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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시칠리아, 인간의 나약

by Polymath Ryan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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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1890년 로마 콘스탄치 극장에서는 1시간 남짓의 단막 오페라가 초연된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요한 변곡점을 찍은 작품으로 현실적인 오페라의 시작을 알린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이 오페라 양식은 왕과 귀족의 내용이 아닌 평범한 서민들의 삶과 감정을 강조하며, 현실적인 내용이 관객들에게 더욱 와닿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을 '베리스모'라고 부른다.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부활절 아침이다. 여주인공 산투차는 연인 투리두가 유부녀가 된 전 연인 롤라와의 밀회를 알게 되며 절망한다. 산투차는 분노하여 롤라의 남편인 알피오에게 사실을 폭로한다. 알피오는 시칠리아의 전통에 따라 사랑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투리두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안 투리두는 어머니 루치아에게 작별을 고하고 결투에 나가며 결국 알피오에게 죽임을 당한다. 
알피오가 자신의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듣고 분노를 하며 감정을 폭발하는 노래를 부르고 뛰쳐 나가면, 바로 그 유명한 간주곡 인터메쪼가 아름다운 선율로 무대를 정화시킨다. 이 간주곡은 영화, 드리마, 광고에도 쓰이며 더욱 유명하게 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분노의 주먹'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링에 새도우 복싱을 할 때 이 간주곡이 흐른다. 또 '대부 3'에서도 오페라 장면이 등장하며 영화의 극적인 장면을 돕기도 한다. 이후 레온카발로의 '팔리앗치', 푸치니의 '라 보엠' 등 사실주의 오페라의 부흥을 일으킨다.


시칠리아


1861년 이탈리아는 여러 독립 국가가 통합되면서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다. 하지만 시칠리아는 남부 끝에 있는 섬으로 부유했던 북부와의 경제적 격차가 심하고 소외된다. 통일 정부는 시칠리아를 통제하려 했지만 시칠리아의 반발로 쉽지 않았다. 이 혼란한 시기에 '마피아'가 시칠리아의 권력 공백을 채운다. 마피아는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명예를 위해 복수를 서슴지 않는 모습이 많이 묘사되는데 이것은 당시 시칠리아의 문화였다. 법보다 전통이 더 중요한 사회적 규범이면서 불명예를 씻기 위해서는 살인이 용인되는 곳이었다. 바로 이 사회적 규범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주제가 된다. 여주인공 산투차는 마을에서 파문을 당한 여인이었다. 결혼 전 투리두와 동거를 하면서 마을과 교회에서 파문을 당하며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 이것은 찌든 남성 중심의 사회의 질서 때문이었다. 남성의 방탕은 괜찮았고, 여성의 순결을 엄격히 요구하는 그곳의 문화였다. 당시 시칠리아 사회의 거울이었다. 


인간의 나약함


필자가 이 오페라를 연출할 때, 작품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의 나약함'이었다. 일단 인간의 말이었다. 투리두는 산투차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부활절 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들어간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들어가면서 산투차에게 차가운 눈빛을 쏜다. 심지어 신부님 마저도 그녀를 들어오라고 하지 않는다. 어느 누군가는 산투차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용기 내어 차가운 눈빛을 맞아 줄 사람이 없었다. 여기서 산투차의 연약함이 아니라, 다수의 마을 사람들의 연약함을 봤다. 연민과 긍휼을 막아 버리 사회적 규범과 문화를 이길 작은 행동조차 못하는 인간을 봤다. 그게 나일수도 있었다. 
산투차는 불륜녀 롤라의 남편에게 이 사실을 모두 이야기 한다. 그리고 분노한 알피오는 죽이겠다며 소리치는데 산투차는 자신의 분노가 자신의 입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없이 슬퍼한다. 이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간주곡 인터메쪼다. 죽음이 시작된 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필자는 여기서 카라바조의 명암의 극대화를 생각했다. 분노에 못 이겨 죄를 저지르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입이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두려움이 날 감싸고 있다는 어두운 조명과 빛줄기 하나로 표현하고자 했다.

필자 연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한 장면필자 연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한 장면

결국 결투 신청을 받아들인 투리두는 죽음을 직감하고 어머니를 찾아가 산투차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결투 장소로 떠난다. 필자는 결투 장면을 투리두의 회개로 연출했다. 자신이 지은 죄를 뒤늦게 신에게 고백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은 자신의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투리두는 알피오와의 결투에서 알피오의 칼로 몸을 던지며 막을 내렸다. 그것이 그의 뉘우침이었다. 


인간은 늘 이분법적인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이 우리의 미래가 된다. 투리두는 자신의 미래를 알았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자신의 죄를 해결하는 방법이 죽음밖에 없었을까? 시칠리아의 문화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것은 괜찮은 변명일까? 우리의 작은 실수나 무심함이 파면과 죽음이라는 비극을 만든 게 아닐까? 남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일이 쉬운 일이지만 그것이 나에게 반드시 돌아온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래서 인간은 철학해야 한다. 무엇이든 이용해서 생각해야하며 그것을 몸에 익혀야 한다.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가 누군지 보여준다. 능력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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