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이었다.
새벽 6시반 내가 일어나는 시간.
알람이 울리기 전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깨서 보니 경련이 또 시작 되었다.
엄마가 뇌출혈 후 급성기 때 한번 그 이후로는 온 적이 없는데 집에 오곤 세번째이다.
119에 전화를 하고 구급대원을 기다리는 동안 산소 포화도, 당수치를 쟀는데 크게 이상은 없었다.
구급대원 도착 전 경련이 잦아들고 묻는 말에도 곧잘 대답을 해서 구급차는 취소를 했다.
일단 경련약 부터 먹일려고 일으켜 세우는데 이상하다. 제대로 앉지도 못한다.
약을 주고 물을 먹이는데 약을 못삼킨다. (절대 하지 마세요. 경련 후에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뭐 먹이면 안됩니다)
재활 병원 퇴원 후 집으로 온 뒤 첫 경련때 입원 할 정도는 아니였다. 잠시 경련이 왔었고 약을 먹은 후 괜찮아졌던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럴줄 알고 약을 줬는데 삼키지 못해 손가락으로 약을 빼냈다.
앉는 것도 잘 안되길래 이상하다 싶은데 2차 경련..
다시 119에 전화를 했고 상담원이 하라는 대로 산소포화도를 쟀는데 64까지 떨어졌다.
다행히 산소포화도는 얼마 지난 후 정상수치로 올라오긴 했는데 그사이 혀를 깨물었는지 입에서 피가 흐른다.
구급대원이 도착 한 뒤 다시 혈당을 재고 혈압을 재고 엄마를 구급차로 이송했다. 구급차에 탄 후 구급 대원이 응급실이 전화를 돌리는데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2차 병원들은 다 안된단다.
원래 다니는 병원으로 가라는데 해당 병원은 3차 병원으로 처음 전화를 했을 때 응급실 못받는다고 했었다.
응급실 뺑뺑이....
작년에 경련으로 갔던 2차 병원마저 불가능 하다고 답변을 받고 낙심하고 있는데 세번째 경련이 왔다.
경련 할 때 소변을 봤는지 바지는 젖어 있었다.
이리저래 전화 돌린 결과 처음 전화했었던 엄마 외래 다니는 3차 병원에서 받아주기로 하고 해당 병원으로 향했다. 그사이 경련은 잦아들었고 살짝 의식이 돌아왔는데 미식 거리는지 오바이트를 하려고 한다.
병원까진 1시간 거리...
참 멀기도 멀다. 근처에서 받아줬더라면..
답답한 마음 앉고 응급실에 도착 후 옷을 갈아입고 혈관을 잡은 뒤 약을 준비 하는 사이에 4차 경련이 왔다.
경련 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무력했다. 참 하찮은 존재 같고 답답했다.
그저 곁에서 지켜보는 수 밖엔 없었다.
항경련제가 들어가고 엄마는 잠들었다.
일단 소변에 젖은 속옷과 바지를 갈아입히려고 기저귀와 물티슈를 사오고 약에 취해 축 쳐진 엄마 몸을 이러 저리 굴려 간신히 기저귀를 채웠는데 잠시 후 변을 봤다.
잠이 들어 완전이 쳐진 상태에서 기저귀를 갈기란 보통일이 아니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편도 아닌데 옆으로 세우는데 힘이 많이 필요한 것 이다.
그렇게 두세번 기저귀를 갈고 너무 자면 안된다고 완전히 깨어나야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집으로 귀가 할 수 있다고 한다.
작년엔 2차 병원에서 중환자실로 갔던지라 좀 당황해서 입원은 안되는지 물어보니 더이상 처치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귀가 해야 한다고 한다.
정신이 돌아오길 기다리는데 보통 엄마가 정신이 이전 만큼이라도 돌아오려면 그동안 경험으로 상으론 2~3일 정도는 걸렸다. 당장 밥도 물도 못먹는데 집으로 데려 갈 수는 없었고 기다리다가 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아서 병원 전원팀과 논의해 근처 받아주는 요양병원으로 전원 하기로 했다.
밥을 먹을 정도만 되면 집으로 가겠는데 금식인 상태고 곧 식사 한지 24시간이 지나가는데 수액이라도 맞아야 할 것 같았다.
정신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어영부영 저녁 시간이 다되어가고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집근처 요양병원들은 퇴근시간이 임박했고 근처 병원에선 8시까지 가능 하다고 하니 그곳으로 갈 수 밖에..
간호사와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약에 취해 비몽사몽한 엄마가 자기를 버리는 거냐고 한다.
요양병원에 보낸다고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했는지 나보고 거기 안간다고 하는데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엄마를 입원 시키고 준비물을 이것저것 사다가 가져다 주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엄마가 없는 침대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엄마 경련하는 모습과 자신을 버린다고 멍한 눈빛으로 말하는 엄마의 얼굴, 그리고 새벽 내 내이름만 부를 엄마의 모습이 가슴에 박혀 사무치게 아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