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쾌하게 만들어 주는 계절
얼마 전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어 열심히 일 하고 드디어 일요일에 휴무를 맞았다.
언제나 그렇듯 휴무만 오면 가만 안 두겠노라고 ‘이것도 저것도 다 해야지.‘ 해 놓고 막상 휴무가 오면 귀찮고 성가시다.
그렇다고 아무 데도 안 나가고 집에만 누워있자니 억울할 것 같았다.
때마침 남편이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제안을 했고, 바로 ‘오브콜스!!!’로 대답했다.
점심을 후딱 먹어 치우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나왔고, 남편이 뒤에서 나를 따라올 테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가 보라고 하였다.
신선하고 건강한 도파민이 필요하여 매번 자전거를 타고 누볐던 강변 근처 말고, 이번에는 바로 옆 동네를 배회해 보기로 했다.
옆 동네는 시골처럼 포근함을 가지고 있는 도심 속 동네이다.
나는 시골이 주는 자연친화적인 모습에서 포근함을 느끼는데, 이로 인해 바다 보는 것 보다 시골길 거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직 차가 없는 나에게는 두 발로 걸어갈 수 있는 접근성이 편한 옆 동네가 숨은 나의 아지트 같은 감사한 동네이다.
동네를 정한 뒤 자전거 발통을 열심히 밟아 금방 도착하였고, 역시나 동네는 조용하고, 개화철을 맞은 장미들은 담장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집들의 대문 앞에 놓여 있는 채도 높고 푸른 꽃이 심긴 화분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잘 관리되어 있는 꽃을 보며, 식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푸근한 마음이 느껴졌다.
목적지가 특정한 장소가 아닌 동네였기에 그냥 자전거 핸들을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이며, 한적한 골목을 누볐다.
항상 어떤 것을 결정하거나 시작해야 할 때 주저하며,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는데 자전거 타며 달리는 순간만큼은 마음 놓고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어떤 결정을 위해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로써 크게 무엇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동네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남편과 조잘조잘거리면서 바람을 가르는 그 시간이 더없이 산뜻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신경 써야 할 게 하나 있다면 차 조심이다.
자전거 탈 때는 항상 앞, 뒤, 좌, 우를 미어캣처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다녀야 한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집에 빨리 들어가기 아쉬웠는데, 마침 신호만 건너면 강변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와서 행선지를 강변으로 변경했다.
강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 풀밭 위에 돗자리와 파라솔을 펼치고 세워 강을 바라보면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이로움은 참 크구나 싶었다.
따뜻한 날씨와 더불어 푸릇푸릇한 나무와 화단들, 잔잔히 흘러가고 있는 강물에 비추는 반짝반짝 윤슬이 인간에게 하하 호호 웃음을 짓게 만들고, 생기를 돌게 한다.
인터넷 기사만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정적인 기사만 줄곧 나오는데, 밖으로 눈을 돌리면 숨 통이 트인다.
그리고 이번에 피어있는 꽃들을 유심히 보다가 예전에 살았던 추억 가득한 아파트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 있었다.
꽃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자주색에 채도가 쨍쨍한 꽃이며, 아파트 화단에 꽤 많이 심겨 있는 꽃이다.
꽃을 보자마자 어릴 때 살던 아파트가 생각이 나는 것이 그 꽃이 어린 시절의 내 눈을 사로잡았었나 보다.
어릴 때, 씽씽이를 타며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그때의 싱그러웠던 풍경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역시 자연의 푸르고 짙음은 나이를 불문하고 시선을 사로잡게 만든다.
살면서 여러 수십 번의 5월을 보냈지만 이번 년도 5월은 나에게 자연의 경이로움에 더욱 눈을 뜨게 한 달이다.
담장에 피어있는 꽃을 보며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 알 수 있게 하고, 찌르르 찌르르 바람을 타고 내 코 안을 스민 자연의 향기가 한번 더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것도 불신 가득한 눈빛이 아니라 무엇이 내 감각을 움직였는지 호기롭게 미소 띤 모습으로.
아직 바람이 차긴 하지만 그동안의 진짜 어둡고 칼 같았던 바람이 어느 정도 지나가고 마음을 새롭게 뒤흔드는 바람이 불고 있다.
요즘의 바람은 목욕탕을 다녀온 후 바나나 우유를 마실 때 처럼 개운하고, 많은 상념들을 민들레 홀씨처럼 날려 보낸다.
초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 아닐까 싶다.
기온이 급작스럽게 올라 땀이 줄줄 흐르게 만드는 것은 싫지만 여름이 되어야만 볼 수 있는 이 푸릇푸릇함 때문에 여름이 싫다고 말할 수가 없다.
조금 더 날이 따뜻해지면 무엇이든 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매미들이 탈피를 하고 풍성한 나무의 머리에서 울음소리를 내는 날이 온다.
그러면 쉬어가고자 하는 휴가철도 점점 다가오겠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감각을 새롭게 자극시키는 이 초여름을 모두들 만끽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