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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car no! tea yes!

by 겹겹 틈일기

나는 맹물보다는 티백을 담가 우려낸 고소한 맛이 나는 찻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녹차, 둥굴레차, 누군가에게 받은 제주도 티백 등 티백을 자주 애용한다.

언제부터 차에 관심이 많았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순간 내 삶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었다.


어제 마침 하동을 다녀왔는데 야생차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예전부터 차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다도를 배워보고 싶기도 했기에 이번 참에 차에 대해 깊이 알아보고자 박물관으로 곧장 향했다.

야생차 박물관에는 옛 선조들이 사용하던 고상한 다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진주, 옥돌로 장식이 되어 있는 다기들도 눈에 띄었다.

차를 우려내는 도구들에 값진 장식들이 사용되어 있는 것을 보니 차와 다도는 음료를 넘어선 무언가 더 큰 뜻이 숨어 있을 것 같았다.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에서 본 초의스님이 쓰신 <동다송>에서 그 숨은 뜻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동다송>에 담긴 글 몇 문장만 인용해 보겠다.

‘차는 살아있는 목구멍을 넘어가는 실존의 국물인 동시에 삶 속으로 스미는 상징이다. 그래서 찻잔 속의 자유는 오직 개인의 내면에만 살아있는, 가난하고 외롭고 고요한 소승의 자유이다. 찻잔 속에는 세상을 해석하거나 설명하거나 계통을 부여하려는 논리의 허세가 없다.•••(앞 부분만 인용)’

그리고 책은 술과 벗을 부르지만 차는 벗을 부르지 않는다고도 적혀 있었다.

그렇게 차는 집중하여 내면을 일깨워 감각을 되살아나게 하고, 더욱 깊이 사색하도록 한다.

‘차 한잔의 여유’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차(茶)‘라는 존재가 이렇게 숭고하며, 인간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인지는 박물관에 발을 들이기 전 까지는 잘 몰랐다.

맹물보다는 더 담백하고 고소한 물을 맛보고 싶었던 나는 그동안 차를 너무 가볍게 대해 온 것이다.

차를 마시면서 차에 무지했다.


차 박물관 관람을 통해 차에 대해 더욱 친근감이 생겼고 진지하게 음미해 보고픈 마음에 오늘 전통 찻집을 다녀왔다.

찻집이라 하면 교양을 겸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차에 무지한 내가 가보아도 될까’ 하는 마음이 앞서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혼자 가보았다.

알아본 찻집 앞에 도착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전통 찻집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쌍화차 향이 코 속 깊숙이 스며 들어왔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쌍화탕이 나에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쌍화탕 냄새에 호의적이지 못하여 길 가다 쌍화탕 냄새가 나면 후다닥 지나가기 바빴다.

쌍화탕에 쌀쌀맞게 굴었던 지나 날에 대한 염치 없음과 미안함으로 오늘은 쌍화탕을 마셔보려고 하였으나 감잎차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자주 마시던 녹차와 둥굴레차와는 어떤 다른 매력이 있을까 궁금하여 쌍화탕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가 곧 바로 감잎차로 변경하였다.

이렇게 쌍화탕과는 또 가까워지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다시 방문하여 마셔 볼 예정이다.


차를 기다리면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찻집 안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카페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찻집만의 향토적인 느낌이 물씬 들어 색달랐다.

드디어 차가 준비 되어 사장님께서 다도 도구들과 뜨거운 물이 담겨 있는 주전자를 주셨다.

다도는 유치원 다닐 때 잠깐 경험해 본 것 외에는 따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내 눈앞에 놓인 다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고 있었는데 친절하신 사장님께서 다행히 다기의 용도에 대해 잘 설명해 주셨고 어렵지 않게 다도에 손을 내디뎌 보았다.

우선 잎이 들어 있는 주전자 모양의 다기에 따뜻한 물이 담겨있는 주전자를 들어 뚜껑을 잡으며 물을 붓고 차가 우러나면 잎이 들어 있지 않은 주전자에 옮겨 담는다.

그러고 찻잔에 차를 따라준다.

그러면 잎이 든 주전자에 또 뜨거운 물을 부어 차를 다 마시는 동안 또 우려내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긴 해도 차를 우려내는데 부지런한 손길이 필요했다.


처음 우려낸 차는 살짝 달달한 첫 맛과 가벼운 담백함이 입 안 가득 맴돌았다.

나는 불행히도 혀가 예민하지 못한 탓에 더 상세하게 차 맛을 형용하기는 어렵지만 달고 담백하고 떫은 느낌은 은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차 박물관 벽면에 ‘차를 마시면 오감이 즐겁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얼핏 알 것 같았다.

두 번째 우려낸 차는 첫 번째 우려낸 차를 천천히 마시는 바람에 좀 더 많이 우러나 쓴 맛이 강하게 났고 차의 색은 노란색이 아닌 주황색에 가까운 색을 냈다.

차를 우려내는 시간에 따라 맛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려내면서 전혀 생각지 못했다.

씁쓸한 차를 마시며 ‘그래, 인생도 언제나 담백할 수만은 없지. 씁쓸한 맛도 알아야 담백함이 더 배가 된다고!’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솔직히 아직 까지는 차를 마실 때 어떤 마음으로 차를 대하고 음미해야 차의 깊이를 진정으로 알 수 있는지 자세히는 잘 모르겠다.

차를 마시며 사색에 잠기는 것은 잠깐 뿐, 잡생각으로 가득하여 창밖 너머를 부산스럽게 두리번거리고 왔다.

다만, 오늘 노란색 전구 아래에서 잔잔한 중국풍 음악을 들으며 진한 쌍화차 내음과 카멜레온 같은 감잎차의 다채로운 맛의 조합은 차의 무궁무진함을 느끼게 해 줬다.


아직 차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는 차린이이지만 차에 내 마음을 자연스럽게 녹이게 되는 그날까지 부단히 열심히 성찰하고, 사색하며, 내 내면에 더 잘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연습해야겠다.


내일은 출근하면 하동에서 사 온 솔잎차 티백을 우려 볼 예정이다.

솔잎차에는 어떤 여러 맛들이 숨어 있을까.

티백 뜯기 전부터 기대가 된다.

텀블러에 차 티백을 우리 게 되면 다도 하며 음미하는 것처럼 차가 주는 다양한 맛을 하나하나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포근하고 안정감 있는 담백, 고소함은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따뜻한 평온함이 목을 감도는 것이다.


마음이 지치거나 힘들거나 심장이 두근거릴 때, 차를 자주 찾을 듯 하다.

세상을 이겨내는 또 하나의 방법을 터득 한 것 같아서 차가 더욱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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