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스콧은 돌아갈 상황에 대비해서 몇 십 킬로미터마다 저장 창고를 만들어 두었다. 만에 하나 돌아가는 도중 불의의 사고로 짐을 잃어버리더라도 저장 창고에서 꺼내쓰면 금방 해결할 일이었다.
그러나..아무리 찾아도 식량창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분명히 이 근처일텐데 어찌 된 일이지? 남극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극한의 땅이다. 깃발로 표시해둔다고 그 깃발이 온전히 남아 있을리가 없다. 스콧은 저장에만 공을 들였지, 그 표식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식량을 챙겨왔다고 자신했는데 식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어찌된 일이었을까..인간은 극지와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는 생존을 위해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칼로리를 소비한다. 이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게다가 스콧은 독불장군이었다. 그의 성격을 싫어했던 초기 대원 중 한 명은 남극 도착 직후 탐험대를 이탈했다. 그는 스노우모빌 전문가로 그가 떠나는 바람에 스노우모빌이 고장났을 때 아무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 사람 대신 합류한 두 명은 전문성이 부족했다. 게다가 한 명이 나가고 두 명이 합류하는 바람에 식량이 부족해지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스콧은 인도산 면직물을 고집했다. 대영제국의 국민답게 그는 이누이트들이 입는 털가죽 옷은 야만적인 사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세계를 호령하는 대영제국의 탐험대가 미개한 이누이트들의 털가죽 옷을 입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을 흡수하지 않고 체온을 유지해주는 최적의 방한복을 거부한 것이다.
반면에 아문센은 달랐다. 일단 그는 탐험에 대한 전문성이 있었다. 몇 년 전 그는 북극의 항로를 찾아내기 위해 배로 북극 탐험을 했다가 죽다 살아온 경험이 있었다. 비록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극한 상황에서 생존하는 방법에 대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극지방에 있어서는 이누이트들을 따라올 자가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개썰매, 털가죽 옷 등등 이누이트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함께 탐험을 수행할 대원 선발에 있어서도 아문센은 탐험 경험과 모나지 않은 이타적인 성격, 극지 생활 경험을 최우선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그는 탐험 기간 내내 큰 갈등 없이 탐험대를 운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왠만한 장비는 직접 제조할 줄 알았고, 스키를 타는데 있어서도 전문가들이었다.
스콧 탐험대 일행 중 심한 부상자 2명도 큰 부담이 되었다. 에드가 에반스는 탐험 도중 크레바스에 빠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이로 인해 정신 착란 증상을 보이고 헛것을 보기도 했다.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그는 탐험에 아무 보탬이 될 수 없었고 결국 귀환길에 가장 먼저 사망하고 말았다.
로렌스 오츠는 군인 출신으로 십 년 전 보어전쟁 때 발목에 총상을 입었다. 동상으로 그 부위가 손상되면서 제대로 걷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로렌스 오츠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갔다가 돌아올 겁니다. 물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남기고 그는 텐트를 나와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스콧은 그의 희생에 큰 감사를 표했다. 그는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다른 대원들을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남은 대원은 대장 스콧을 포함한 세 명이었다. 그들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가도가도 끝없는 눈길, 떨어져가는 연료와 식량..그들은 동상에 걸려 손발을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마침내 그들은 한 텐트에 고립되었다. 도저히 더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도상으로 분명히 이 근처에 식량창고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눈보라 때문에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 깃발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지쳐 쓰러져갔다. 1912년 3월 29일 스콧의 마지막 일기는 이렇게 끝나게 된다.
"우리는 끝까지 버텨볼 생각이다. 그러나 몸이 쇠약해져서 이제는 죽음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다. 신이시여 우리 국민을 보호해 주소서"
슬프게도 불과 800미터 근처에 스콧의 저장 창고가 있었다. 그러나 스콧은 거리 계산 실패로 그 창고가 11키로 밖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설령 정확한 위치를 알았다고 해도 이미 탈진한 스콧 탐험대는 저장 창고까지 접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문센은 최초의 남극점 정복자라는 영예가 따라왔다. 지금은 북해 유전의 발견으로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나라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약소국이었다. 노르웨이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스콧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마침내 아문센 귀환 후 8개월이 지난 뒤 구조대가 파견되었다. 구조대는 텐트 안에 썩지 않은 채 얼어붙어 있는 세 명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스콧의 품 안에는 그의 일기장이 발견되었다. 이 일기장을 통해 스콧 탐험대가 어떤 여정으로 탐험하고 있었는지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스콧은 영국의 영웅이 되었다. 처음에는 남극점 최초 정복을 실패한 스콧을 비난했던 사람들도 그의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스콧을 찬양하게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아문센이 개들을 죽여 식량으로 쓴 것에 대해 미개하고 잔인한 행동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하였다. 어떻게든 아문센의 업적을 깎아내리고 싶었던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아문센과 스콧의 운명을 갈라놓은 원인들을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지만 저는 이 다섯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아래 요인들에 대해 다음 글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1. 지나친 자신감과 오만
2. 긴급상황에 대비하기
3. 차분하게 준비하는 것
4. 계획은 단순하고 쉽게 세우자
5. 포기할 때는 포기하자