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 엄마와 함께 잠실 교보문고를 간 적이 있다. 책을 계산하고 나올 때 엄마가 말하길 책은 사도 된다, 책에는 궁색 낼 것이 아니라 하셨다. 그때 엄마가 말하던 그 모습을 비디오테이프의 장면처럼 정확히 기억하게 된 것은, 어린 마음에도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나의 엄마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아도, 포켓몬 스티커를 많이 가질 수 없어도 어린 시절을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뛰어놀았던 것은 잠깐 유행하는 물건보다 비싼 책 한 권을 쉽게 가질 수 있게 해주시던 엄마의 교육철학 덕분일 것이다. 교복을 입을 때쯤부터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책을 소장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들어보자니 제법 문학소녀인 듯 싶지만, 그때 샀던 대부분의 책은 만화책이나 판타지 소설이었다. 당시 <디그레이맨>,<명탐정 코난>,<이누야샤>,<달빛 천사>같은 만화를 좋아하는 중학생이었으니 내 돈으로 산 첫 번째 책이 만화책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 언니와 함께 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무려 책장의 한 줄을 차지한 <드래곤볼> 시리즈 비디오를 구경하고 언니를 뒤쫓아 쪼르르 다녔다. 언니는 인터넷 소설<도레미파솔라시도>와 나는 절대 안 보던 순정 만화<비타민>을 고르고 집에 왔었다. 소년 만화와 판타지를 좋아하던 내 취향과 정반대인 언니의 책이 궁금하지 않아서 내 나름 집에서 놀고 있으면 어느새 언니의 독서가 끝나고 나에게 반납하라고 시켰고, 그럼 비디오 대여점 구경을 또 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나는 골목대장이라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출동하느라 바빴지만 혼자 있을 땐 낯가림이 있어서 명분 없이 비디오 대여점에 갈 용기가 안 났다. 알록달록한 만화 비디오 곽들을 잡아 들면 뒷면엔 주요 내용 요약과 만화 장면들이 그려져 있었고, 아저씨들이 왔다가 갔다 하는 무협지 책장에 가면 검은색 책등에 금빛으로 쓰인 무협지 제목들을 구경하는 게 재미났다. 사장님인지 알바인지는 모르지만 카운터를 지키는 어른에게 조신하게 인사하고 나오면 다시 골목대장이 되어 놀이터로 향했다.
또 그쯤의 나이에서 몇 년 후 방이 있는 집에서 살 때, 집에서 종일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나를 보더니 아빠가 거실에 돌아다니던 A4용지와 흑색 볼펜을 쓱 가지고 오더니 본인도 그림 그릴 줄 안다면서 소나무와 다람쥐를 그렸었다. 그 당시 아빠의 그림을 보고 무슨 반응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딸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아빠가 플러팅을 시도했는데 무반응으로 튕기지 않았을까 싶다.* 만화책 캐릭터를 좋아하던 아이에게 대뜸 소나무랑 다람쥐라니. 관심 분야의 그림이 아니었지만 지금도 어렴풋이 아빠의 그림을 기억하고 있다. 볼펜으로 그은 선들을 여러 번 거칠게 겹쳐서 다람쥐의 털과 소나무의 나무껍질을 표현하였다.
*생각해 보니 용기 내서 다가오신 걸 텐데 머쓱하셨을 것 같아서 죄송하다.
나의 아빠는 환갑이 넘은 지금도 산과 바다를 다니며 버섯이나 파래를 캐오시는 서울에 사는 자연인이다. 자연 속이 익숙한 분이 표현한 소나무와 다람쥐는 배운 그림이 아니라 그가 어릴 때부터 봤던 그 모습을 표현했던 것이라는 생각에 기억 속에 그림이 소중해서 잊지 않고 있다. 그림이 달랑 하나일지라도, 한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무언가를 봤고 본 것에 애정과 관찰이 배어 나와서 끝끝내 손으로 구현하는 것까지 갔다는 과정을 알게 된 뒤로는 아빠 그림을 사진 앨범에 넣어서 소장할 걸 하는 후회가 된다. 힘겹게 옛 기억을 끌고 갈 필요 없이 다음에 부모님 집에 가면 그려달라고 해야겠다. 무뚝뚝했던 과거의 사과를 겸해서 십여 년 전의 아빠의 고백을 지금 받아야지.
소개팅 자리에서 남자가 말한다 ‘그림 그리신다구요. 저도 뭣 좀 그릴 줄 알아요’ 다방 테이블에 꽂힌 네모난 휴지를 꺼내어 배운 적 없는 붓질을 하니 나무와 다람쥐가 그려졌다. 거친 선들이 엉켜있는 그림을 내민 남자와 그걸 보는 여자는 휴지를 사이에 두고 아주 짧은 공백. 친절함을 유지하며 공백을 채울 다음 말을 빠르게 골똘히 생각한다. 여자가 그림에 대해 평한다. ‘어머 그림에 스타일이 있으시네요! 이거, 제가 가져도 되나요.’ 여자의 직업은 미술 강사이며 하루에도 여러 번 학생들에게 겹선을 쓰지 말고 깔끔하게 한 선을 쓰는 연습을 하라며 잔소리하지만, 남자의 선들은 받아들였다. ‘서울에선 다람쥐 보기가 힘들죠. 귀여운데….’ 아쉬워하는 여자의 삐죽한 입술에 남자는 밝은 목소리로 ‘그것이 뭐가 힘들데요.’ 하며 서울에서 가까운 다람쥐 명소를 눈앞에 펼쳐놓은 듯이 소개한다. 남자는 한국 땅 안에서 안 가본 산과 바다가 없으므로 다방 뒷골목에 숨겨 주차해 둔 자신의 푸른 트럭에 시동만 걸면 서울에서 나고 자란 여자를 데리고 어디든 휙 떠날 수 있는 멋진 슈퍼맨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엄마는 항상 얘는 어디 유전자인가 하신다. 외가 쪽에는 예체능에 재주 있는 사람이 없고 친가 쪽 큰아빠의 딸이 미술을 했었는데, 그것 말고는 물감 냄새가 나지 않는 집이기에 자신의 딸을 신기하게 보신다. 아빠가 그렸던 소나무와 다람쥐 그림. 그 그림을 아무리 곱씹어봐도 그림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잘 그렸었다. 펜 선에 서투름이 없이 ‘내가 본 것은 이렇게 생겼지.’ 하는 그 당당함과 묘사력은 필시 아빠의 위에, 할아버지 위에 누군가가 있음을 예측하게 했다.*
*적어도 어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글은 왜 쓸까. 외할아버지는 60년대임에도 여자인 엄마에게 공부를 호되게 가르쳤다. 그래서 엄마는 영어도 읽을 줄 아시고, 집에서 소피 마르소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강연 프로그램을 자주 보신다. 누군가는 쓸데없이 그런 생각을 왜 하냐고 하는 것들까지 머리에서 뱅글뱅글 돌리는 내 유전자는 글공부를 시키던 외할아버지의 영향력일까. 아니, 공부 머리는 없고 공상만 하는 것을 보니 외할아버지보다 그 위에 어떤 분의 어떤 영향일 지도 모르겠다.
가족끼리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밉게 지내던 어느 가정도 있었을 테고, 평범히 아쉬워하고 사랑하며 사는 가족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다 듣지 못한 내 가족들 이야기. 한복을 입다가 양장을 입는 그 흐름 속에 웃고 울던 세월이 켜켜이 쌓여 내가 나왔으니, 내가 그림을 그려도 글을 써도 심지어 뜬금없이 아마존 식물연구자가 되어도 나는 누군가의 어떤 것을 이어받았을 거라며 보이지 않는 유산을 마음에 품었을 것이다.
뵌 적도 없는, 한복을 입었을, 지금 우리 가족보다 더 나와 비슷했던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울고 웃고 짜증 내고 슬퍼하고 실망하고 창피해하고. 사람이라면 겪었을 그 모든 감정이 과학이라는 카테고리에서 DNA라고 부르는 것으로 남아 또다시 내가 울고 웃고 짜증 내고 있다. 내 생각과 감정 표현에는 부모님과 조부모님과 누군가의 ‘유전’이라는 그 질긴 것이 섞인 것으로 생각하니 한없이 가벼웠던 존재가 제법 무거워진다.
‘ 삶을 잘 지내셨나요. 뭘 주셨는지 모르겠고, 저 또한 뭘 남길지 모르겠지만 건강만큼은 유지해서 내려주고 싶네요. 근데 운동하기 너무 귀찮아요. 이것도 물려주신 건가요, 조상님 탓해도 되나요. 아무튼,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