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은 누구와 경쟁하는가?
지금 시대는 끝이 없는 도전과 경쟁의 시대이다. 온갖 매체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속 내놓고 있다. 어린 친구부터 어른, 심지어 나이가 지긋이 있는 분들까지 그 경쟁에 뛰어든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참가자의 도전과 노력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내가 심사위원이 되어 평가하는 자리에 있어보기도 하고, 나의 한 표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다는 쾌감을 주기도 한다. 대리만족의 영역도 상당하다. 우리는 감히 뛰어들지 못하는 그 살벌하고 냉정한 경쟁 속으로 누군가를 대신 넣어 그것을 즐기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나와 견주기도 한다.
우리의 사회가 치열한 경쟁을 벗어 날 수 없는 이유는 생산성이 급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긴장을 늦출 수 없고 상대방으로 인해 나의 승리를 위해 삶의 속도가 빨라진다. 하지만 앞뒤를 따지지 않고 수직적인 성장만을 바라보고 기대하면 목적보다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정상적인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위대한 인물들이 수두룩했던 르네상스 사회는 어땠을까? 천재들이 내놓은 결과물들은 치열한 경쟁의 소산이었을까?
로나 고펜이 쓴 '르네상스 라이벌'이란 책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르네상스시대에는 대단한 라이벌들이 있었다.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 베로키오와 갈란다이요, 마사초와 마솔리노, 리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티치아노, 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 등이 각 예술 분야의 왕좌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들의 경쟁을 통해 예술작품들이 탄생한 것은 맞다. 그러나 진짜 창조는 이런 경쟁을 통해 탄생하지 않았다. 진정한 창조는 그런 경쟁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던 사람에 의해 탄생했다.'
앞서 열거한 천재들 중 몇 개의 경쟁을 간단히 보자.
우선,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경쟁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 '피에타'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 '최후의 만찬'을 보자. 어느 누구의 작품이 더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미켈란젤로의 두 작품은 조각이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은 회화다. 즉 같은 미술이지만 장르가 다른 조각과 회화, 회화와 조각이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통해 대리 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개인 간의 경쟁이 아니라 장르와 장르가 경쟁하던 시대이다.
두 번째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세례당 청동문 공모 경쟁이다. 여기서는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의 경쟁이다. 결론부터 말하여지면 기베르티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브루넬레스키도 자기가 경쟁에 이겼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경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기베르티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한다. 경쟁을 회피하려 한 것일까? 이후,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건축을 배우고자 떠나고, 몇 년 후 다시 돌아와 기베르티와 다시 경쟁을 벌인다. 바로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돔 건축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브루넬레스키는 최종 설계안 도면을 제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종 선택은 브루넬레스키가 된다. 이때 브루넬레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나와 기베르트를 경쟁시키지 말라'
세 번째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대결이다. 피렌체 정부는 시뇨리아 정청 대회의장 양쪽 벽면에 거대한 그림을 전시하기로 정한다. 이때 두 명의 천재 예술가를 지명한다. 각각 한 쪽 면을 맡긴다.
시뇨리아 정청 대회의장
당시 이곳에서 함께 벽면에 초안을 그리던 두 사람의 심정을 상상이 되는가? 상대방에 대한 경쟁심리가 그들의 심장을 강하게 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누가 이 숨막히는 경쟁에서 승리했을까? 결과는 무승부였다. 왜?? 두 천재는 이 경쟁을 의도적으로 회피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로마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프랑스로 떠났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제일 듣기 싫어했던 말이 본인과 라파엘로 또는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경쟁 상대로 본다는 것을 제일 용납 못했다. 미켈란젤로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를 조각한 후에 붓을 든다.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를 그려낸다. 그리고 로마 교황청,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돔을 완성한다. 조각가인 자신을 이긴 후, 붓으로 자신을 이기고, 건축으로 결국 자신을 이긴다. 미켈란젤로는 남과 경쟁하지 않았다. 남과의 경쟁을 통해 남은 것은 상대를 이긴 것 밖에 없기 때문이었을까?
미켈란젤로만이 아니었다. 앞에 언급한 기베르트, 브루넬레스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베로키오, 갈란다이오, 마사초, 마솔리노, 티치아노, 브라만테 등 모든 천재들은 남과 경쟁하는 것을 하찮게 여겼으리라. 가장 이기기 힘들고, 강력한 상대는 자신이라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더 빨리 깨달았다. 그리고 비교하는 것은 정말 쓸데없는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위대한 창조는 나의 현재와 미래의 나와 경쟁하는 것이다. 지금 나를 이기지 못하면 미래의 나와는 만날 수도 없는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진정한 창조의 경쟁에 합류하는 것이다.
천재의 경쟁자는 따로 있다 - 천재는 오로지 자신과 경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