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속 창조자, 시녀들
그는 바로크 시대, 스페인의 왕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로 초상화를 주력으로 한 화가이다. 변호사였던 아버지와 하급귀족 출신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는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그는 세비야와 마드리드에서 기초를 닦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드리드에 와서 어느 귀족의 초상화를 그려주는데, 그 초상화를 본 펠리페 4세는 그를 궁으로 불러 초상화를 그려달라 주문한다. 펠리페 4세는 그 초상화를 보고 매우 만족한다. 비어있던 궁정 화가에 벨라스케스를 앉힌다. 그는 궁에서 많은 그림을 그리게 되고, 루벤스의 권고로 잠시 로마로 유학하여 베네치아 풍의 빛의 효과를 습득한다.
바로크의 특징이었던 극단적인 빛의 명암대비를 완곡하게 사용한 벨라스케스는 붓질을 정교하게 하지 않아도 먼 거리에서 보면 완벽한 형태가 나타나는 기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배운 원근법과 공간감으로 더욱 입체적인 표현을 한다. 벨라스케스는 왕족의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다. 궁정의 난쟁이, 광대 등의 비주류 인물들도 그리기도 하고, 품격 있게 묘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더 사실적이며 인물들의 심리가 더욱 심오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그의 회화와 초상화는 사실주의 풍의 기초를 세우고 후에, 고야, 마네, 르누아르, 피카소, 달리까지 스페인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눈앞에 실제 인물이 존재하는 듯한 생생한 감각과 사실적 묘사 그리고 화면의 구도와 빛과 공간 사용은 회화 자체를 탐구한 선구자적 예술가였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318 x 276 cm 의 거대한 유채화를 볼 수 있다. 이 그름은 펠리페 4세를 위한 작품이며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바로 이것이 '시녀들'이라는 작품이다.
중심에는 5살 정도로 보이는 마르가리타 공주가 서있고, 공주 좌우에는 시녀들이 공주를 시중들고 있다. 오른쪽 끝에는 난쟁이로 보이는 2명의 인물이 있다. 왼쪽 거대한 캔버스 앞에는 벨라스케스 본인이 있고, 저 뒤 벽에 걸려있는 거울에는 펠리페 4세와 왕비가 어렴풋이 보인다. 중간 문에 한 명, 그리고 오른쪽 시녀 뒤에 2명이 어두운 곳에 배치되어 있다. 전통적인 틀에는 벗어나지 않았지만, 왕과 왕비 대신 공주를 가운데에 배치한 것은 독창적으로 볼 수 있다. 벨라스케스는 우리를 보고 있다. 공주와 난쟁이 친구도 정면을 보고 있다.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인지? 우리의 눈을 통해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인지 혼란에 빠진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벨라스케스 앞의 캔버스는 저 뒤에 걸린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의 그림일까? 우리는 왕과 왕비의 시점에 이 장면을 보고 있는 걸까? 그림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그림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독특한 구도 때문에 '시녀들'은 시선과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한 회화로 평가된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을 통해 초상화를 넘어 회화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린 듯하다.
고야는 자신의 위대한 스승은 벨라스케스와 렘브란트 그리고 자연으로 꼽으며 그의 작품에서 '시녀들'과 유사한 구도를 사용하기도 하고,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화가 중의 화가라고 하며 그를 추종한다. 피카소는 '시녀들'을 입체파 스타일고 재해석하며 무려 58점의 패러디 작품을 그린다. 살바도르 달리는 '시녀들'을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해석하며, 벨라스케스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고 평가한다.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의미를 담았던 벨라스케스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화가는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 사유와 철학을 담는 존재로 끌어올린다.
지금도 벨라스케스는 우리에게 '인간이 보는 것은 무엇이며, 예술은 인간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