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여행기3 - 잠시 역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에어비앤비는 빨간색 외관이 눈에 띄는 단지 내 주택이었다. 방글라데시계 영국인과 불가리아 출신의 집주인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집은 상상했던 북유럽 집의 전형적인 형태였고 넓은 거실과 주방, 여러 개의 방, 집안에 작은 사우나까지 있었다.
내가 머물게 될 방은 잘 정리되어 있는 크고 안락한 방이었다. 방 안에는 영어로 쓰인 여러 권의 책과 오울루 관광 안내지도, 게스트 방명록이 있었다.
밤에는 핀란드의 역사와 민족에 관한 책을 읽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굉장히 학구적인 것 같지만 청소년용 책이었고 (어쩌면 어린이용) 그림이 많아 쉽게 읽히는 작은 책이었다. 핀란드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이 쓰여있어 이제 막 핀란드에 도착해 많은 것이 궁금한 나에게 아주 유익했다.
우선 핀란드는 노르딕 국가이지만 스칸디바이아 국가는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를 지칭한다.
노르딕 국가는 스칸디나비아 국가에 추가적으로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스칸디나비아 세 국가는 밀접한 관계가 있고 언어도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반면, 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붙어있을 뿐 전혀 다른 기원의 언어를 사용하고 역사적으로도 생뚱맞은 감이 있는 나라이다.(스칸디나비아 국가와 반도는 다르다)
해적이라고 하는 바이킹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출신이다. 바이킹은 약탈뿐만 아니라 교역을 하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어쨌든,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덴마크가 가장 굳건한 왕조를 가지고 있었고 군사력과 인구 측면에서 우위에 있어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덴마크로부터 지배와 독립을 반복하였다. 세 국가는 1397년 덴마크 중심의 국왕을 공유하는 연합체인 칼마르 동맹(Kalmar union)을 맺었고 1523년에 현대 스웨덴 국가 형성의 인물로 인정받는 구스바프 바사가 스웨덴을 독립시키며 스웨덴 왕조의 국왕으로 올랐다.
스웨덴은 1150년대부터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져 살던 핀란드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1809년 핀란드를 노린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700년 동안 지배하던 핀란드를 러시아에게 내주었고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100년의 지배를 받고 1917년에 독립했다. 놀랍게도 핀란드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자체적인 왕권이 없었던 나라이다.
워킹투어와 박물관을 다니며 배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나는 북유럽 국가들 간의 관계 머릿속에 그려졌고 내가 그린 권력 관계도는 이러하다. 덴마크가 가장 강력한 왕조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다음이 핀란드를 지배한 스웨덴, 그 다음이 장기간 덴마크의 영향 아래에 있었지만 잠시나마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지배했던 노르웨이, 마지막으로 왕조조차도 없이 스웨덴과 러시아에게 각각 700년과 100년씩 지배당한 핀란드 순으로 권력 관계가 그려졌다. 게다가 노르웨이는 독립 이후 20세기에 들어 오일과 천연가스를 대량 발견하면서 급속한 부자나라가 되었다. 나는 혼자 핀란드가 북유럽의 아픈 손가락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핀란드의 평균소득은 한국의 1.5배이자 핀란드는 7년 연속 세계에서 행복한 나라 1위이다)
*출처: 내가 좋아하는 월드 데이터 인포, https://www.worlddata.info/country-comparison.php?country1=FIN&country2=KOR
북유럽 국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참고하면 좋을 만한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6pv8sFMpsU&t=10s
국가 권력 관계를 제쳐두고 핀란드는 추운 기후의 영향으로 인구가 많지 않았다. 현재도 넓은 땅 대비 핀란드와 노르웨이는 550만 명, 스웨덴은 1000만 명의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세 나라의 수도가 전부 남쪽에 있는 것만 보아도 북쪽의 북유럽은 인구도 적고 광활한 자연의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로라와 개썰매가 유명한 라플란드(Lapland)는 좁게는 핀란드의 북쪽 지역을, 넓게는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의 북쪽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핀란드 여행기1'에 적었던 스웨덴 국경과 가까운 토니오(Tornio)라는 지역과 산타마을로 유명한 로바니에미(Rovaniemi)가 라플란드에 속한다.
책에 따르면 핀란드는 추운 지역이라 인구가 적어 대규모로 몰려 살지 않고 적은 수의 가족 공동체로 이루어진 무리 생활을 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이 아니면 외부의 침입자였고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내는 생활을 해왔다. 이것이 핀란드 사람들의 속성이 되어 내려와 지금까지도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이웃과도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국가별 특성을 비교하는 영상을 보면 핀란드 사람들은 항상 과묵하고 외부와 단절된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나 보다.
다시 에어비앤비 이야기로 돌아와서 에어비앤비 집주인들은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함께 거실에서 TV로 파리 올림픽을 시청했고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사이프러스의 공항에서 면세점 직원과 여행객으로 만났다고 한다. 당시 무하는 사이프러스에 교환학생을 간 딸을 방문하기 위해 사이프러스를 찾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사이프러스 공항 면세점에서 일하고 있는 밀레나를 만났다. 마감시간에 임박하여 매장은 한가했고 그 덕분에 밀레나는 무하를 집중 마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무언가 필이 왔던 무하는 밀레나에게 연락하기 위해 불가리아에서만 사용하는 채팅앱을 다운받아 연락을 취했다. 불가리아 출신인 밀레나는 설마 이 남자가 나한테 연락하려고 듣도 보도 못한 앱을 다운받았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무하는 단순한 우연을 넘어서 인연으로 만들고 싶었고, 결국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핀란드와 사이프러스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무하가 사이프러스에 재방문하는 동시에 딸에게 밀레나를 소개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일사천리로 발전해나갔다. 장거리 연애의 끝에 밀레나는 무하를 믿고 핀란드 오울루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다. 장거리 연애가 얼마나 힘겨운지 나는 알고 있다. 그 당시 전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바로 얼마 전 헤어진 나로서는 무하와 밀레나의 러브스토리를 들으며 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불타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열정을 지속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아는 나는 그런 인연을 만나고 또 끊임없는 노력을 한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소설이나 영화 같은 연인 간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가 쟁취하는 법이다. 사랑하고 싶은 자, 용기를 내어라.
무하와 밀레나의 정원에 앉아 티타임을 가지며 고양이와 함께 이렇게 넓은 정원에 사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무하와 밀레나는 정원에 작은 별채를 손수 짓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공사를 멈추고, 더우면 더워서 공사를 쉬고, 추우면 추워서 공사를 미루는 삶, 이곳에 있으면 시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원에 나가면 초록초록한 풀과 나무들이 가득했고, 눈을 돌리면 자연이 있었다.
-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