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자는 말이 제일 무섭다

by 프프

문화센터 수강생은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 특히 수강생 연령대가 높은 수업에서는 첫날부터 분위기가 들썩인다. 마치 오랜 단짝 친구들과 함께 온 듯 왁자지껄하다. 반면, 연령대가 낮은 수업은 조용하다. 서로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다. MBTI에서 ‘I’ 성향이 강한 나는 후자의 분위기가 훨씬 편하다.




문화센터 첫 강의 날. 강사님이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서로 거리두기는 필수입니다.”

곧이어 나온 말은 더 강렬했다.

“불필요한 사적 질문은 삼가기로 해요, 우리.”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강생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와, 딱 좋다! 내 스타일이네.’

나는 속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강사님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그때, 내 옆자리 사람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아무것도 못 물어보나요….”

…뭔가 불길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춥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옮기려는 참이었다.

옆자리 사람,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이 사람과는 엮이지 말자.’

나는 재빨리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저기요!”

‘아뿔싸.’

못 들은 척하면서 나는 잽싸게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그 사람, 어느새 내 옆까지 따라왔다.

“혹시…!”

나는 심호흡을 했다.

‘침착해. 어쩌면 중요한 얘기일 수도 있어.’

그 사람은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지금 몇 시인가요?”

…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보여줬다. 그러자 그 사람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혹시 핸드폰(기종)이….”

나는 전력 질주했다.

거리두기…필수가 맞았다.




그 후로 나는 그 사람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살짝 웃으며 눈인사만 할 뿐이었다. 가방에서 뭘 꺼낼 때는 마치 중요한 서류라도 다루듯 신중하게 행동했다. ‘내게 말을 걸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하지만…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사건은 3주 차 수업에서 터졌다.


그날도 강사님은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서로 존중하는 거, 아시죠? 필요 이상으로 묻지 마세요.”

나는 속으로 손뼉을 쳤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르침인가!’

그런데….

바로 그때!

그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근데 강사님, 그러면 질문은 어디까지 가능한가요?”

강사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음…꼭 필요한 질문만 하시면 됩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힐끗 쳐다봤다.

불안했다. 대체 뭘 물어볼 생각이지?


그리고 10분 후.

쉬는 시간이 되자 그 사람이 조용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얼른 화장실로 도망갈 준비를 하며 코트를 입었다. 하지만 늦었다. 그 사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저기…!”

나는 숨을 죽였다.

“혹시…창문 닫아도 될까요?”

“….”

어쩐지 춥다 했다. 작은 창문이 열려 있었다.

“네, 그러세요.”

나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 사람은 기쁜 얼굴로 창문을 닫았다.

나는 후련했다.

‘아, 괜한 걱정을 했네.’


그런데 그 순간….

그 사람이 갑자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근데…혹시…?”

“…”

“이 근처 사세요?”

“악!!!!!!”

나는 그대로 화장실로 뛰어갔다.

거리두기…영원히 지켜져야 한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그 사람과 그 사람 옆에 앉았던 수강생이 다가왔다.

“우리, 밥 먹고 갈 건데 같이 갈래요?”

“….”

“출출하지 않아요?”

“….”

나는 순간 당황했다. 3시간짜리 수업이라 끝나니까 배는 고팠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밥을 먹는 건 부담스러웠다. 더 솔직히 말하면, 가기 싫었다. 그렇다고 ‘싸가지’ 없이 대놓고 “싫어요.”라고 단칼에 거절할 용기도 없었다. 핑계를 대려 했지만 타이밍이 애매했다. 핑계 대는 것도 순발력이 좋아야 한다. 오늘은 잠깐 방심했던 사이에 훅 들어온 거였다. 이런 곤란한 상황을 피하려고 했는데, 결국 엘리베이터가 문제였다. 하아…. 앞으로는 계단으로 다녀야겠다.


결국 싫다는 말도 못 하고, 어영부영 식당까지 끌려갔다. 그런데 웬걸?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이 보였다. 인기 맛집인가 보았다. 순간, 속으로 잘됐다 싶었다. 나는 손으로 긴 줄을 가리키며 말했다.

“허어어어억, 저 줄 좀 보세요. 전 이거 못 기다려요. 두 분은 드시고 가세요.”

“….”

나는 이때다 싶어 빠르게 손을 흔들며 뒷걸음질 쳤다.

“전 그냥 갈게요! 다음 주에 봬요!”

뒷말도 듣지 않고 빠져나왔다. 성공적인 탈출이었다. 나는 속으로 뿌듯해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다음 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 다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수강을 취소하고 수강료까지 환불받은 듯했다.

처음엔 ‘설마 나 때문인가?’ 생각했지만, 둘 다 최강 ‘E’ 성향처럼 보였기에 밥 한 번 거절했다고 수강까지 취소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둘이 나눈 대화를 떠올려 보면 둘은 부업을 찾고 있었고, 강의 내용이 기대와 맞지 않아 그만둔 듯했다.


어쨌든 나는 더 이상 거리두기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수업을 들으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수업은 언제나처럼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허전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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