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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장 유감

테니스장에서는 테니스 잘 치는 놈이 최고지.

by 탄주


퇴직 후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 근처에 있는 골프 연습장을 찾았다. 일 년에 120만 원 정도면 회원으로서 레슨과 연습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형제들이 모두 골프를 하고 있어 만날 때마다 나이 들어서는 골프를 해야 한다고 듣고 있던 터이기도 했다. 그러나 골프 가방을 메고 골프 치러 다니는 내가 영 어색하고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30년 만에 만난 옛 동료가 골프에 데었는지 “이 선생은 골프 안 배우는 게 좋아.”라고 한 말도 신경이 쓰였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비교적 가까운 곳에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 아내와 같이 테니스를 배워보려고 찾아갔다. 테니스 코치를 만나 월 레슨비와 시간을 정하고 운동과는 멀어 보이는 아내도 시작할 수 있는지 물었다. 코치는 라켓을 아내에게 주더니 흔들어 보라고 한다. 아무리 힘없어 보이는 여자지만 라켓은 당연히 흔들 수 있는 거 아닌가? 라켓만 흔들 수 있으면 배울 수 있으니 같이 나오라는 거다. 집에 온 아내는 땀을 많이 흘려야 되는 운동에 매력을 잃었는지 자기는 다른 운동을 해야겠단다.


나는 테니스 완전 초보는 아니다. 현직에 있을 때 약간 동료들과 어울려서 게임을 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모든 아마추어 운동이 그러하듯 그냥 동료들과 게임을 하면서 배우면 되는 줄 알았다. 잘 못해도 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겠지. 그러나 혹독한 비판이 따라왔다. 처음 몇 번은 그저 하는 말이겠니 하고 테니스장이 당신 거냐 하는 마음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마음으로 끼어들었다. 급기야는 내가 가면 게임을 안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내가 부장 교사이고 나한테 결재받아야 하는 막(평) 교사들이 테니스장에서는 태도가 돌변한다. 레슨을 받고 오란다.


이런 경험도 있고 해서 클럽에서 게임을 하는 데는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렌슨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했다. 시간이 나면 벽치기도 꾸준히 했다. 3개월쯤 지났을 때 클럽에서 이제는 클럽에 들어와도 되겠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클럽 게임에 들어가서 한 게임을 하고 락카에 들어왔는데 한 여성 회원이 내가 듣고 있는 데서 왜 서브도 제대로 못 넣는 사람을 회원으로 받았냐는 소리를 한다. 순간 옛날 생각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묘했다.

지금은 인조 잔디로 교체했지만 그 당시 코트는 클레이 코트여서 매일 라인을 그어야 했고 라인을 긋기 전에 로라로 밀어야 했다. 나는 다른 회원보다 일찍 나와 코치와 함께 로라질과 라인작업을 해놓고 회원을 맞이했다. 신입회원은 기존회원들에게 술집에서 신고식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술도 못하는 내가 20여 명의 회원에게 신고식도 했다. 학교를 옮기면 새 학교에서 전입교사 환영회는 봤지만 신입 교사가 기존 교사들에게 신고식을 한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이후에 다른 클럽에서 옮겨온 베테랑 회원이 스스로 신고식을 술집에서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테니스 클럽의 관행이라고 이해되었다. 이런 관행은 코로나 시대에 음식점에 모일 수 없어서 자연히 없어졌다.


해가 바뀌면서 회장과 총무를 뽑아야 한다. 회장은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였고 총무는 여자가 하고 있었다. 나보고 회장을 하라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총무를 맡으란다. 회장은 나보다 훨씬 어리다. 회장은 타이틀만 회장이지 회계처리 잔 심부름은 총무가 해야 한다.


퇴직 전 학교에서는 원로교사다. 교감은 후배고 교장은 나와 나이가 같다. 각종 출제 모임에 가면 어느새 내가 제일 선배다. “형 아직도 이런데 나와?”라는 후배의 말을 듣는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몇 안 되는 테니스 클럽에서 나보고 총무를 맡으라니. 그래 춤판에서는 춤 잘 추는 사람이 최고이고 노래방에서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최고지 나이가 무슨 대순가.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클럽 내 내 랭킹도 5위 안에는 들게 되었고 회장도 했다. 회원이 부족한 듯하여 실력이 안 되는 여자 회원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이 심각한 문제였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회원이 들어가는 게임에 나머지 3명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러니 이 회원이 끼는 게임에는 서로 피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회원이 적당히 피하거나 스스로 탈퇴하면 좋으련만 자기 차례가 오면 어김없이 먼저 코트에 들어가 워밍업을 한다. 회원들이 눈치를 주고 심지어 대놓고 나가라고 해도 내 권리라며 법대로 하란다.


이제야 옛날 부장 교사일 때 막교사들이 테니스장에서 나에게 한 일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그때 내가 진상이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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