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의 에필로그(마지막편)
“아들, 이 책 어디서 났니?”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있던 아들에게 엄마가 물었다.
손에는 ‘자서전’이라 쓰인 두꺼운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갈색 표지에 굵은 검은 펜으로 쓴 손글씨 제목.
누가 봐도 출판본은 아니었다.
“그거요? 아… 몇 달… 아니, 한 1년쯤 된 것 같은데… 어디서 찾았어요?”
“침대 밑 청소하다가 찾았는데… 일기 같더라.”
엄마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무슨 책인데 그래?”
옆에서 TV를 보던 아빠가 책을 받아 들고 책장을 휘리릭 넘겼다.
“손글씨네… 일기장 같아.”
아들은 지금의 상황이 달갑지 않은 듯 살짝 짜증이 났다.
“그때 버스 정류장 가는데, 어떤 남자가 노점에서 팔아서 그냥 샀어요. 일기인지 소설인지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곤 잊고 있었어요.”
마치 변명처럼 늘어놓자 한숨이 나왔다.
“뭔 내용인데?”
“아빠, 그게 언제 적인데… 전 기억도 잘 안 나요.”
아들이 피식 웃었다.
“여보, 내가 읽었는데… 주인공이 친구한테 사기를 당하고 자기 비관하면서 쓴 것 같아요. 회사도 관두고, 집도 차압당하고, 이혼까지 하고…”
“그런 내용이야? 에이, 그럼 소설이겠구먼.”
“근데 소설 같지는 않았어요. 그 사람이 자기 이름을 태석이라고 하고, 친구는 현수라고 … 고등학교 때 반에서 괴롭히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그 여자를 좋아했대요. ”
“와, 엄마 정말 열심히 읽었나 봐. 그런 내용이야? 좋아하는데 왜 괴롭혀요?”
“어릴 땐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좋아한다는 걸 잘못 표현하기도 하지. 넌 좋아하는 애 없어?”
아들은 당당히 말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지켜줄 거예요."
엄마가 책을 조용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태석은 상황에 휘말리면서도, 글을 쓰면서 자기 삶을 남겼잖아. 그게 의미 있는 거예요. 기록하는 건 단순한 글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고 그런 상황에서 일기를 쓰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아버지가 덧붙였다.
“인간은 상황에 쉽게 휩쓸리는 나약한 존재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살아갈 방법을 찾는 강한 존재이기도 하지. 현수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태석처럼 글을 남기며 어떻게 던 다시 일어서려 했던 사람도 있는 거고.”
“결국 기록은 누군가의 존재와 경험을 기억하게 하고, 존중하게 만드는 행위예요.”
엄마는 조용히 책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누군가는 그 사람의 기록을, 삶을 되돌아봐 줘야 하지 않을까? 돈 때문에 자기 일기를 팔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요. 소설이든 일기든, 한 장 한 장 써 내려간 노력은 분명히 의미가 있어요. 왠지 찡해요. 이 책, 돌려주는 게 어때요?.”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생각하면... 돌려주는 게 좋겠네. 찾든 못 찾든 , 우리는 그 사람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거야.”
두 사람의 시선이 아들을 향했다.
“엄마, 세상 대부분은 자기만 생각하죠. 남 신경 쓸 시간 없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모른 척할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는 그 사람의 기록을, 삶을 보살펴 줘야 하지 않을까?”
아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요. 찾아볼게요.”
마음 한쪽이 찜찜했지만, 한 번쯤의 선행이라고 마음을 먹는 걸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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