할수 있는 일이 참 많아졌다.
주말에 자주 집을 비우는 아빠는 막내딸이 온다는 말에 마천시장에서 삼겹살과 소고기를 사서 미리 냉장고를 채워두었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밤늦게 도착한 딸에게 고기를 구워주려고 잠을 몸에 붙이고 일어난 엄마의 프라이팬 소리 앞에 앉아서 다 컸는데 뭔 밥을 챙겨주냐며 손사래를 치다가 엄마가 꺼내놓은 나물 반찬을 먹으며 근황 토크를 한 후에 취침하려 각방에 들어가고, 다음 날 아침 마늘을 빻는 엄마의 절구 소리에 일어나게 되는 요즘.*
*필시 일부러 한 것이다. 늦잠 자는 딸에게 이제 일어나서 마늘 좀 빻으라는 말일 테지.
작년에 고양이가 제 맘대로 하늘로 가버리고는 전보다 비정기적으로 본가를 방문하게 되었다. ‘아부지, 나 이번 주 금요일에 휴일이라서 목요일 퇴근하고 서울집 가유.’, ‘그래 와야 된다. 더 자주 와야 해.’ 고양이가 없어진 뒤로도 한 달에 두 번은 가는 것 같은데 뭘 더 자주 오라는 건지. 어항에 물을 갈아야 하는데 딸의 손이 필요하다든가 하는, 누구의 도움일지라도 상관없을 일들을 괜스레 꺼내며 이래서 와야 한다 저래서 와야 한다며 나를 재촉한다. 최근에도 갔었는데 뭘 그러냐고 했더니 내가 본가에 오는 것을 두 달이나 건너뛰었다고 한다. 사실을 확인해서 명확히 말하려다가 그런가 하고 넘겼다. 주말에 아빠가 집에 없어서 못 마주쳤던 날도 있었을 것이고, 만약 매일 온다고 해도 잠시의 외출로 인해 몇 시간을 못 본 것이 두 달로 느껴지는 것이 아빠 마음일 테니. 나는 뭐가 바쁘다고 그 마음을 다 채워주지 못하고 잘난 체하면서 여기저기 다니는지.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자란 송파구 동네가 아니라 남의 동네인 인천 부평구에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는데, 못 보고 살고 있으니 부모 마음이 얼마나 고플까.
버스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는 언니네 집도 자주 못 가서 이모가 좋다고 매일 얘기하는 네 살짜리 조카의 사랑에 보답도 못 하고 있다. 얼굴 비추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들여다봐야 하는 집들이 다 흩어져 있으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홍길동이나 하루 만에 전 세계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쯤의 능력을 얻어야 할 것 같다. 자주 못 보는 것에 아쉬움과 서운함을 가진 주변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사랑받고 있음이라 믿는다. 그것에 전부 보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는 것 또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여건이 있으니 가지게 되는 마음인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부름에 감사하고, 모두 응하지 못함에 미안하다가.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고 언제부터 우리 가족이 이렇게 애틋했냐며 도망가듯 큰 숨을 내쉰다.
사회적으로도 부모로서도, 주어지는 많은 역할을 잘 해내기 힘든 40~50대 시기의 부모님과 예민하고 짜증이 가득한 10대 청소년의 두 딸이 한집에 살던 시절. 다들 젊은 기운에 서열 정리하는 정글의 사자들처럼 싸우며 지내던 때처럼 어쩔 수 없이 엉겨 붙어 살아야 나를 덜 찾지 하고 씩씩거려본다. 가족들이 어리고 젊어지는 상상을 하니 픽 웃음이 나온다. 그날을 생각했을 때 웃게 되는 날이 오는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정말인가 보다. 네 명의 식구들에게 젊음을 줄 테니 돌아가겠냐고 물으면, 각기 다른 성격의 네 명이 만장일치로 다들 고개를 저을 정도다. 피 터지게 싸우며 ‘그럼 다 따로 살아!’하고 소리치던 때가 십 년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이제는 ‘그럼 다 모여 살아!’하고 소리치게 되었다. 가족이었다가 원수였다가, 우리 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의 팀에서 보낸 간첩이었다가, 내 모든 슬픔의 원인이었다가 모든 슬픔의 구명조끼인 관계.
지긋지긋한 가족. 지긋지긋 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도 연을 끊지 않아서 서로를 용서할 시간도, 못한 것을 해줄 시간도, 불쌍히 여길 시간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처음부터 사랑 가득한 집도 있겠으나, 우리 집은 적이 아군이 된 것만큼의 큰 폭풍을 지나왔기 때문에 지금의 평화가 문뜩문뜩 신기하다.
가족이라는 건 어쩌면 한 나라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의 나라를 가진 수장들인 듯 하다. 그래서 다들 자기 일로 바쁘고, 생각하는 게 다르고, 사람마다의 행동 패턴도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지금의 태평천하 시대가 지나면 어떤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때가 오면 네 명의 가족구성원은 동맹국으로써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위기를 극복하려 마음을 모을 것이다. 우리는 지긋지긋한 이 동맹을 끊을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