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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
절 망
- 김수영 -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풍경은 그 자체로 ‘낯섦’의 아름다움이 있고,
곰팡이는 유익할 수도 해로울 수도 있다. ‘균류’에게 어떻게 사유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계절과 시간 따라 시절 인연이 있고,
속도 보다는 방향성이 중요한 세상에서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오직 명령에 따랐다’는 그들은 어디에서 구원 받을까?
절망은 그렇게 부끄러움을, 반성을, 사유의
빈곤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