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너무 많잖아

by 이월

지인으로 알고 지내던 성 작가가 말하기를, 가족 이야기는 공감하기 쉬워서 청자가 잘 붙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어느 날에 서점에 갔을 때는 책장 속의 많은 책을 보며 고양이 얘기 좀 그만하면 좋겠다고 했다. 혼자 사는 작가들의 반려 가족이 고양이인 경우가 많아서 너도나도, 글로, 그림으로 고양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고양이도 가족에 포함되니깐 청자가 잘 붙고 그러니 쓰는 사람이 많은 거 아닐까 싶었지만, 성 작가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성 작가의 아이러니한 말에 나는 작가들이 소재로 많이 쓰는 이유가 있고, 그만큼 독자들이 질려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다들 사랑 얘기를 하며, MP3 리스트에는 사랑 노래가 가득하고, 거실에서는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를 보며,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인터넷 소설이 유행하던 2000년대. 나는 어릴 때부터 반골 기질이 있던 건지 아니면 사랑을 아직 몰랐던 나이였는지, 연애 이야기보다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또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위험에 뛰어드는 소년 만화를 좋아했다. 그런 영향 탓일까, 모두가 하는 이야기 말고 다른 것을 해야 뻔하지 않은 글이며, 뻔하지 않은 글은 뻔한 글보다 가치가 높다는 치기 어린 생각을 했었다.


성 작가의 말도, 순정 만화를 피하던 십 대 시절도 잠시 잊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올리면서 가족 이야기를 꺼내곤 했고, 이번엔 우리 집 고양이 이야기를 써볼까 하다가 문득 ‘그건 너무 많잖아’하는 목소리가 생각났다. 고양이를 포함한 가족 이야기를 빼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면 매일, 매주 어떤 새로운 사건을 겪어야 하고, 운 좋게도 그 일이 글로 쓸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그 정도의 축복은 자주 찾아오지 않았고, 그런 파도를 매일, 매주 겪고 싶지도 않다. ‘그건 너무 많잖아’라는 말에 동조하듯이 뻔한 소재를 피해서 신선한 이야기를 써볼까 했지만 되지 않은 이유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말에 심보가 통통해졌는지 ‘하면 뭐 어때’하는 마음도 든다. 뻔한 것과 흔한 것을 소중히 해야 마음이 건강해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지금은 아니까.


사랑. 딱 두 글자. 딱 한 단어. 이 안에 얼마나 많은 형태가 있고, 얼마나 많은 감정이 들어가는지. 가족도 고양이도 모두 사랑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으니, 이야기가 끝없이 쏟아지고, 지루하다며 떠났던 사람도 다시 돌아오는 마성의 그것.


마음을 주며 살아야 살아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주 잠시, 지나가는 길고양이를 보며,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들에게 마음을 주고 자신이 한 걸음 걸을 수 있는 에너지를 받은 것은 아닐까.


봄을 맞아, 여름에 맞춰 길거리 화단에 꽃을 심는 환경미화원분들의 형광색 조끼를 멀리에서 보게 되면 참 반갑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담고, ‘너 참 예쁘구나’라며 꽃에 말한 것인데 내 마음에 예쁨의 싹이 틔워진 기분. 꽃을 심는 것이 그저 일일지라도. 그런 일을 쓸모없는 노동이 아닌 필요하다고 법으로 정해서 일자리가 생기고 그러려면 꽃이 필요하니, 모종을 파시는 분들이 생기고, 그렇게 순환되는 과정들이 큰 원들 그려서 내가 한 발짝 들어갈 수 있는 것.


현관문 밖을 나서면 정신없이 휩쓸려 빗자루 자국이 난 마음을 가지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핑크색 배를 위로 내밀고 자는 고양이를 보면서, ‘그래, 너라도 이 공간을 편하게 쓰고 있으니 내 월세는 그걸로 쓰임을 충분히 했네’라고 안심하게 되는 마음. 고양이의 포슬포슬한 옆구리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으면 현관문 밖 세상으로부터 눈 가리고 아웅. 참 따뜻한 시간.


아줌마 네트워크를 통해서 질이 좋다고 하는 마늘을 한 박스를 사서 이른 아침부터 절구 소리를 내는 엄마. 요즘 세상에 믹서기도 안 쓰고 힘들 텐데도 나무 방망이를 위로 아래로 콩 콩콩. 그렇게 빻은 마늘을 지퍼백에 두 개로 나눠 담아서 하나는 큰딸, 하나는 작은딸 거라고 챙기는 엄마.


강아지가 잠든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오면 비몽사몽 깬 얼굴로 나를 확인하더니 언니 왔냐며 꼬리를 흔드는 검정 개.


지친 몸으로 플랫폼 의자에 앉아서 퇴근 시간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옆자리 노부부가 박하사탕을 건넸다. 박하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두 손을 내밀어 감사히 받았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나도 같이 하얀 사탕을 입에 물고 우물우물. 그렇게 셋은 지하철을 같이 타고 이후 내릴 때도 서로 꾸벅 인사했던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의 다정함.


이 모든 이야기를, 사랑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인 거다. 24시간 하루 중에서 단 몇 초를 채운 사랑이 내일을 버티게 해주는 것들이기에 소중하지 않은 게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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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빠진 우리

사랑이 우릴 지켜줄거야. (sweet, sweet life)

사랑은 나약해

우리가 그걸 지켜줘야해. (sweet, sweet life, for every time of life)

-잔나비의 LADYBIRD 노래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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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고양이가 하늘로 가고 얻은 새로운 능력은 5초 안에 눈물 흘리기이다. 배우가 될 것도 아닌데 이 능력을 어디에 써야 하나 고민하는 요즘. 고양이 하나 없다고 5초 만에 울어버리는 어른이 어디 가서 강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게 나뿐이랴. 분명 많은 사람들이 5초 눈물 버튼을 가지고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버튼을 누르지 않고 어른의 얼굴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모두 대견하다. 그만큼 강하고 또 그만큼 약한 우리. 사랑이 우릴 지켜줄 것이고, 그 사랑은 나약해서 우리가 그걸 지켜줘야 하는-. 얇고 기다란 폐곡선를 반복하는 삶. 그 안에는 뻔한 가족 이야기도 있어야 하고 흔한 고양이 그림과 글도 봐야 한다. 누군가의 사랑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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