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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과 눈물

닭똥 같은 눈물방울로 번진 잉크

by 겹겹 틈일기

지난 몇 주 동안 야근이 계속 되었다.

여태동안 야근을 자주 하였어서 야근에 대해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야근은 나를 한없이 무너져 내리게 했다.

야근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집 오면 밤늦은 시간이었는데 그냥 갑자기 인생이 허탈하게 느껴졌다.

노동은 왜 이렇게 눈물이 나게 할까.

밥을 자정쯤 먹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야근을 하면서 저녁 식사 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일이 한가득 쌓여있었는데 언제 다 처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니 멍 해졌다.

이 또한 지나고 보면 야근도 별게 아닐 수 있는데 야근하는 순간에는 참 서러웠다.

안 그래도 점심시간 없이 계속 일을 했는데 저녁에도 제대로 된 식사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흡입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게 갑자기 억울했다.

한국인은 밥심인데 말이다!

분명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고, 면접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는데 어느새 일에 끌려 다니고 모니터를 보는 눈과 말하는 입에서 영혼이 스멀스멀 사라져 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마치 시속이 엄청 빠른 무언가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정신없이 끌려다니는 기분이랄까.

제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하는 상황이 꽤나 발생되다 보니 나 자신이 민폐처럼 느껴졌고 적당히 생각하고 빨리빨리 쳐내야 하는 일이 나랑 맞지 않음을 점점 인정하게 되었다.

입사 초기 열심히 하겠다던 그 다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모든 걸 내려놓고 나니 의지박약으로 또 세상에 1패 한 내 모습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내가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일과 헤어지게 됐다.

며칠 쉬고 나니 집 나간 입맛이 돌아옴과 동시에 다시 새로운 일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우두커니 서있다.

나는 야근뿐만 아니라 착한 아이증후군에도 빠져 있었던지라 앞으로 또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 조직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사실 자신이 없다.

그냥 내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싶은 게 아니라 이런저런 일을 해 보고 나니 사실 조금은 체력적으로든 심적으로든 지쳐 있어 당분간은 조용히 혼자 일 하고 싶다.

그냥 자기변호에 불과하다.


앞으로 어떤 삶을 꾸려나가게 될지 사실 큰 계획도, 기대도, 걱정도 아직은 크지 않다.

몇 주 지나고 통장 잔고가 서서히 떨어지면 큰 걱정이 먼저 다가오겠지.


과연 앞으로의 내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저번주 야근을 하면서 닭똥 사이즈의 눈물을 종이 위로 뚝뚝 흘렸다.

책상 정리 하면서 전 날 흘린 눈물 자국을 발견했고, 잠깐 피식 웃음이 났다.

‘이것도 못 버티고 힘들다면서 눈물까지 흘린 바보.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려고.‘

눈물과 함께 야근을 해야 하는 내 모습에서 아직은 세상을 강하게 맞설 깜냥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느꼈다.


모든 사회인들이 참 대단하다고 또 한 번 생각한다.

회사 생활을 수십 년간 하신 어른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또 존경스럽다.

회사가 월급을 주긴 하지만 그 안에는 근로자들의 어마어마한 피땀눈물이 녹아있다.


나는 이렇게 또 패 하고 물러난다.

그래도 야근으로 조금은 단단 해 졌지 않을까.

어떤 경험이든 필요 없는 경험은 없으니까 말이다.

삶과 노동은 참 희로애락이다.


앞으로 뭐든 하겠지!

그동안 고생 했다고 스스로 잠깐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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