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브의 섬 17화
“경리야, 혼자서 괜찮겠니?”
지영은 떨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눌렀다.
그날, 매서운 바람 속에서 언덕 위에 서 있던 경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풍을 정면으로 맞으며 서 있던 딸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불안이 밀려왔다.
오랫동안 입을 닫고 있던 딸이, 스스로 말을 꺼낸 날이었다.
파도가 부서지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 위에서.
“엄마, 이 소리…”
경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지영과 남편은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경리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그 바람이 누구를 부르고 있었는지를.
어쩌면 이미 그녀는 지영의 자궁 안에서부터 바람과 파도에 속삭였는지도 모른다.
‘돌아오겠노라.’
그때 지영은 아주 어린 경리를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분명했다.
어릴 적부터 경리는 늘 파도와 마주하고, 모래를 밟으며,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들곤 했다.
그녀에게 자장가이자 친구였던 것은, 숨김없이 다가오는 태초의 자연이었다.
동그란 눈으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던 아이.
그 손끝에는 인간의 언어보다 더 깊고 생명력 있는 소리가 닿아 있었다.
하지만 경리의 부모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던 경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모래를 움켜쥐며 깔깔대던 그 아이는, 자신들과 달리 섬을 사랑했다.
어쩌면 섬은 언제나 경리를 부르고 있었고,
경리 역시 늘 그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지영은 자신이 경리를 가둬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휘청거렸다.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섬에서 살고 싶어”라고 말하던 경리의 눈동자.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손을 내밀던 딸의 손은, 뜨겁도록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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